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 교유서가 소설
채기성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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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은 마치 우리 주변의 풍경을 낮은 채도로 담아낸 사진첩 같다. 57분 교통정보를 전하는 캐스터, 사제가 되려는 신학생, 게임 사운드 디자이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형체가 보이는 '흐릿한' 사람들. 드라마 속 인물들이 선명한 빛을 발한다면, 이 책의 인물들은 그보다 훨씬 더 우리 삶의 진짜 냄새를 풍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내내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조금은 망가지고, 억울하고, 죄와 용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단편 <로만티셰 슈트라세>는 억눌린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는 쾌감을 선사했다. 독일의 아우토반을 질주하며 낯선 자신을 마주하는 주인공. 현실의 겁쟁이인 내가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일탈을 그가 대신 실현해 줄 때, 꽉 막힌 속이 뚫리는 듯했다.
​반면 표제작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은 인간관계의 가장 아픈 지점을 건드린다. '나쁜 사람'보다 더 견디기 힘든 '우유부단한 사람'. 차라리 악역이라면 미워라도 할 텐데, 그 모호함은 곁에 있는 사람을 서서히 병들게 한다. "원하던 대로 사제가 돼."라고 쏘아붙이던 해리의 결정은, 그래서 더 처연하고 시원했다.
​책장을 덮으며 생각한다. 데이트 폭력이나 묻지마 범죄처럼 예고 없이 우리 삶을 비틀어버리는 불행들 앞에서, 우리는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수아에게>의 수아처럼 영문도 모른 채 다친 마음들이, 이 소설 속 흐릿하지만 따뜻한 시선 안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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