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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4 - 태평천국 Downfall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4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850년대 중국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하는 지역 군벌들의 전쟁터였다.
각 지역에서 징발되는 군사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몇개의 거대군벌을 형성하고
이 군벌들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인 패권을 누리게 된다.
태평천국이란 청나라 말기 홍수전과 농민반란군이 거의 14년간 권력을 잡으면서 존속했던
국가(1851-1864)로 온갖 악마의 유혹으로 타락이 극에 달한 중국을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진 중국 역사상 최초로 유일신 사상을 도입한 나라이다. 이는 농민혁명의 출발점이
되었고 한('漢)민족주의는 쑨원으로 대표되는 동맹회의 혁명 운동으로 이어졌다. 비록
수많은 약점을 가진 국가였지만 태평천국 말기에 보여준 강력한 대외 저항운동은 열강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중국의 완전 식민지화를 저지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태평천국의 난과 2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을 바라보는 조선과 일본의 시각차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수도 없이 드나들던 사신들이 태평천국을 그저 지방 도적떼의 준동정도로 취급한
조선과 한족 부흥운동이자 대륙의 패권이 걸린 내란으로 보는 일본의 시각은 분명 차이가
크고 결국 그 차이가 각 국의 생존 전략과도 이어지게 된다. 청나라와의 끝없는 전쟁으로
국력은 쇠퇴해 갔고 혁명을 일으킨 이들 내부에서도 친서양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면서 서서히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영불연합군과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등장하는 만몽팔기(기마대)와 다연발인 Amstrong gun의
전투는 마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마지막 장면처럼 최신식무기로 무장한 군대와 여전히
구식무기를 가진 군대와의 허무한 싸움이었다. 압도적인 숙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청군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것이 비해 연합군은 전사 5, 부상 47명뿐인 압승을 거두며 북경성
18km앞 까지 진입하게 되며 북경성 함락 직전 굴욕적인 베이징 조약(1860)을 체결하여
텐진조약(1858)의 재확인 비준과 홍콩 반도를 내주게 된다. 하나 사실상 이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러시아였다. 총 한방 쏘지 않고 흑룡강 너머의 땅 뿐만 아니라 연해주를 통채로
할양받는 엄청난 어부지리를 취하게 된다. 이때 중국인 노동자들의 해외이주가 허용되어
전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이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역사는 흐른다고 했던가.
극동을 거저먹은 기분에 우쭐해 있던 러시아는 6년후 잠재된 보물창고인 알라스카를 미국에
헐값에 넘기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그후 1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땅을 치며 후회를 하고
있다고 하니 역사는 분명 흐르는 것 같다.
특별히 1850년대 연대기는 각 연도별로 조선과 중국, 일본, 열강들의 중요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아 책을 읽으며 큰 도움이 되었다. 청의 함풍제 서거 후 공친왕과 의귀비의 육개장 속
고사리 모의는 첩보전을 보는 것과 같이 실감나게 표현되었고 고사리와 고기로 만든 'kiss'가
'kill s.s' 로 바뀌는 대목에서는 그 기발함에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보정8대신을 처단하는
장면에서 보여지는 결단력은 대륙다웠고 공친왕이 재상격인 의전왕에 임명되는 순간엔 자연스레
수양대군이 떠올랐다. 이때 동치제의 생모인 성모황태후가 자금성 내전 서쪽 전각에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가 잘 아는 서태후의 일대기가 시작된다.
중국이나 조선이나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발전한 서구 문물과 근대화를 이룰 기회가 있었음에도
저자의 글처럼 '거친 침략자들의 총구(대포) 앞에 대륙의 뱃살이 무력하게 흘러 내렸다'. 결국
골든타임과 포탠셜을 놓쳐버린 청나라는 50년후 패망에 이르게 된다. 태평천국과의 10년의 시간을
제대로 보냈다면 이렇듯 허망하게 무너지진 않았을것이라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역사는 분명
지금 이순간도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