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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을 살아가는 거야
고바야시 에리코 지음, 한진아 옮김 / 페이퍼타이거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죽지 못했다.
이것은 죽지 못한 내가 다시 살아가기까지의 이야기다."
프롤로그의 마지막에 써 있는 이 문장이 마음에 걸린다. 죽음이라는 종착역은 쉽사리
여행객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는가 보다. 주변에 꽤 많은 이들이 그 역에 가려고 티켓을
준비했지만 정작 그곳에 자신들이 원하는 그때 도착한 이는 없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그냥 살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삶과 죽음이 담겨있다. 철저하게 무너지고, 치열하게 버텨내고, 죽을 만큼
살아내는 저자의 인생이 가감없이 민낯을 보인다. 정신장애, 기초생활수급자, 자살미수....
얼핏 보기에도 녹녹히 않은 삶의 파편들이다. 어느것 하나 쉽게 해결될 가능성 마저 존재하지
않는 잿빛 하늘이다. 저자는 이런 현실 앞에 맞서기로 하고 당당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 지옥을 살아가는거야'
가난을 경험한 사람은 저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두려워진다.
점심 후 차 한잔이 부담스러워지고, 저축은 꿈도 못 꾸며, 패트병에 든 음료 하나를 구입
하는것도 망설여진다. 여기저기 지출되어야 할것들을 미루고 미루는 심정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그러다보니 기초생활수급자의 자살율이 전체 자살율보다 월등히 높다.
의미없이 단지 막연하게 살다보니 삶은 고통스럽고 서서히 사회로부터 고립되기 시작하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들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인데 아쉽게도 지금 우리가 그렇다.
그런 저자가 무려 10년만에 월급이라는 것을 받았을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울고 싶을 만큼' 감동할 것이다. 저자는 이날 소박한 사치를 부린다. 비록
할인으로 사는 것이지만 회도 사고, 닭다리와 튀김가루도 산다. 튀김옷을 입히고 기름에
튀길때 나는 '차르르' 소리는 행복한 비명일 것이며 참치회 한 점과 함께하는 시원한 맥주의
목 넘김은 그야말로 '끝내주는' 조합이다. 그저 평범하게 일하고 평범하게 살아 가고 싶은데
사회적 약자에게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화려한 보석도 값비싼 옷도 필요 없고 단지 하루하루
만족하며 사는 것 이것이 저자가 꿈꾸는 큰 욕심이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고바야시들이
꿈꾸는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소확행'이러는 말이 유행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의 줄임말인데 뭔가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지만 자신의 삶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통해 만족하며 인생
자체의 주인이 되어 주도적 삶을 사는 것 이것이 행복의 출발이다. 어렵다고 힘들다고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해보는 것, 그냥 걸어가 보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그렇게
한 발씩 내딛다 보면 어느새 조금은 수월해진 또 다른 지옥을 만나게 될것이지만 이미 거쳐온
그 길은 처음보다는 훨씬 쉽다.
저자는 그렇게 세상과 편견과 맞선다. 지옥을 살아내고 있는 그녀의 인생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