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사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사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김정완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3월

직접 그곳에 가보거나 살아 보지 않아도 잘 소개된 책을 읽게 되면 그곳의 모습이

그려지고 마치 그곳에 내가 살고 있는것과 같은 생각이 드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지명마저도 생소한 '디큐'가 옆 동네처럼

느껴지고, 화려한 팰리스는 강남의 어느 빌딩가를 연상시키며, 그곳의 해방구인

스타벅스의 풍경은 친근하기까지 하다. 보통 이런 책은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책이 주류인데 이 책은 '힐링 에세이'다. 그래서 읽기

쉽고 편하고 친근하다.

45세에 아이가 둘이나 딸린 이혼녀. 여자들에겐 철저하게 배타적이며 차별이 서슴없이

자행되는 사우디. 영국인 재혼남. 어찌보면 모든것이 낯설 수 밖에 없는 삶을 그녀는

시작한다. 그리고 살아낸다. 사우디의 사막을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내고 전한다. 

까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아랍인을 권총으로 쏴 죽인 뒤 법정에서 햇빛이 너무 눈이

부셔서 그랬다고 진술하는 뫼소르를 연상시키는 종교경찰(무타와)의 행태는 아직도

이런 곳이 존재하는구나 싶을 정도였으나 생각해보니 불과 몇십년전 우리의 그 악명

높은 '백골단'도 이와 비슷했던것 같다. 그때 그들은 조금이라도 의심이 나는(혹은

마음에 안드는) 이들의 가방을 뒤지고 검문을 하고 닭장차로 끌고가기 일쑤였는데

사우디의 종교 경찰도 이런저런(우리가 생각하기에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들의 권력을

과시하는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졌다. 여자의 얼굴을 노출하는것을 금기로 여기기에

쇼핑몰 진열장 여자 마네킹의 얼굴을 없애거나 핸드백을 뒤집어 씌워 놓고 의류광고

사진 속 여자는 얼굴 대신 동그라미를 그려 넣거나 목을 잘라내는 그곳에서는 현실

속의 여자 뿐 아니라 종이 속의 여자마저도 사우디 살이가 쉽지 않아 보인다. 

거머리 같은 눈빛으로 아래위를 훑듯 지나가는 남자들의 기름기 가득한 눈빛을 통해

눈빛도 폭력이 됨을 배우게 됐고, 소통과 이해가 아닌 무시만이 살아 남는 방법임을

깨달은 저자가 오죽하면 '필리피노 아님, 차이니즈도 아님, 메이드 아님, 결혼했음,

그리고 나이 많음, 너희들 엄마 나이임'이라고 쓴 커다란 명찰을 달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생각하니 결코 쉽지 않은 삶이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렇게 저자의

사우디 삶은 계속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해방구가 존재한다. 저자에게 '해시'가 그랬다. 사우디에

사는 이방인들의 사교 달리기 모임인 '해시'는 비록 드러난 집회는 아니지만 사우디에

사는 이방인들에겐 해방구나 자유광장이다. 비밀스럽기까지한 접선 방법은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으며 5번을 해시에 참석하고 한번은 해어(hare,행사준비자)를

해야 낙타 그림이 그려있는 티셔츠를 입고 맥주를 원샷하고 마지막 한 방울을  머리에

붓는 정식 멤버가 되는 까다로운 가입 절차는 그들의 강한 결속력을 이어주는 산물이다.

각자 다른 사연과 이유로 그곳에 참가했지만 그들은 '해시'를 통해 다르지만 같은

동질감을 느끼며 '우리'가 되어가는 것이다. 세상의 끝이라 느껴지는 지점에서 뜻밖에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해시이다. 

이 책을 읽으며 사우디와 그 주변을 솜씨 좋은 가이드와 함께 여행한 기분이다.

우스갯소리로 군대 안가본 사람이 군대 이야기 더 잘 알고,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안다는 말처럼 이 책 한권이면 어디가서 최소한 사우디와 사우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아는 척은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