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신영복 - 우리 시대의 지성 신영복을 읽는 10가지 키워드
이재은 지음 / 헤이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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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암울했던 시기를 살아낸 이들에게 희망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 앞에 던져진 선생님의 외침은 커다란 울림을 가졌다. 짤막한 글귀

하나에 감격하기도 했고 묵직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시대의 젊은이들이 이젠

반백의 나이를 훌쩍 넘겨버린 중년의 되었지만 아직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고 선생님은

계시지 않는다. 영어에 몸에서 풀려나신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하실 실제 수업정원보다

훨씬 많은 386세대들이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도강을 했고 나도 중에 하나였다. 

책은 선생님의 강의를 실천, 자유, 차이, 공존, 화화, 공부, 존재, 연대, 변방, 관계의

개의 주제를 가지고 풀어 나간다. 익히 들었던 내용들임에도 여전히 날카롭고 깊다.

그리고 새롭다. 무뎌진 가슴을 들어 내며 새순이 돋게 하는 마력도 있다. 


'여름 징역 살이'

여름 교도소의 타인과 겨울 교도소의 타인을 예로 설명하시는 '타인이라는 가능성과 한계'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전이 된다. 상황에 따라 타인이 전해주는 온기도

다르게 느껴지고 동일한 존재임에도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타인이지만 '타인은

나의 가능성이다' 말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진다. 5년이라는 왕따의 시간을

보내며 생각이 변화했고 자신이 변화한다는 것이 동료 재소자들의 경험을 목발로 삼아 서툰

걸음을 시작하는 것임을 발견하신 선생님은 강의에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 걸음'

걸음은 다리 하나로 걷는 걸음이다. 불편하기 그지없는 불완전한 걸음걸이를 완전한

걸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이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 타인에 기대어

존재하는 '비스듬히' 내가 걷기 위해 '목발' 의지하지 않을 없음을 말하는 ' 걸음'

모두 우리의 삶이다. 그렇기에  타인 없는 나는 존재 불가능하며 타인은 나의 존재를

가능케하는 근거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해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타자와의 관계를

맺는 것이며 이는 묵자의 '겸애'이며 예수의 '사랑'이다. 이에 대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 시대의 삶은 서로 만나서 () 되지 못하고 있는 외딴 (點)입니다.

더구나 ( ) 이루지 못함은 물론입니다.'


우리가 한참 도강을 하던 시절 선생님의 화두는 변방(邊旁)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중심에서고

싶어하고 중심에 서기 위해 악도 서슴지 않는다. 주변으로 밀려 나는 것은 패배이기에 어떻게든

버티려고 몸부림을 친다. 이게 본능이다. 이에 대해 '누구도 변방이 아닌 사람이 없고 어떤 곳도

변방이 아닌 곳이 없고, 인간의 자체가 변방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강의는 분명

혁명이었다. 중심유지가 최고의 덕목이고 중심지향이 최선의 목표라고 생각하던 우리에게 변방

마이너리티가 되라는 주문은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었기에 우리는 도강을 하는 주제임을

망각한채 서슴없이 질문을 하기도해 조금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우리에게

변방은 자유세계이며 가변적이고 유연한 가능성을 가진 씨앗을 품은 대지이기에 탈주(脫走)

세계가 변방이니 억울하고 부자연스럽고 답답함을 벗어나 변방의 자유함을 누리라고 말씀하셨

었는데 책의 곳에서 이를 발견하게 되니 그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당신 스스로

중심에 갇히지 않는 자유함을 누리셨기에 당대의 지배질서이자 이데올로기인 '중심' 별반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노자의 '비움과 채움'과도

괘를 같이 한다. 이렇게 변방이 창조적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 이것이 극복되지 못하면 변방은 그야말로 '변방' 지나지 않는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삶의 중심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바깥에 있는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게 되고 이런 사람은 발전 없다. 


책을 덮으며 생각이 났다. 꼿꼿이 서서 강의를 하시며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하시는 선생님이

그려졌다. 비록 그때 우리는 이미 사회로 뛰어든 뒤였고 같은 학교도 아니었지만 수업을 마치고

온수역 뒤편의 돼지갈비집에서 밤이 늦도록 강의 강의를 들었던 시절이 그립다.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산다는 것은 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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