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밤
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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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해파리가 되고 싶어질까.

<지싱의 밤>을 읽는 내내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이었다. 변종 해파리의 촉수에 닿으면 인간은 해파리가 된다. 삶이 버거운 사람들은 강과 희조를 찾아가 불법으로 해파리가 되기를 선택한다. 설정만 보면 기괴한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읽고 있으면 그 선택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해파리는 형태가 없다. 흐르는 대로 움직이고,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젤리처럼 투명한 몸은 가볍고, 세상의 무게를 조금도 짊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인간이 해파리를 동경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책임도 후회도 없이 흘러가고 싶은 마음.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상상을 해 봤을 테니까.

그런데 작품은 흥미롭게도 해파리가 되는 과정보다 사람이 남는 과정을 보여 준다.

삶을 포기한 수는 해파리가 되기 위해 펜션을 찾지만, 해파리를 기다리는 동안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하루다. 하지만 그 하루가 수를 바꾼다. 마지막 밤, 수는 아무 말 없이 펜션을 빠져나간다. 강과 희조는 그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 잠든 채로 있다.

나는 그 장면이 좋았다.

누군가를 살리는 일은 거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설득도, 충고도, 눈물겨운 위로도 없었다. 그저 함께 밥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있었다. 그 평범한 하루가 수에게는 다시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을 만든 것이다.

사람을 해파리로 만들어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결국 한 사람을 사람으로 남게 했다는 점도 오래 남는다. 임선우 작가는 가장 기묘한 설정으로 가장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덮고 나면 해파리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남는 일이 조금은 괜찮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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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도시를 세운다면 - 인류가 우주에 진출하려면 꼭 해결해야 하는 숨은 난제들
잭 와이너스미스.켈리 와이너스미스 지음, 지웅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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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정착 얘기는 요즘 심심찮게 나온다. 화성 가자, 달에 기지 짓자. 각종 SF 영화들에서 자연스럽게 우주로 나가니까, 먼 미래의 일도 아닌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들도 우주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깐깐하게 따져본다. 스스로를 '우주 망나니'라고 부를 정도다. 다른 이들의 우주 기지 꿈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라, 위험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안전 가드레일을 세우고 싶다는 거다.

책은 생존의 기초부터 시작한다. 우주 방사선은 나쁘다는 건 알겠는데, 얼마나 나쁜지 정밀하게 결론 내리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현재 데이터는 대부분 원자폭탄 피해자나 방사성 물질 취급 종사자에게서 얻은 것들이라, 장기간 우주 방사선에 노출되는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우주비행사들한테서 직접 데이터를 얻으면 되지 않냐고? 일단 표본이 매우 적고, 우주비행사들이 건강 이상을 숨기는 문화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 커리어가 걸린 엘리트들에게 "몸 어때요?"라는 질문에 솔직한 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한 지휘관은 비행 전부터 염증 증세를 알고 있었지만 숨겼고, 동료 비행사의 임무까지 취소시켰다. 동료가 화를 낸 포인트는 몸을 숨긴 것이 아니라 들킨 것이었다.

아플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문제다. 무중력에서는 피가 공중에 방울방울 떠다니고, 체액 분포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국소마취가 제대로 퍼지지 않는다. 실제로 우주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외상 수술은 지금까지 0건이다. 그나마 있었던 테스트는 돼지를 대상으로 한 포물선 비행 중 심폐소생술 실험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더 복잡하다. 부분 중력 환경이 태아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가 화성 표면에 거대한 경사 원형 트랙을 지어 임신부가 계속 달리게 하는 것, 일명 '임신 롤러코스터'다. 저걸 아이디어라고 낸 건가 싶어 피식 웃었는데,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보낸다. 아니면 궤도 위에 허니문 여행지와 보육원이 결합된 '아기 우주정거장'을 만들자는 안도 있다. 한편 초창기 여성 우주비행사를 위해 NASA 엔지니어들이 설계한 배뇨 장치는, 여성 해부학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설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우주에서까지 겪는 남녀 차별이란🤦‍♀️

땅 얘기로 넘어가면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린다. 달 표면에는 실리콘, 알루미늄, 티타늄이 풍부하다. 그런데 원소가 있다고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티타늄을 다루려면 1800도짜리 용광로가 필요하고, 날카로운 달 먼지 속에서 실리콘을 뽑아내야 한다. 집 마당 흙에 알루미늄이 있다고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달에서 실제로 쓸 만한 땅, 즉 햇빛이 들고 물도 있는 지역을 다 합쳐도 리히텐슈타인 면적보다 작다. 그 작은 땅을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가 미래의 핵심 쟁탈전이 될 거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거주 공간 문제도 만만치 않다. 회전 바퀴로 인공중력을 만들면 된다고 하는데, 바퀴가 작으면 머리와 발이 느끼는 중력이 달라져 위장이 파업을 선언한다. 그래서 바퀴가 엄청나게 커야 하는데, 건설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화성에서 건축 자재를 현지 조달하자는 아이디어도 있다. 2021년 맨체스터 대학교 연구팀이 인간 혈액의 알부민 단백질을 화성 토양 샘플과 섞어 콘크리트 비슷한 재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책에는 '오븐으로 구운 레골리스', '달 콘크리트', '혈액 콘크리트'를 더 멋짐에서 덜 멋짐 순으로 나열한 도표까지 있다. 혈액 콘크리트가 덜 멋짐에서 또 한번 웃었다. 작가의 문체가 참 재밌어서 어려운 과학이야기도, 지루할 수 있는 정치와 법도 참 재밌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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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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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죽음은 크게 슬퍼하지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죽음은 삶의 한 장면처럼 지나간다.

표제작 「바다 여인의 선물」의 빌은 평생 광고를 만들었지만 특별한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생 최고의 날에도 뜻대로 되지 않고, 우연히 만난 인어는 자신이 갇혀 있다고 말한다. 그 모습은 평범한 삶과 흘러가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데니스 존슨의 인물들은 특별하지 않다. 마약 중독자도, 음모론자도, 늙어가는 노인도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이 책은 죽음을 말하지만 결국 삶을 말한다. 삶도 죽음도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는 것.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하루가 우리 삶의 대부분이라는 것.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시선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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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맛있는 걸 먹으면 - 제13회 브런치북 소설 부분 대상작
이수민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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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1의 경쟁률을 뚫고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 선정된 작품이라는 소개만으로도 자연스레 기대가 생겼다. 제목처럼 이 책에는 에그타르트, 컵케이크, 바나나 브레드, 치맥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책이 들려주는 것은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음식을 매개로 스쳐 지나간 사람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수록된 에피소드는 열다섯 편 남짓. 서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아니고 분량도 길지 않다. 그래서 한 인물에게 깊게 몰입하기보다는, 한 편 한 편 짧은 온기를 건네받는 기분이 든다. 이야기의 결은 모두 비슷한 방향을 향하고 있고, 그 덕분에 책을 덮고 나면 하나의 긴 기억을 읽은 것처럼 잔상이 남는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의자 이야기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한 남자가 형편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자신을 위해 300만 원에 가까운 의자를 산다. 누군가에게는 무모한 소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의자를 둘 공간을 만들고, 생활을 정리하고, 하루를 조금 더 성실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기준이 된다. 결국 그는 강의비를 마련하기 위해 의자를 팔지만, 마침 그 의자가 제작자의 유작이 되면서 더 높은 가격에 팔리게 되고, 끝내 시험에도 합격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좋아한 이유는 성공담 때문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당장의 허기를 채우는 소비가 아니라, 스스로를 존중하기 위한 소비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결국 사람은 자신을 대하는 방식대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심사평 가운데 "불화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온기에 마음을 뺏겼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거창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지만 잊고 있던 다정함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힘이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수박을 사면 옆집에 몇 쪽을 나누어 주고, 엄마가 늦으면 이웃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놀던 날들. 경비 아저씨가 직접 기른 포도를 쥐여 주시고, 명절이면 전을 접시에 담아 이웃집 문을 두드리던 풍경. 그때는 음식을 나눈다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반대로 가장 씁쓸했던 기억도 있다. 이사하면서 이웃들에게 이사 떡을 돌리고 싶어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낯선 사람이 준 음식은 먹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으니 차라리 대형마트에서 산 롤케이크를 주라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놀랐고, 곧 씁쓸해졌다. 서로를 의심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어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그 시절로부터 생각보다 훨씬 멀리 와버린 걸까.

이 책은 음식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사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온기를 조용히 떠올리게 만든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누구나 음식 하나쯤에 얽힌 자신의 기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기억이 잠시라도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면, 이 책은 이미 충분한 역할을 해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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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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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슴슴한 맛을 좋아한다. 일상에 자극적인 맛들로 가득하기에 은은히 느껴지는 슴슴함이 좋다. 그래서 슴슴함이 느껴지는 이 책이 참 좋았다.
사건 자체를 보면 크게 자극적이지 않다. 우연히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만난 노인과 소년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이 기회로 인생이 변화한다는 그런 맥락에서 말이다.
하지만 자칫 뻔할 수 있는 클리셰라도 이 책은 절대 뻔하지 않다. 그것은 '시'와 '덜시'라는 인물의 매력도가 아닐까 싶다.
배경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쯤, 덜시가 사랑한 이는 시인이자 전쟁을 일으킨 나라 독일 사람이다. 성별이 같다는 것이 작게 보일 정도로 전쟁 종주국 출신이라는 것이 크게 반감을 줄 수 있는 시대이지 않았을까. 쉽지 않은 사랑은 그녀의 자살로 끝나게 되고, 덜시는 그녀와 함께 살던 집에 그녀의 유고와 함께 남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덜시는 삶을 지속했다는 것이다.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으면서 말이다. 덜시가 소년에게 음식과 문학을 권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대화하고 함께 시를 공유할 사람이 있었으면 했을 것 같다. 아무리 단단한 사람도 숨통을 트여줄 가까운 이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소년의 입장에선 낯선 덜시가 베푸는 선행이 어색하고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덜시는 자신이 가치 있음을 믿으라고 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해한 관계가 시작된다.
이런 시대에서 도피처가 되건, 삶의 안식이 되건, 그냥 좋건 간에 문학을 향유한다. 그 어떤 여유가 넘쳐나서라기보단 더 간절히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소년은 학교에서 배운 수업이 문학을 접할 기회가 다였고 그마저도 지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덜시가 쥐여주는 책과 원고 더미는 받아들게 된다. 그리고 읽게 된다. 그리고 느끼고 감각한다.
시가 삶이고 삶에는 시가 있었다.
이들이 요리를 해서 먹고 시를 낭송하고 드라이브를 다니는 일상은 고요하나 힘차고 뭉클하다. 일상에서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너무 가득 차 시끄러울 때 내면을 잔잔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책이다. 문학과 더 가까이 다가갈 끈을 내려줄 책이며 흐뭇한 미소를 띠며 볼 책이다. 이런 책이라면 수십 번 다시 읽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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