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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맨션 - 교유서가 소설
방우리 지음 / 교유서가 / 2025년 1월
평점 :
책을 펴낸 곳에서는 이 소설의 뼈대를 '상실'이라 부른다. 하지만 활자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볼수록, 내게는 그저 무언가를 잃어 슬프다는 보편적인 감정보다, 퍽퍽한 현실에 지쳐 스스로를 자꾸만 축소하고 덜어내려는 지독한 '자기 지움'의 과정처럼 다가왔다.
「최소화의 순간」을 읽어 내려갈 때는 정곡을 찔린 듯 뜨끔했다. 모니터 속 웹 브라우저 창을 접어두듯, 내 인생의 크기도 버튼 하나로 쏙 숨겨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과 마음이 닳고 닳아 바닥을 드러낼 때면,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으로 나의 존재감을 한없이 쪼그라뜨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하니까.
표제작 「낙원맨션」의 결도 이와 맞닿아 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잊으려 하는 대신, 아예 기억이라는 전구를 꺼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어차피 우리의 기억은 언제나 왜곡되고 편집되기 마련 아닌가. 덜 다치고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감정의 차단기를 내려버리는 그 서글픈 생존 본능에 먹먹한 공감이 일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웅크리고 마음의 빗장을 지른 채 버티다 보면, 문득 가슴 한가운데 서늘한 구멍이 나 있다는 걸 깨닫는다. 「행갈이」 속 인물이 겪는, 도대체 뭘 흘리고 왔는지조차 몰라 길을 잃어버린 그 아득함. 늘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문득문득 우리를 덮치는 정체불명의 헛헛함이 바로 그 감정일 것이다.
「ㅂ의 유실」은 'ㅂ'이라는 낱자의 증발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너무 무거워서 내다 버리고 싶었던 일상의 굴레, 회피하고 싶었던 관계망을 비춘다. 있는 듯 없는 듯 무채색으로 살아가던 '병'이라는 인물과 그에게 색을 입혀준 '평'의 이야기를 통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빈자리의 먹먹함을 그려낸 듯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두 손을 털어버리고 싶은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토록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던 그 짐짝 같은 것들이 실은 나를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준 기둥이었음을 일깨워준다. 서늘할 만큼 날카로우면서도, 결국엔 뭉클한 온기를 쥐여주는 여운 깊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