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책상이 뒤집혀 있었다
세이야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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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돌림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본인이나 친구가 겪었던 아픈 풍경이 떠오른다. 우리 삶에서 따돌림과 완전히 무관한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때로 피해자였고, 가해자였으며, 혹은 방관자였다. 어린 시절의 치기로 누군가를 괴롭혔을 수도, 대응법을 모른 채 무너졌을 수도 있다. 혹은 타깃이 될까 두려워 타인의 슬픔을 외면하는 방관을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이 비극적인 연극 속에서 어떤 역할이든 한 번쯤 거쳐 왔을 것이다.
​일본의 코미디언 세이야의 자전적 소설은 작가의 실제 경험을 담고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탈모를 겪으면서도 냉담한 교실 분위기와 폭력에 유머로 응수하는 그의 모습은 가엽고도 강인하다. 과연 나라면 그 상황을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마 대다수는 회피를 선택했을 것이기에, 그 지옥 같은 공간에서 버텨낸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과거에 비해 직접적인 폭력은 줄었을지 모르나, 그 양상은 더욱 교묘해졌다.
​성인이 된 지금, 노골적인 폭력은 보기 힘들다. 폭력이 평판과 미래에 오점이 됨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태만 바뀌었을 뿐, 교묘한 따돌림은 성인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가해자들은 늘 상대에게 원인을 돌리지만, 이는 갈등을 반복시킬 뿐이다. 과거의 자신을 보듬고 싶거나, 타인에게 받은 고통이 아물지 않았을 때, 혹은 누군가의 슬픔을 외면했던 과거가 후회될 때 이 책을 권한다. 우리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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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교유서가 어제의책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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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향유하는 역사의 기록은 대개 태양의 궤적을 따르는 '낮'의 서사다. 인류의 활동이 빛 아래로 집중되면서, 빛이 닿지 않는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오랫동안 학술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역사학자 로저 에커치의 저작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바로 그 외면받았던 시간, 즉 산업혁명 이전 인류가 마주했던 '어둠'의 일상을 20년이라는 집요한 연구 끝에 세밀하게 복원해 낸 기념비적인 노작이다.
​저자는 개인의 내밀한 일기장부터 법정 기록, 문학적 텍스트와 의학 서적에 이르는 방대한 사료를 종횡무진하며 밤에 관한 거대한 문화적 백과사전을 구축한다. 이 책이 조명하는 밤은 현대인이 스위치 하나로 얻는 안락한 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근대 이전의 인류에게 밤은 생존을 위협하는 묵시록적 공포 그 자체였다. 화재의 혼란을 틈탄 약탈과 밤거리의 무질서, 이성이 마비된 채 횡행하던 폭력의 일화들은 어둠이 투사하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는 에드먼드 버크의 통찰처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실존적 공포를 방증한다.
​그러나 에커치는 밤을 단순히 공포의 대상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그는 밤이 품고 있던 역설적인 해방의 얼굴에 주목한다. 밤은 자메이카의 노예나 유럽의 농민들에게 가혹한 노동이 연장되는 고통의 시간이었으나, 동시에 억압적인 주류 사회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이기도 했다. 빈민과 소수자, 그리고 이단아들은 짙은 어둠을 방패 삼아 낮에는 허락되지 않았던 평등과 자유, 그리고 은밀한 사교의 연대를 구축했다. 어둠은 질서의 결핍인 동시에,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자궁이었던 셈이다.
​방대한 에피소드들이 철저히 서구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동양적 맥락에서의 밤을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수면의 의식과 밤의 방비책을 촘촘히 따라가는 과정은 독자에게 압도적인 지적 충만함을 선사한다. 소위 '벽돌책'이라 불리는 이 두꺼운 저작을 완독한 후 밀려오는 쾌감은 그만큼 이 책이 다루는 사유의 밀도가 높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을 통해 어둠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책의 말미에 언급된 '우주 거울 실험'처럼 밤을 낮으로 치환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내 관철된 듯 보인다. 그러나 빛 공해로 얼룩진 24시간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캄캄한 밤하늘이 주던 경외감과, 고요한 어둠 속에서 오롯이 스스로를 성찰하던 내면의 시간마저 상실한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가벼운 글보다는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미시사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그 깊고도 푸른 밤의 시간을 다시금 조우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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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맨션 - 교유서가 소설
방우리 지음 / 교유서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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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낸 곳에서는 이 소설의 뼈대를 '상실'이라 부른다. 하지만 활자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볼수록, 내게는 그저 무언가를 잃어 슬프다는 보편적인 감정보다, 퍽퍽한 현실에 지쳐 스스로를 자꾸만 축소하고 덜어내려는 지독한 '자기 지움'의 과정처럼 다가왔다.
​「최소화의 순간」을 읽어 내려갈 때는 정곡을 찔린 듯 뜨끔했다. 모니터 속 웹 브라우저 창을 접어두듯, 내 인생의 크기도 버튼 하나로 쏙 숨겨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과 마음이 닳고 닳아 바닥을 드러낼 때면,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으로 나의 존재감을 한없이 쪼그라뜨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하니까.
​표제작 「낙원맨션」의 결도 이와 맞닿아 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잊으려 하는 대신, 아예 기억이라는 전구를 꺼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어차피 우리의 기억은 언제나 왜곡되고 편집되기 마련 아닌가. 덜 다치고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감정의 차단기를 내려버리는 그 서글픈 생존 본능에 먹먹한 공감이 일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웅크리고 마음의 빗장을 지른 채 버티다 보면, 문득 가슴 한가운데 서늘한 구멍이 나 있다는 걸 깨닫는다. 「행갈이」 속 인물이 겪는, 도대체 뭘 흘리고 왔는지조차 몰라 길을 잃어버린 그 아득함. 늘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문득문득 우리를 덮치는 정체불명의 헛헛함이 바로 그 감정일 것이다.
​「ㅂ의 유실」은 'ㅂ'이라는 낱자의 증발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너무 무거워서 내다 버리고 싶었던 일상의 굴레, 회피하고 싶었던 관계망을 비춘다. 있는 듯 없는 듯 무채색으로 살아가던 '병'이라는 인물과 그에게 색을 입혀준 '평'의 이야기를 통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빈자리의 먹먹함을 그려낸 듯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두 손을 털어버리고 싶은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토록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던 그 짐짝 같은 것들이 실은 나를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준 기둥이었음을 일깨워준다. 서늘할 만큼 날카로우면서도, 결국엔 뭉클한 온기를 쥐여주는 여운 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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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진 화살을 굳이 가슴에 꽂지 마라 - 한·중·일 50만 독자를 위로한 신경 쓰지 않는 연습
나토리 호겐 지음, 이정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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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상처 주려 뱉은 말도 자기 의지로 걸러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삶이 더 편안해질 것 같다. 고통받는 내면을 달래줄 조언들이 많은 책으로, 현대인들의 고질적인 고통인 인간관계로 인한 어려움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상처를 내는 것도 어쩌면 자기 자신일 것이다. 책 속의 가르침을 잘 따라서 내면의 안정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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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메초
샐리 루니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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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목소리를 이토록 섬세하게 짚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고, 살면서 막연하게 느끼던 감정들의 정확한 이름을 비로소 찾아낸 기분이다. 초반에는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다는 형 피터의 복잡한 심경에 도무지 공감하기 어려워, 자연스레 순박한 체스 천재 동생 아이번의 서사에 완전히 몰입했다. 서툰 인간관계 속에서도 애쓰며 고군분투하는 모습,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겪는 혼란과 형을 향한 묘한 반발심, 연인을 만나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들까지 이 모든 이야기가 내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피터가 겪는 혼란마저 폭풍처럼 밀려오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삶이란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재단할 수 없고 선택지 역시 무 자르듯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정답 없는 변수의 연속이 곧 인생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서로의 결핍을 치유해가는 과정, 가장 징글징글하게 싫어하면서도 결국 제일 아끼게 되는 형제의 애증과 부자지간의 앙금까지. 굳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전 세계 누구나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보편적이고 강력한 스토리텔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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