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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도 글을 쓰거나 사인을 해야 할 경우 잉크가 들어 있는 만년필을 사용하거나
연필을 사용한다.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며 번져 나가는 모습과 종이를 스치며
지나갈때 나는 서걱거림은 늘 나를 설레게 하는 소리다. 저자가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을 잉크와 연필을 사용하여 종이의 빈 여백을 채워나갔다는 사실에 묘한
동질감과 더한 반가움을 느꼈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말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건 틀렸다.
어떤 아픔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아픔의 강도가 처음에
100이었다면 90, 80, 60,....이렇게 작아지는 것이지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다만 그 시간을 살아 낼 뿐이다.
여전히 잘 흘러가는 '나의 삶' 속에서 저자가 느끼는 감정은 '결핍'이다. 일상속에
모자란것이 없고 외적인 장애가 없고, 돌발적인 사건이 없어도 절대적 결핍은
여전히 존재한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런 결핍이 있는데 어떻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저자는 '울고 말다'라는 짧은 글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한다. 그저 시간 만이 자신과 죽음 사이를 떼어 놓고 있을 뿐
어머니가 죽고 없는 지금 본인 또한 죽음으로 떠밀려 간다고 애도의 진심을 말하는
그의 모습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그의 마음을 표현하는 글이 있다. '이제는 영원히 껴안고 살아야 하는
무거운 마음속에서 가혹하고도 용서없이 자라나는 깊은 소망이여' 어차피 계속
살아남자면 피할 수 없고 반드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점점 깨달아 가는 그의 모습은
사막 한가운데서 발견되길 기대하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작은 소망이기도 하다.
'맺어져 있음'에서 '끊어짐'이 되어 끊어진 자리만 남게 되고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는
사랑의 관계가 끊어지고 찢어진 바로 그 지점이 슬픔이 놓여 있는 다른 곳임을 알아야
한다. 결국 이 슬픔은 우리의 자리 곳곳에 놓이고 우리는 그 슬픔을 이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기록에 대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라고 말하며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글을 쓴다.
잊혀진다는것은 아픔이다. 그러나 때로는 잊혀지는 것이 다행일 때가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잊어야 하나 아픈 현실 앞에 놓인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