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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은혜 -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일하심
최병락 지음 / 두란노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인생의 암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P53
약함을 방치하면 비루한 인생이 되지만 하나님께 드리면 곧 은혜를 담을 그릇이 됩니다. P98


우리는 은혜의 홍수가 아니라 은혜라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산다.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은혜라는 단어 때문에 정작 그 은혜의 가치가 정말 가치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입 버릇처럼
달고 사는 '은혜 받았다'는 말이 정말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살면 안된다. 은혜를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은혜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말이 아닌 삶이 그렇게 바뀌어야 하며 그런 삶을
살고 드러내야 한다. '부족함'을 통해 저자의 깊은 영성과 통찰을 경험한 나에게 이 책은
단비이다. 책을 접하는 순간 왜곡되고 무가치해져 버린 은혜에 대한 바른 시각과 판단을 가능케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득찼다.
'항복'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고, 나는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모든것을 맡기는 가장 낮은 모습이
드러날때 주님이 일하신다. 그러므로 항복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이다. 주님께 완벽하게 항복하면
우리는 이긴다. 더 이상의 아집과 교만을 버리고 주님을 향해 눈을 들때 그때가 최적의 타이밍이다.
의외로 항복은 쉽다. 그냥 손들면 된다. 내가 쥐고 있던 무기를 손에서 놓고 기득권을 포기하고 그냥
두 손을 들면 된다. 그분의 전능하심을 믿는 다면 내가 가진 무기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 알게
될것이다. 억지로 손에 쥐고 있느라 고생하지 말고 손을 펴고 버리면 된다. 마치 광야에 놋뱀을 바라
보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쉽다.
'째째한 하나님'
우리의 믿음 없음이 하나님을 제한하며 째째한 하나님으로 만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부르면서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마저도 재단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 이것 빼고 저것 빼고 이정도만
이라는 잣대로 그분의 스케일을 줄여 나간다.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부인하며 그 분의 자리에 자꾸
다른것을 앉히려 한다. 그것이 우상이라고 경고하시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믿음 없음(저자는 이것을
불신이라고 표현함)에서 나오는 겸손은 겸손이 아니라 무지이다. 그분을 제대로 모르고 경험하지
못했기에 나오는 푸념이고 불평이다. 오빠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는 모습처럼 우리는 오늘의
믿음이 너무도 약하다. 과거의 믿음과 미래의 믿음은 무척 강한데 정작 오늘을 살아가는 믿음은
한없이 약하다. 전농하신 분이 옆에 계심에도 '마지막 날의 부활'을 말하는 마르다처럼 우리는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지만 정작 오늘의 주님은 없다. 이와같은 현실결여의 믿음이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제한하고 방해한다. 마치 야곱의 하란으로 도망칠 때 아버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그곳에 계셔야 하기에 나와는 함께 할 수 없으시다는 두려움을 가졌던것 처럼 우리의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고 예배시간에만 존재하는 제한적이고 지엽적인 하나님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쳐 쓰러진 야곱에게 친히 보이시며 '너와 함께 한다'는 말씀을 세번이나 하신다. 그리고
잠에서 깬 야곱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필요하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함께하시는 그분이 지금 이순간 이곳에
나와 함께 하신다는 현실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은혜는 초자연적 현장에서만
등장하는 고백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인정되는 사실이어야 한다. 유진 피터슨의
'하나님이 지금 이순간 나와 함께 계신것처럼 살아내는 것이 바로 현실에 뿌리내린 영성이요
믿음이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현실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야곱이 발견한 것은 '하나님이
찾아오셨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여기 계시거늘'이다.나와 지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느끼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반칙'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시고 준엄하신 하나님도 반칙을 하신다. 소돔을 멸하시겠다는 말씀에 무려
6번이나 딜을 시도하는 아브라함을 받아 주시는 하나님은 이미 심판주가 아니시다. 그뿐인가.
진노중에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합3:2), 분을 내어도 끝까지 품지 않으시는 분(시103:9),
잠시동안 은혜를 베푸사(스9:8)는 당신 스스로가 정해 놓은 규칙을 깨면서도 여전히 살길을 열어
주시는 반칙왕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고 이것이 은혜다. 이 은혜가 아니면 우린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맞춤형 은혜'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정확하게 아시는 하나님은 가장 필요한 은혜를 적재적소에 베풀어 주신다.
마7:9-11 말씀에 보면 부모가 자녀의 필요를 채운다는 설명 바로 뒤에 '하물며'라는 단어를
사용함을 볼 수 있다. '하물며'의 사전적 의미는 앞의 사실이 그렇다면 뒤에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당신의
뜻에 가장 적절한 그 때 넘치도록 부어주신다. 내 잔이 흘러 넘쳐 다른이에게 미치도록 말이다.
모세를 80년을 준비시키시고 사용하신것처럼 우리에게 주실 맞춤형 은혜의 때가 존재한다.
우리는 다만 기다리고 기다릴 뿐이다. 기다림은 그 기다림 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은혜다.
이 책은 아직 자립을 하시지 못한 목회자분들이 읽었으면 한다. 힘겹게 억지로 버티며 견뎌내는
그 분들에게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하나님 스스로 반칙을 하시면서 다른 누가 아니라 당신에게
딱 어울리는 맞춤형 은혜를 째째하게가 아니라 넘치도록 부어주실것을 믿고 그 길을 걸어가시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