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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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죽음은 크게 슬퍼하지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죽음은 삶의 한 장면처럼 지나간다.

표제작 「바다 여인의 선물」의 빌은 평생 광고를 만들었지만 특별한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생 최고의 날에도 뜻대로 되지 않고, 우연히 만난 인어는 자신이 갇혀 있다고 말한다. 그 모습은 평범한 삶과 흘러가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데니스 존슨의 인물들은 특별하지 않다. 마약 중독자도, 음모론자도, 늙어가는 노인도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이 책은 죽음을 말하지만 결국 삶을 말한다. 삶도 죽음도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는 것.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하루가 우리 삶의 대부분이라는 것.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시선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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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맛있는 걸 먹으면 - 제13회 브런치북 소설 부분 대상작
이수민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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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1의 경쟁률을 뚫고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 선정된 작품이라는 소개만으로도 자연스레 기대가 생겼다. 제목처럼 이 책에는 에그타르트, 컵케이크, 바나나 브레드, 치맥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책이 들려주는 것은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음식을 매개로 스쳐 지나간 사람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수록된 에피소드는 열다섯 편 남짓. 서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아니고 분량도 길지 않다. 그래서 한 인물에게 깊게 몰입하기보다는, 한 편 한 편 짧은 온기를 건네받는 기분이 든다. 이야기의 결은 모두 비슷한 방향을 향하고 있고, 그 덕분에 책을 덮고 나면 하나의 긴 기억을 읽은 것처럼 잔상이 남는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의자 이야기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한 남자가 형편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자신을 위해 300만 원에 가까운 의자를 산다. 누군가에게는 무모한 소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의자를 둘 공간을 만들고, 생활을 정리하고, 하루를 조금 더 성실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기준이 된다. 결국 그는 강의비를 마련하기 위해 의자를 팔지만, 마침 그 의자가 제작자의 유작이 되면서 더 높은 가격에 팔리게 되고, 끝내 시험에도 합격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좋아한 이유는 성공담 때문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당장의 허기를 채우는 소비가 아니라, 스스로를 존중하기 위한 소비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결국 사람은 자신을 대하는 방식대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심사평 가운데 "불화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온기에 마음을 뺏겼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거창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지만 잊고 있던 다정함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힘이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수박을 사면 옆집에 몇 쪽을 나누어 주고, 엄마가 늦으면 이웃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놀던 날들. 경비 아저씨가 직접 기른 포도를 쥐여 주시고, 명절이면 전을 접시에 담아 이웃집 문을 두드리던 풍경. 그때는 음식을 나눈다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반대로 가장 씁쓸했던 기억도 있다. 이사하면서 이웃들에게 이사 떡을 돌리고 싶어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낯선 사람이 준 음식은 먹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으니 차라리 대형마트에서 산 롤케이크를 주라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놀랐고, 곧 씁쓸해졌다. 서로를 의심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어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그 시절로부터 생각보다 훨씬 멀리 와버린 걸까.

이 책은 음식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사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온기를 조용히 떠올리게 만든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누구나 음식 하나쯤에 얽힌 자신의 기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기억이 잠시라도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면, 이 책은 이미 충분한 역할을 해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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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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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슴슴한 맛을 좋아한다. 일상에 자극적인 맛들로 가득하기에 은은히 느껴지는 슴슴함이 좋다. 그래서 슴슴함이 느껴지는 이 책이 참 좋았다.
사건 자체를 보면 크게 자극적이지 않다. 우연히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만난 노인과 소년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이 기회로 인생이 변화한다는 그런 맥락에서 말이다.
하지만 자칫 뻔할 수 있는 클리셰라도 이 책은 절대 뻔하지 않다. 그것은 '시'와 '덜시'라는 인물의 매력도가 아닐까 싶다.
배경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쯤, 덜시가 사랑한 이는 시인이자 전쟁을 일으킨 나라 독일 사람이다. 성별이 같다는 것이 작게 보일 정도로 전쟁 종주국 출신이라는 것이 크게 반감을 줄 수 있는 시대이지 않았을까. 쉽지 않은 사랑은 그녀의 자살로 끝나게 되고, 덜시는 그녀와 함께 살던 집에 그녀의 유고와 함께 남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덜시는 삶을 지속했다는 것이다.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으면서 말이다. 덜시가 소년에게 음식과 문학을 권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대화하고 함께 시를 공유할 사람이 있었으면 했을 것 같다. 아무리 단단한 사람도 숨통을 트여줄 가까운 이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소년의 입장에선 낯선 덜시가 베푸는 선행이 어색하고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덜시는 자신이 가치 있음을 믿으라고 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해한 관계가 시작된다.
이런 시대에서 도피처가 되건, 삶의 안식이 되건, 그냥 좋건 간에 문학을 향유한다. 그 어떤 여유가 넘쳐나서라기보단 더 간절히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소년은 학교에서 배운 수업이 문학을 접할 기회가 다였고 그마저도 지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덜시가 쥐여주는 책과 원고 더미는 받아들게 된다. 그리고 읽게 된다. 그리고 느끼고 감각한다.
시가 삶이고 삶에는 시가 있었다.
이들이 요리를 해서 먹고 시를 낭송하고 드라이브를 다니는 일상은 고요하나 힘차고 뭉클하다. 일상에서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너무 가득 차 시끄러울 때 내면을 잔잔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책이다. 문학과 더 가까이 다가갈 끈을 내려줄 책이며 흐뭇한 미소를 띠며 볼 책이다. 이런 책이라면 수십 번 다시 읽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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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개정합본판
김보영 지음 / 래빗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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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두 주인공이 만나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보다 만나지 못하는 남녀 주인공이 전하기도 힘든 편지를 주고받으며 보여주는 애절한 사랑이 더 마음 아프고도 더 사랑스럽다. 이런 SF 장르의 프러포즈 소설이라니.
서로의 기다림이 길어지고 길어져도 기억하고 잊지 않고 만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 간절하여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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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상회 ㅣ 다이쇼 본격 미스터리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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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키 하루오 작가를 <방주>로 처음 만났다. 책을 읽고 어마어마하게 충격을 받았고, 그렇게 빠져들게 되었다. <십계>와 <방주>가 서술을 과감하게 쳐내고 결말을 향해 뛰어간다면, <교수상회>는 시대 배경과 주변 인물들 모두를 조명하며 찬찬히 이야기를 쌓아나간다. 추리 소설도 좋아하지만 소설 자체를 즐기는 나에게는 너무나 귀중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은 도둑 하스노다. 엘리트였고 궁핍함 없이 살 수 있던 그는 도둑으로 전직한다. 그리고 도둑질이 발각되어 감옥에 다녀온다. 이후 그에게 어쩔 수 없는 사건들이 들어오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해결해주게 된다. 이 이야기들은 <시계도둑과 악인들>에서 보았다. 이 책을 읽을 때 하스노는 왜 도둑이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교수상회>를 완독했지만 아직 뚜렷한 이유를 모르겠다. 더 큰 이유가 있을까, 아니면 단순한 변심일까.

반전의 제왕답게 마지막 마무리를 깔끔하게 맺었다. <살로메의 단두대>를 어서 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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