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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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간절함의 기원은 어디일까?'

스스로도 이해할 없는 열정으로 때론 몰입으로 한차례 격렬한 폭풍이 지나면 찾아오는

탈진을 즐기는것 처럼 우리는 또다시 무언가에 빠지게 된다. 대부분이 그렇다. 한가지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찾는다. 그런데 저자는 조금 달랐다. 한결같다. 한결같이 인물을

갈망하고, 한결같이 인물을 찾고, 한결같이 인물의 길을 걸어 간다. 마치 파랑, 노랑,

빨강의 빛이 만나면 다시 하얀 빛이 되는 처럼 저자의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심리학이

만나는 교집합에서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의 편지는 아름다운 문학 작품으로 다가왔고,

그의 그림을 통해  동료와 사람들 심지어 부모에게까지 무시와 배척을 당하고 비난의

대상이었던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심리학적 몸부림을 느꼈고, 오직 '그릴 있는

자유' 찾기 위한 처절한 싸움과 대립은 자신의 영역에 만족하면 결코 보이지 않는

' 너머의 세계' 꿈꾸는 여행이다.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삶을 그는 Vincent

Van Gogh(1853-1890)이다. 

누군가가 좋아지면 가리지 않는 성격은 저자와 내가 아주 많이 닮았다. 일본손보재팬

건물에 빈센트의 작품 '해바라기' 소장되어 있음을 알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 이른 아침

건물 앞에서 전시관 문이 열리기를 한참을 기다렸으나 하필 날이 휴관일임을 뒤늦게

저자나, 대학 한눈에 반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일주일을 같은 시간대에

그곳을 서성였던 나나 오십보 백보다. 이렇듯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는 사람을 그곳으로

이끈다. 저자가 뉴옥현대미술관에서 빈센트의 그림을 펑펑 울었던것 같이 나는

그녀를 다시 그냥 그자리에 멈춰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움은 그런것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가슴절이게 그리워하는 앞에서는 자동으로 무장해제가 된다.

그렇게 빈센트를 사랑하게 저자는 그의 작품을 따라 그리기도 하고 색칠도 한다. 마치

내가 다시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기약없는 기다림을 시작한것 처럼.


빈센트. 그는 고독한 사람이었다. 동생 테오를 제외하면 제대로 그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이도 없는 평생 타인의 오해, 비판, 멸시, 조롱 속에서 혼자였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등을

돌려 버리는 환경에서 벌이는 사투는 어느덧 그의 영혼을 갈아 먹기 시작한다. 타인의

끊임없는 오해와 싸우는 소모전은 빈센트에게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작품을 남기게 하는

승리를 거두는가 싶었지만 자신의 삶을 남김없이 태워 하나뿐인것, 가장 빈센트적인 무언가를

창조한 그는 정작 텅빈 부스러기가 되어있었다.

책에는 수많은 빈센트의 작품이 나온다. 그럼에도 유독 눈길이 가는 작품은 얼굴 표정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도 슬픔과 절망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영원의 '(1890)이라는 작품이다.

눈에 보이는 얼굴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얼굴을 그리는 , 얼굴의

눈코입이나 표정이 아닌 그림 자체가 전달하는 분위기나 묘사 하나하나에서 '인물의 슬픔'

자체를 표현한 작품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투박하게 색칠 인물의 옷과 주름에서

느껴지는 삶의 굴곡과 아픔이 그렇고, 바랜 벽의 볼품없음으로 느껴지는 인생의 무게가

그렇고, 닳고 닳은 구두에서 느껴지는 하루의 고단함이 그렇고, 얼굴을 감싸쥔 거친 손에서

느껴지는 고된 삶이 그렇고, 모든 것을 덮어주듯 타고 있는 벽난로의 불길이 그렇다. 저자의

표현처럼 작품은 사람의 '마음의 지문' 같은 절망의 속살을 드러낸다.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빈센트가 가장 깊은 슬픔을 느낄때 말이다. 고갱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때 자신의 귀를

잘랐던 것도 '제발 들어줘'라고 절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니

제발 마음의 귀를 열어 말을 들어 달라고. 그리고 그는 그렇게 귀가 잘린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다. 고독과 외로움에 정면으로 맞서던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그렇게 죽어 갔고 유일한

지지자였던 동생 테오와 오베르쉬르위아즈의 양지 바른 곳에 나란히 묻혀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눈이 행복했다. 수도 없이 나오는 빈센트의 그림과 해설은 개인전에 초대 받아

작가에게 직접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훌륭한 작품집을 제작한 작가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하며 빈센트의 사랑에 대한 마디를 전한다. 

"아름다움이 가져다 주는 행복은, 우리를 단번에 무한으로 이끌어 준다. 마치 사랑에 빠졌을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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