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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곽미경 지음 / 자연경실 / 2019년 1월
평점 :
사대부와 칠거지악과 남존여비로 대표되는 조선의 어느시기(정조무렵)에 대립과
갈등이 아닌 사랑과 지켜야만 하는 의리를 가지고 자주적 삶을 개척하려는 한 여인의
삶을 저자의 재치있고 맛깔스런 글로 표현한다. 건륭제와의 '허공에 기대서는'에 대한
논쟁에서도 세손과의 짜릿함 만남에서도 예의 저자의 필력과 깊이는 발휘된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글에 녹여 내는 것이 글쓰는 이의 본분이라면 시대의 아픔과 충돌을 녹여내는
면에서나 관행과 관습과의 무한 대립을 그려내는 부분에서도 그 본분을 다한다.
빙허각(憑虛閣). '허공에 기대어 산다'라는 뜻대로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를 개척해 나간 그녀의 삶은 비록 문헌이나 기록에 상세히 알려지지
않았기에 작가적 상상력이 어느정도 가미되었을법하나 그 역시도 조선시대의 여인임에는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페미니즘인듯 하지만 오히려 주체적 실존주의에
가까운 내용들은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가슴절절한 '의리'라고 표현하는게 옳을 것만 같은
그의 삶은 지고지순을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살았던 조선시대 여인들에게 혁명적으로
다가갔을법도 한데 실상 우리는 그녀에 대해 별반 아는게 없다. 이는 역사의 기술이 철저히
남성중심으로만 되었던 시대의 탓인지, 혹은 그의 주체적 삶과 기술들을 별반 하잘것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 당시 주도세력들의 치졸한 편견인지 여튼 그에 대한 기록은 과히
많지 않다.
그럼에도 빙허각 이씨와 남편(서유분)과의 사랑은 절절하다. 직접 옷을 지어 입히기도 하고
꽃술을 담궈서 시를 나누며 마시기도 하고 아이들의 연이은 죽음 앞에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몇차례나 죽음을 선택하는 그녀를 어김없이 살려내는 모습들은 가슴 절절하다. 특히나
남편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하는 둘의 사랑은 가슴시리도록
치열하다. 그렇게 별을 좋아했던 유분은 먼저 별이 되었고,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눈을 가진
소녀 선정도 별이 되어 밤하늘에서 반짝인다. 그것도 유분의 별 옆에서.
그렇게 살다간 그녀의 삶이 부럽고 아쉽다. 그렇게 당당하게 살 수 있음이 한 없이 부럽고,
그럼에도 여전히 뛰어 넘지 못한 벽이 못내 아쉽다. 허공에 기대선 것처럼 어느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주체적 삶을 살아간 그녀의 모습이 궁금하다. 아름답고 멋지고 매력적인
빙허각이라는 인물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는 이 책은 오랜만에 읽은 가슴 뜨거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