
고난의 길은 누구나 초행이기에 늘 낯설고 두렵다. 격랑에 좌초되기도 하고, 방향을
잃어 헤매기도 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길을
끝끝내 걸어내고 살아낸다. 폴 트루니에가 '고통에는 뜻이 있다'고 말했듯이 우리에게
허락되는 고통은 당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한 그 분의 눈물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넉넉히(?) 이겨낸다.
이 책을 받아들면서 나에게 갑자기 닥친 '병마'가 생각났다. 학교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찾아온 몸의 이상현상은 그동안의 애씀과 노력을 한 순간에 수포로
만들어 버렸고 결국 수술 후 '휴양과 치료'를 위한 시골행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때
'고난도 은혜다' 라는 말은 생각도 나지 않았고 '왜, 하필, 지금, 나에게...' 라는 아쉬움과 원망만 가득했었다. 실패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고 했던가. 이 좌절은 나에게 그분을
향한 진실함을 기억케 했고, 이 고통은 나를 향한 그 분의 아픔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면서 어느정도 몸도 회복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갈 즈음에 만나게 된 이 책은
고난을 통해 더 강해지고 깊어지고 아름다워지는 변화의 방점을 찍어 주는 것
같은 제목과 함께 다가와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게 됐다.

우리의 믿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자신이 만난 하나님,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통해
믿음을 키워 나간다. 예레미야가 기억하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었다.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자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예레미야애가 3:25) 그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이야기 한다.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그분의 선하심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구하는 자들의 탄식을 결코 외면하지 못하시는 여호와는 분명 선하신 분이시다. 모두가
소망을 잃고 확신마저도 희미해져서 모두가 돌아서는 그때에도 여전히 기다릴 수 있는
이들이 진정한 신앙인이다. 세상이 아무리 넘어 뜨리려고 달려들어도 흔들림 없이 '나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믿음이다. 예레미야는 그런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기다릴 수 있었다.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라고 고백한다. 비록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했지만 단지 귀로 듣기만 하는 수준에 머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신앙에 힘이 없고 능력도 없다. 그러나 욥은 귀로 듣기만 했던 그것을
눈으로 본다고 고백한다. 이것이 경험적 신앙이다. 기나긴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
구체적으로 경험한 자신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요즘같이 머리와 말로만 믿는
외식신앙이 팽배한 때에 직접 만나고 경험한 주님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은 그 자체로
능력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71)고 말하는 것이다.
고난의 깊은 세계안에서 고난을 경험한 사람은 불순물이 다 빠져 모든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한다. 그래서 자유가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내려
놓음과 순종은 자유를 가져온다. 저자는 이와 같이 고난을 이긴 자들이 누리는 삶과
믿음에 '기품'이 있다고 표현한다. 고귀하고 가치있고 품위와 격식이 있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이 이들의 삶을 고난 가운데서 다듬어 주셨기에 이들은 얼굴도 다르고, 품격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다. 그래서 이들 자체가 본이 된다. 누구든지 이들을 보면
예수님이 생각나고 누구든지 이들과 함께 있으면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 고난이 특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기'(욥23:10)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디를 봐도 하나님이 안계신것 같고, 모든것은 불확실하고 삶은 점점 힘들어지지만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이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길이 하나님의 길과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비록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이다.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일하시고
주관하신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하다. 보여지는 일들을 보면 불안하고
염려스럽기 그지 없지만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그분께서 허락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길을 걸어야 한다.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이끌듯이 환란과
시련은 더욱 더 하나님을 붙잡고 찾게 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고통은 절망이다. 욥을 통해 우리는 욥의 고통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다루어짐을 알 수 있다. 고통을 피하지 말고 고통에 직면해서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음성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형들을 만났을 때 자신이
겪은 고통과 환란에 대하여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라고 말한것 같이 고통 이면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해야 한다. 자신이 당하는 고통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고통이 은혜가 되고 고통이 특권이 되는 것이다.
믿음은 가정이 아니라 실제이기에 우리는 가열차게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믿음은 시험의 연속이다. 시험은 우리의 보랏빛 환상을 깨뜨리며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박제 신앙에
태클을 건다. 때문에 믿음은 실제여야 하고 시험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그래서 야고보는 '시험을 당하거든 기뻐하라'(약1:2)고 말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이 믿음이고 바른 신앙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중심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 책을 요즘 인문학 강좌로 만나고 있는 재기(再起)클럽분들에게 드리고 싶다. 인생
중년에 자의든 타의든 직장을 잃고 재기를 꿈꾸시는 그분들이 이 책을 읽고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나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듯 세상 앞에 당당하게
서시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