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슴슴한 맛을 좋아한다. 일상에 자극적인 맛들로 가득하기에 은은히 느껴지는 슴슴함이 좋다. 그래서 슴슴함이 느껴지는 이 책이 참 좋았다.사건 자체를 보면 크게 자극적이지 않다. 우연히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만난 노인과 소년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이 기회로 인생이 변화한다는 그런 맥락에서 말이다.하지만 자칫 뻔할 수 있는 클리셰라도 이 책은 절대 뻔하지 않다. 그것은 '시'와 '덜시'라는 인물의 매력도가 아닐까 싶다.배경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쯤, 덜시가 사랑한 이는 시인이자 전쟁을 일으킨 나라 독일 사람이다. 성별이 같다는 것이 작게 보일 정도로 전쟁 종주국 출신이라는 것이 크게 반감을 줄 수 있는 시대이지 않았을까. 쉽지 않은 사랑은 그녀의 자살로 끝나게 되고, 덜시는 그녀와 함께 살던 집에 그녀의 유고와 함께 남게 되었다.여기서 중요한 점은 덜시는 삶을 지속했다는 것이다.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으면서 말이다. 덜시가 소년에게 음식과 문학을 권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대화하고 함께 시를 공유할 사람이 있었으면 했을 것 같다. 아무리 단단한 사람도 숨통을 트여줄 가까운 이가 필요하니까 말이다.소년의 입장에선 낯선 덜시가 베푸는 선행이 어색하고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덜시는 자신이 가치 있음을 믿으라고 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해한 관계가 시작된다. 이런 시대에서 도피처가 되건, 삶의 안식이 되건, 그냥 좋건 간에 문학을 향유한다. 그 어떤 여유가 넘쳐나서라기보단 더 간절히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소년은 학교에서 배운 수업이 문학을 접할 기회가 다였고 그마저도 지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덜시가 쥐여주는 책과 원고 더미는 받아들게 된다. 그리고 읽게 된다. 그리고 느끼고 감각한다.시가 삶이고 삶에는 시가 있었다.이들이 요리를 해서 먹고 시를 낭송하고 드라이브를 다니는 일상은 고요하나 힘차고 뭉클하다. 일상에서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삶이 너무 가득 차 시끄러울 때 내면을 잔잔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책이다. 문학과 더 가까이 다가갈 끈을 내려줄 책이며 흐뭇한 미소를 띠며 볼 책이다. 이런 책이라면 수십 번 다시 읽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