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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ㅣ 교유서가 어제의책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평점 :
우리가 향유하는 역사의 기록은 대개 태양의 궤적을 따르는 '낮'의 서사다. 인류의 활동이 빛 아래로 집중되면서, 빛이 닿지 않는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오랫동안 학술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역사학자 로저 에커치의 저작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바로 그 외면받았던 시간, 즉 산업혁명 이전 인류가 마주했던 '어둠'의 일상을 20년이라는 집요한 연구 끝에 세밀하게 복원해 낸 기념비적인 노작이다.
저자는 개인의 내밀한 일기장부터 법정 기록, 문학적 텍스트와 의학 서적에 이르는 방대한 사료를 종횡무진하며 밤에 관한 거대한 문화적 백과사전을 구축한다. 이 책이 조명하는 밤은 현대인이 스위치 하나로 얻는 안락한 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근대 이전의 인류에게 밤은 생존을 위협하는 묵시록적 공포 그 자체였다. 화재의 혼란을 틈탄 약탈과 밤거리의 무질서, 이성이 마비된 채 횡행하던 폭력의 일화들은 어둠이 투사하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는 에드먼드 버크의 통찰처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실존적 공포를 방증한다.
그러나 에커치는 밤을 단순히 공포의 대상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그는 밤이 품고 있던 역설적인 해방의 얼굴에 주목한다. 밤은 자메이카의 노예나 유럽의 농민들에게 가혹한 노동이 연장되는 고통의 시간이었으나, 동시에 억압적인 주류 사회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이기도 했다. 빈민과 소수자, 그리고 이단아들은 짙은 어둠을 방패 삼아 낮에는 허락되지 않았던 평등과 자유, 그리고 은밀한 사교의 연대를 구축했다. 어둠은 질서의 결핍인 동시에,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자궁이었던 셈이다.
방대한 에피소드들이 철저히 서구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동양적 맥락에서의 밤을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수면의 의식과 밤의 방비책을 촘촘히 따라가는 과정은 독자에게 압도적인 지적 충만함을 선사한다. 소위 '벽돌책'이라 불리는 이 두꺼운 저작을 완독한 후 밀려오는 쾌감은 그만큼 이 책이 다루는 사유의 밀도가 높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을 통해 어둠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책의 말미에 언급된 '우주 거울 실험'처럼 밤을 낮으로 치환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내 관철된 듯 보인다. 그러나 빛 공해로 얼룩진 24시간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캄캄한 밤하늘이 주던 경외감과, 고요한 어둠 속에서 오롯이 스스로를 성찰하던 내면의 시간마저 상실한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가벼운 글보다는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미시사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그 깊고도 푸른 밤의 시간을 다시금 조우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