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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였던 날들을 기억해요 - 우리였던 기억으로 써 내려간 남겨진 사랑의 조각들
박형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우리가 우리였던 그때 모든 것이 최고였다. 보내는 시간도, 함께하는 공간도, 지나가는
사람들까지도 최고였다. 그때 우리는 서로에 목말라했고 서로를 궁금해 했으며 서로를
탐닉해 나갔다. 혼자라는 두려움이 함께라는 행복으로 바뀌어 짧은 헤어짐조차 용납하기
어려운 우리는 서로 그렇게 사랑을 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랑해' 이전과 이후로
나뉘며 '사랑해'라고 말하는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혹은 그녀)를 중심으로
움직여 간다.
저자는 이러한 사랑과 헤어짐과 그리움을 열다섯편의 영화와 함께 풀어 나간다. 뷰티
인사이드, 가장 따뜻한 색 블루, 한공주, 컬랙트.....등등 그림 같은 영화 열 다섯편을 선택한
저자의 영화보는 안목은 정확하다. 아프고 아프지만 이별을 차마 먼저 말하지 못하는 여자를
위해 '이제 그만 헤어지자 그게 좋을것 같아'라고 말하는 우진(뷰티 인사이드)이나 '유일한
한 사람'에서 '단지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어버린 테오도르(그녀)의 아픔과 슬픔이 그랬고,
유일하게 남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동윤에게 '잘못된건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라는
말을 듣고 죽음을 선택하는 기태(파수꾼)의 외로움과 아픔이 그랬다. 모두가 사랑을, 그저
한 사람이라도 나를 제대로 사랑해주기를 바라지만 결국 곁은 늘 비어있고 외롭다. 애써
사랑을 찾지만 허무하고 아무것도 아닌 공허만 존재한다.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는 것인가?
여기에 연희(1987)의 '신발'은 마침표를 찍는다. 멋지고 친절한 선배와의 첫 만남에서의
'하얀 운동화' 경찰차에 실려 어딘가도 모르는 곳에 버려진 연희에게 달려온 선배가 내미는
'하얀 운동화', 최루탄이 난무하는 학교 정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진 주인 잃은 '하얀 운동화'
그리고 선배의 죽음. 멋지고 친절한데다 오묘한 감정까지 주고 받은 이와의 이별은 연희의
인생의 가치관과 방향 마저도 바꾸어 놓는다. 단순히 좋아하는 선배를 잃은 상실감이 아닌
함께 꿈꾸고 싶었던 세상, 마음껏 연애하고 행복해도 되는 세상을 위해 그해 6월의 이어
달리기는 계속된다. 이 또한 사랑이다.
이 책엔 여러 종류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사랑이 존재한다. 어떤 것이 진짜 사랑이고
어떤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 보다 이 모든것이 사랑이고 가슴 저린 아픔이다. 이 아픔의
편린들을 모여 하나의 사랑을 이룬다. 그래서, 그러나, 그리고, 그럼에도 우린 사랑했다. 어쩌면
하나의 사랑은 무수한 접속사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