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기의 여행 - 대책 없이 느긋하고 홀가분하게
송은정 지음 / 걷는나무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여행에서 떠나기전 가진 기대가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일수도 있고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것이듯 많은 기대감을 갖고 출발한 여행의 대부분은 적지 않은 실망이었다.

이런 나에게 저자의 '어제와 같은 길을 걷는 오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어제의

나는 몰랐던 사실을 오늘의 내가 깨달았다면, 그래서 일상의 시야가 뼘쯤 넓어졌다면,

그것을 여행이라 부를 있지 않을까'라는 말은 기존에 갖았던 여행의 틀을 조금은 바꿀

있는 사고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렇다. 거창함과 머릿속 기대감으로 충만한 여행의 거품을 걷어 내야 한다. 살아가는 삶의

가장자리 혹은 언저리에서 줍고 다니는 추억의 파편이 여행이다. 여행은 더하기가 아닌

빼기인 것이다. 삶의 무게도 짐도 힘겨움도 참기 어려운 욕지기도 빼버리는 그것이 여행의

묘미이다. 묘미를 보지 않은 더하고 채우기에 급급한 우리는 아직 여행의 초보다.

여행은 '잠깐 '이다. 멈춰서 잠간 동안 쉬는 것이다. 일도, 욕심도, 열정도 잠간 멈춰서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작은 여유 그것이 여행이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뭔가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공간에서 누릴 있는 여유로움 나는 그것을 여행이라

말하고 싶다. 주전 월정사 전나무숲에서 만난 노부부처럼 말이다. 분은 손을 잡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연을 느끼며 그대로 자연이 되어 걸으셨다. 그냥 쉼이었고 휴식이었다.

실제로 어느 누구도 그분들보다 천천히 가지 못했다. 모두가 빠른 걸음으로 분들을 앞질러

갔지만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자신들의 걸음으로 자신들의 길을 걸어 가셨다. 모습을 참을

지켜 보자니 부러워졌던 기억이 난다. 여행은 속도전이 아니다. 여행은 시간과의 싸움이 아닌

시간을 내것으로 만드는 작은 노력이다. 


'여행이라는 자발적 고립'

좋다. 말만 들어도 좋다. 함께하는 여행도 좋지만 나는 홀로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를 '자발적 은둔자'라고 부른다. 혼자 누리는 여유로움과 혼자 가지는 시간과의

타협과 혼자 독점하는 공간의 편안함, 그리고 어느곳에서든 있는 선택의 다양성이 나를

혼자이게 만든다. 굳이 길을 몰라도 된다. 길이 막혀 있으면 돌아 나오면 된다. 동네어귀에서

시작하는 예쁜길을 따라 무작정 가다보니 산중턱 낭떠러지 앞에 서본적도 있고, 아무 생각없이

들어선 시골길 끝에서 갈대가 우거진 강가의 정말 멋진 낙조를 만난적도 있다. 동행을 배려하지

않아도 되고, 신경을 분산시키지 않아도 되고, 그저 나의 길을 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모든 것이

새로움이고 설레임이다. 저자가 교토의 주택가에서 만난 피크닉세트와 와이프 앤드 허즈번드라는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 '와이프 앤드 허즈번드' 부부 같이 말이다. 


'카버의 법칙'

'미래를 위해 물건을 쌓아 두지 않고, 날마다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써버리고서 좋은

것이 생기리라' 믿는 소설가 제임스 카버의 생각이다. 어쩌면 이것이 '여행의 빼기'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없고, 버리지 않으면 얻을 없다는

지극히 간단한 이론을 우리는 잊고 산다. 그러다 보니 삶이 버거워지고 아둥바둥거리는 것이다.

삶은 우리에게 쉽게 살라고, 버리고 살라고 하는데 우리는 가지려고 채우려는 욕심으로 

산다. 이런 가득한 욕심으로 떠나는 여행은 쉬려고 떠났지만 정작 피로만 가득 떠안고 돌아

밖에 없다. 

이런 우리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책없이, 느릿하고, 홀가분하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