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이 땅은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고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의 미국 대통령으로
있던 한창 컴퓨터 붐이 일어 나며, 천리안과 하이텔이 서로 자기네가 우수하다고
싸우고, 못 고치는 것이 없고 못 만드는 것이 없던 맥가이버 아저씨가 대세였던
그 시절..
이 책은 14살 빌리와 그의 친구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럽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타임머신과 같은 책이다. 엄마의 야간근무로 생긴 황금같은
자유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빌리는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는 마치 우리가 '
선데이 서울'을 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던 것처럼 '플레이 보이'지(그것도
자그마치 바나 화이트(유명한 게임 진행자이며 그를 토대로한 리미티드 바비
인형이 나왔을 정도의 유명인)누드가 실린)를 사기 위해 작당을 시작한다. 방법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잡지를 파는 곳 근처에서 우리를 대신해 사줄 만한 만만한
사람을 고르고 그에게 돈을 줘서 사오게 하거나, 다른 물건 틈에 넣어서 얼렁뚱땅
계산해 버리는 방법인데 빌리도 그랬다. 그리고 우리도 빌리처럼 돈을 몽땅 잃어
버리거나 계산대에서 들켜서 망신을 당했다. 흡사한 경험과 사건들을 글로 확인하니
실소가 나온다. 그만큼 그때 '선데이 서울'에는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의 전신 수영복
사진이 들어 있었고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것 자체 만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 가던
시기였다. 아마 빌리도 그랬을 것이다. 물론 호기심과 흥미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플레이보이의 꿈을 실패하게 만들었던 아저씨의 딸 메리에게
'러트거스' 대회가 열리며 상품으로 무려 IBM PS/2가 주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빌리는 어느새 플레이 보이의 꿈에서 게임 프로그램의 꿈으로 관심이 옮겨지고 집중하게
된다. 이 얼마나 단순한 변화인가. 앞 뒤 재보지 않고 좋으니까 그냥 하는 이런 무식함이
부럽다. 뭔가 하나 하려면 이것저것 재고 자르고 하다가 정작 중요한 기회 마저 놓쳐
버리는 우리네 어른들이 아닌가.
책을 읽으며 향수에 젖었다.
도스 프로그램, 플로피 디스크, 뚱땡이 모니터, 인터넷 통신의 연결음, 집안 구석구석 숨겨
놓았던 유명 배우들의 사진들.... 비록 그 시절 우리나라는 격동의 시기였지만 한없이
순박하기만 했던 십대의 기억이 아련하다. 그 때 그 친구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응답하라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