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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취향 - 교유서가 소설
김학찬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모든 형들은 개새끼다.
나는 동생이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형을 개로 만들면 아버지도 개가 되고, 나도 개일 수밖에 없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
역겹지만, 연연범이란 겨우 이런 것에 불과하다."
이 책은 시작부터 강렬하다. 형을 개로 만들어버리며 열린다. 처음엔 형제 싸움이구나, 사소하게 툴툴거리는 동생의 입장이겠거니 했는데, 곧 형을 등쳐먹는 악랄함이 드러난다. 그리고 형이 오히려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며 아주 오묘한 모순을 만든다. 딱 이 글이 김학찬 월드 입장권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님 글은 엄격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신나게 수다 떠는 사람 같다. 이를테면
"띄어쓰기까지 하고 마침표까지 찍은 잘 들어가라.가 생각거면, 고마워!나 건강해♥ 는 프러포즈겠네."
이렇게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말투로 공감과 웃음을 동시에 끌어낸다.
<프로포즈>편에서는
"취향은 존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사소한 취향이 있다. 소설가가 등장하는 소설은 질색이다."
라는 문장이 시작을 연다. 소설가가 등장하는 소설은 질색이라면서, 화자는 소설가다. 게다가 여기서는 하루키가 나온다. 그것도 아주 태연하게.
"하루키는 정확하게 자신이 마신 술값만 내고 갔다.
새로 나온 소설도 주지 않았다."
이렇게 실명을 거론해도 되나 싶었다. 하루키가 언급돼서 그런지 몰라도 『빵가게 재습격』이 떠올랐다. 의도했을까? 분위기는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김학찬 작가의 결이 훨씬 익살맞고 능청스럽다. 이 편은 실제와 허구, 실명과 거짓말을 자유롭게 섞어 독자를 몰아세우고, 마지막엔 달달하게 매듭짓는다. 가장 마음에 든 편이다.
이 책에는 소설가, 혹은 소설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농담 섞인 비판이 종종 등장한다.
"이걸 진심으로 소설이라고 썼습니까?
어디서 본 소설을 대충 흉내낸 것에 불과함 / 밥에 콩 좀 넣지 말라고!"
"파급효과 및 기대효과를 쓸 때는 난감했습니다. 기록이나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을 설명해야 하는데-새삼 이제 와서 문학은 무용하기 때문에 유용하다고 또 써도 괜찮을까요."
이런 식이다.
본인을 까며 우스꽝스러운 위치에 두면서도, 동시에 ‘소설’이라는 형식을 자꾸만 상기시키고 비틀어놓는다. 읽는 입장에서는 계속 가볍게 웃다가도 깊어지는 순간이 온다. 오락가락한 기분이 꽤 즐겁다.
작가님이 책을 읽는 나를 몰래 보며 능글맞게 웃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