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텍스트를 독해할 때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여 독립된 세계로 바라보는 것이 비평의 정석으로 통한다. 그러나 이 시집은 그러한 불문율을 보란 듯이 무너뜨린다. 시적 자아가 전면에 등장해 "소설책의 제목을 지우겠다"고 선언하며 텍스트의 경계를 허물고 나오기 때문이다. 시인은 소설과 비소설, 독자와 비평가 등 문학을 둘러싼 제반 요소들을 시의 안쪽으로 끌어들이며, 허구와 실재의 경계가 모호해진 독자적인 메타 세계를 구축한다.이 시집은 미학적 아름다움보다는 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폭발적인 고백에 가깝다.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는 짙은 공허와 상실감이며, 이는 시인이 목도한 현실이 소설 속 비극보다 잔혹했음을 시사한다. 특히 '계엄'이라는 사회적 사건이 남긴 분노는 시집 곳곳에서 날 선 언어로 형상화된다. 비속어와 성적인 메타포 등 거과 없는 시어들은 당시의 부조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증명하는 장치로 기능한다.주목할 만한 지점은 시인이 상정하는 독자의 위치다. 작품 속에서 독자는 작가의 고통스러운 삶('신맛 나는 삶')을 소비하며 위안을 얻거나, 흥미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텍스트를 폐기하는 무심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문학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인 인식이자, 수용자의 태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읽힌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냉소를 넘어, 결국 '쓸모없는 것'들로 치부되는 고통과 비극을 '폭신한 언어의 침대'로 변환하려는 고단한 의지를 드러낸다.결국 이 시집은 날 선 분노로 점철되어 있으나, 그 이면에는 현실의 비극이 문학적 허구 안에서만 머물기를 바라는 역설적인 소망이 담겨 있다. 거친 파도와 같은 현실을 건너, 언어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평온에 대한 갈망. 이것이 시인이 텍스트를 부수고 나와 독자에게 전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