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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디자인 - 디자인의 선과 악, 다크 디자인 투어리즘
마쓰다 유키마사 지음, 조지혜 옮김 / 교유서가 / 2025년 6월
평점 :
우리는 흔히 ‘디자인’이라는 단어에서 세련된 아름다움이나 생활의 편리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마쓰다 유키마사의 저서 《전쟁과 디자인》은 디자인이 지닌 전혀 다른 얼굴, 즉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전쟁으로 이끄는 선동의 도구로서의 역사를 차갑게 파헤친다.
중세 십자군 원정부터 오늘날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디자인이 어떻게 권력의 시녀가 되어 대중의 눈과 귀를 가려왔는지 보여준다.
책장을 넘기며 마주하는 포스터와 상징들은 디자인이 얼마나 치밀하게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지 증명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아빠는 전쟁 때 뭘 했어?”라고 묻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나, 정면을 응시하며 “아직도 불참한 사람은 당신인가?”라고 묻는 존 불의 이미지는 논리가 아닌 수치심과 죄책감을 자극해 평범한 가장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다. 이러한 선전물이 당시 광고대행사의 전략적인 기획 하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디자인의 설득력이 때로는 총칼보다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색채가 가진 정치적 힘이었다. 나치는 노동자의 색인 붉은색을 훔쳐와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고, 소련과 중국 역시 붉은색으로 사상을 도배하며 대중을 현혹했다.
이러한 색의 정치는 현대에 와서 더욱 기이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해리 포터 20주년 기념판 표지가 단지 파란색과 노란색의 조합, 즉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만으로 러시아에서 소지자가 구속되었다는 일화는 전쟁이 인간의 이성을 얼마나 마비시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단지 책 표지의 색깔일 뿐인데도,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는 그것이 곧 죄가 되고 표적이 되는 부조리함을 목격하며 디자인이 지닌 잔혹한 영향력을 실감했다.
현대의 전쟁에서도 디자인은 여전히 강력한 무기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카키색 티셔츠를 입고 국민과 함께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를 구축한 반면, 푸틴 대통령은 최고급 정장을 입어 현실과 동떨어진 독재자의 모습을 자초했다. 이처럼 의상 하나, 색깔 하나가 전 세계의 여론을 움직이는 치밀한 이미지 전략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모노노케 히메>가 떠올랐다. 영화 속 자연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지만, 인간의 해석과 개입에 따라 신이 되기도 하고 재앙신이 되기도 한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처럼 디자인 자체에는 죄가 없다. ‘설계하다’와 ‘꾀하다’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디자인은, 그것을 쥐고 흔드는 인간의 손에 의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대중을 광기로 몰아넣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디자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시각적 효과에 쉽게 휘둘리고, 화려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의도를 간파하기 어렵다. 책을 보며 디자인이 지닌 ‘마력’을 경계하고, 미디어와 권력이 보여주는 이미지 너머의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눈앞의 수많은 이미지는 여전히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혹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비극적인 역사에 동참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시각적 효과로 인한 비이성적 두려움과 선동에 넘어가지 않도록 말이다.
여러모로 지금까지 끝나지 않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을 생각하며, 많은 이들이 그릇된 말과 편향된 시각으로 선동되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