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
최의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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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칭 시점으로 시작하는 독특한 소설. 당신은 기억을 잃었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른 채 2045년의 천안역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설정부터 무겁게 다가온다. 9년 전, 장애인들의 이동을 위해 만든 열차가 개통식 날 무너졌다니. 폐허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계 몸을 한 사람들과 그들을 쫓아내려는 세력의 대립은 읽는 내내 긴장감을 준다. 특히 이곳의 사이보그가 강함이 아닌 생존과 결핍을 상징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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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예술
이선아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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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만 중시하다가는 우리 도시는 자칫 삭막해지기 십상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때 의무적으로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하는 법규가 존재한다. 물론 최근에는 기금 출연으로 대체되는 등 제도의 취지가 다소 퇴색되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예술품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존재를 모르고 무심코 지나칠 뿐이다.
​이선아 기자의 『걷다가 예술』은 바로 그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을 '예술적인 순간'으로 바꿔주는 책이다. 저자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문턱을 넘지 않고도, 출퇴근길이나 백화점, 공원 등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23명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우고 론디노네, 이우환, 안도 다다오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내 생활 반경 안에 있었다니, 책을 읽으며 새삼 놀라움을 느꼈다.
​사실 나는 예술적 감각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다. 남편과 여행을 다닐 때도 같은 풍경을 보지만 서로 느끼는 바가 다를 때가 많았다. 남편이 감탄하며 찍은 사진을 나중에 보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이 그 프레임 안에 담겨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하는 순간들이었다. 이 책은 나처럼 예술이 낯선 이들에게 바로 그 '아는 만큼 보이는' 눈을 뜨게 해준다. 작품의 기원과 의미, 작가의 의도를 알고 나서 다시 보는 거리의 조형물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예술의 공평함'을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고가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 미술관이 아니라, 뻥 뚫린 하늘 아래 누구나 지나다니는 길 위에 명작들이 서 있다. 이는 예술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거리를 걷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위로와 영감을 건네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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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와이프
어설라 패럿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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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책으로 이혼한 여성의 이야기를 집어 든 건 묘한 우연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 이 텍스트가 신년을 맞아 되새길 만한, 분명한 목소리를 지닌 주제임을 깨달았다.
​서사는 꽤 파격적이다. 친구의 친구와의 불륜, 상간녀, 수많은 연인, 술과 파티 문화. 1920년대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아도 고자극이다.

​읽는 내내 밑줄을 긋게 된 건, 100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의 현실과 소름 끼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자유롭되 여성은 순결해야 한다는 모순, 이혼 후에도 남자의 비위를 맞추는 '전처 A등급'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
​책 속의 문장들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계가 끝났을 때 왜 여성만 더 가혹한 검열의 대상이 되는가. 남성의 방황은 '잠깐의 실수'로 용인되면서, 왜 여성의 방황은 '타락'으로 규정되는가.
​이혼 후에도 파티를 즐기고 욕망을 인정하는 여성의 모습은 당시에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이었겠으나, 지금의 시선으로는 비로소 온전한 자아를 찾아가는 치열한 투쟁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여성들의 연대다. 이별을 먼저 겪은 '언니'가 주인공에게 동거를 제안하며 기꺼이 곁을 내어주고, 훗날 주인공 역시 후배에게 똑같이 손을 내민다. 심지어 진정한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의 본처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도 분노 대신 침착하게 돕는 모습은, 이 서사 속에 단순한 '악역'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숨기고 싶었던 삶을 드러냄으로써 우리는 편견 너머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성적인 잣대로 평가받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 같은 관계로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말.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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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 교유서가 시집 3
리산 지음 / 교유서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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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다 읽어내는 마음보다 한 줄이라도 시인의 시선으로 마음을 울리면 되는 것 같다.
이 시집을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했던 시도는 실패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제목처럼 뭔가 전문적이어 보이는 이 시집은 읽어내면 성취감을 불러올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좀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도전 정신을 가지고 계속 들여다볼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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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디자인 - 디자인의 선과 악, 다크 디자인 투어리즘
마쓰다 유키마사 지음, 조지혜 옮김 / 교유서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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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디자인’이라는 단어에서 세련된 아름다움이나 생활의 편리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마쓰다 유키마사의 저서 《전쟁과 디자인》은 디자인이 지닌 전혀 다른 얼굴, 즉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전쟁으로 이끄는 선동의 도구로서의 역사를 차갑게 파헤친다.
​중세 십자군 원정부터 오늘날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디자인이 어떻게 권력의 시녀가 되어 대중의 눈과 귀를 가려왔는지 보여준다.
​책장을 넘기며 마주하는 포스터와 상징들은 디자인이 얼마나 치밀하게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지 증명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아빠는 전쟁 때 뭘 했어?”라고 묻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나, 정면을 응시하며 “아직도 불참한 사람은 당신인가?”라고 묻는 존 불의 이미지는 논리가 아닌 수치심과 죄책감을 자극해 평범한 가장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다. 이러한 선전물이 당시 광고대행사의 전략적인 기획 하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디자인의 설득력이 때로는 총칼보다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색채가 가진 정치적 힘이었다. 나치는 노동자의 색인 붉은색을 훔쳐와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고, 소련과 중국 역시 붉은색으로 사상을 도배하며 대중을 현혹했다.
​이러한 색의 정치는 현대에 와서 더욱 기이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해리 포터 20주년 기념판 표지가 단지 파란색과 노란색의 조합, 즉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만으로 러시아에서 소지자가 구속되었다는 일화는 전쟁이 인간의 이성을 얼마나 마비시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단지 책 표지의 색깔일 뿐인데도,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는 그것이 곧 죄가 되고 표적이 되는 부조리함을 목격하며 디자인이 지닌 잔혹한 영향력을 실감했다.
​현대의 전쟁에서도 디자인은 여전히 강력한 무기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카키색 티셔츠를 입고 국민과 함께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를 구축한 반면, 푸틴 대통령은 최고급 정장을 입어 현실과 동떨어진 독재자의 모습을 자초했다. 이처럼 의상 하나, 색깔 하나가 전 세계의 여론을 움직이는 치밀한 이미지 전략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모노노케 히메>가 떠올랐다. 영화 속 자연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지만, 인간의 해석과 개입에 따라 신이 되기도 하고 재앙신이 되기도 한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처럼 디자인 자체에는 죄가 없다. ‘설계하다’와 ‘꾀하다’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디자인은, 그것을 쥐고 흔드는 인간의 손에 의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대중을 광기로 몰아넣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디자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시각적 효과에 쉽게 휘둘리고, 화려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의도를 간파하기 어렵다. 책을 보며 디자인이 지닌 ‘마력’을 경계하고, 미디어와 권력이 보여주는 이미지 너머의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눈앞의 수많은 이미지는 여전히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혹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비극적인 역사에 동참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시각적 효과로 인한 비이성적 두려움과 선동에 넘어가지 않도록 말이다.
​여러모로 지금까지 끝나지 않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을 생각하며, 많은 이들이 그릇된 말과 편향된 시각으로 선동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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