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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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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8

 "저는 바보였고 사악했고 가증스러웠어요. 그리고 끔찍한 형벌을 당했죠. 결단코 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제 딸을 보호하겠어요. 나는 그 애가 거침없고 솔직하기를 바라요. 그 애가 스스로의 주인으로서 독립된 인격체이길 바라고 자유로운 남자처럼 인생을 살면서 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요." 


시작은 '결혼한 여성의 삶과 욕망' 정도에 대한 호기심과 '로맨스 소설+알파'의 기대감 정도와 함께 였다. 그러나 지루하게 넘어가던 책장은 절반을 넘어서면서 탄식과 눈물을 자아냈고 삶에서의 어떤 길(道)이라는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키티라는 평범한 여성이 결혼 후의 삶을 통해 거창하게 말하면 '구도(求道)'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옴의 고전은 허영과 통속에 물든 2010년을 사는 현대 여성들에게도 유효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잣집에 딸을 시집보내려는 어머니의 허영심으로 사교계를 들락거리는데 전념하던 키티는 동생의 결혼과 늘어나는 나이에 쫓기듯 결혼을 한다. 딱히 재산이 많은 것도,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닌 생물학자 월터 폐인은 결혼에 대한 압박에 몰린 키티에게 적당한 상대인 듯 여겨졌었다. 그러나 월터에 대한 호의조차 없었던 키티는 결혼 후 월터와 함께 건너간 홍콩에서 찰스 타운젠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로 인해 잃어버린 생기과 열정을 되찾는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월터는 찰스가 키티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의 오지로 자신과 함께 떠날 것을 강요한다. 키티를 지극히 사랑한 월터에게 키티의 배신은 키티를 죽음으로 내모는 분노로 바뀌었고 자의식이 강한 월터는 이런 자신의 모습에 더더욱 괴로워하게 된다.
 

 p 96
 "나는 당신에 대한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았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것,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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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와의 사랑을 굳게 믿었던 키티의 생각과 달리 비겁하고 이기적인 찰스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키티와의 관계에 어떤 책임도 지려하지 않았고 결국 키티는 찰스에게 버림받은 상처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남편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메이탄푸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죽음이 바로 한 치 앞에 있는 극한의 상황은 키티에게 자신이 그토록 비웃고 하찮게 여겼던 월터가 얼마나 숭고한 정신을 가진 사람인지, 그리고 비겁한 찰스를 사랑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한다. 또한  더럽고 병든 추한 중국인들에게 주저없이 고귀한 손길을 내미는 프랑스 수녀들의 모습에서 키티는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이 하찮은 것임을 깨닫고 버려진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자청한다.

 

p190
그녀는 다시 한번 키티에게 길고 탐색하는 영민한 시선을 던졌다. 그러고는 손을 부드럽게 키티의 팔에 얹었다.
 "알겠지만, 평화는 일이나 쾌락, 이 세상이나 수녀원이 아닌 자신의 영혼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답니다."
 키티는 움찔했지만 원장 수녀는 밖으로 나가 버셨다.


p206
 "그러기엔 너무 바쁜 사람들이에요. 신경도 쓰지 않는 걸요. 그들은 놀라운 사람들이고 너무나 친절해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는 장벽이 존재해요.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마치 그들끼리는 비밀 하나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그들의 삶에 모든 변화를 가져오지만 난 그것을 공유할 가치가 없는 존재같아요. 신앙은 아니에요. 더 깊고 더......더 중대한 뭔가예요. 그들은 우리와 다른 세상을 걷고 있어서 우린 항상 그들에게 이방인이죠. 매일 등뒤로 수녀원 문이 닫힐 때마다 그들에게 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부인의 허영심에 타격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가 빈정대며 대답했다.
 "내 허영심이라."
 

p234
 키티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난 뭔가를 찾고 있지만 그게 뭔지 잘 몰라요. 하지만 그것을 아는 건 분명히 내게 무척 중요해요. 그리고 내가 그걸 알아내면 모든 게 달라질 거예요. 아마 수녀들은 그걸 알겠죠. 그들과 함께 있을 때면 난 그들이 나와 공유하지 않는 비밀을 갖고 있다고 느껴요. 왠지 모르게 그 만주 여인을 보면 내가 찾고 있는 것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내게 말을 했을 거예요."
 "왜 그녀가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키티는 그를 곁눈질로 흘끔 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걸 알고 있나요?"
 그가 미소를 짓더니 어깨를 으쓱 올렸다.
 "도(道). 우리들 중 누구는 아편에서그 '길'을 찾기도하고 누구는 신에게서 찾고, 누구는 위스키에서, 누구는 사랑에서 그걸 찾죠. 모두 같은 길이면서도 아무 곳으로도 통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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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탄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죽음'이 아닌 '새로 태어남'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상처와 자신에 대한 증오심으로 자신을 콜레라로 내몰은 월터는 결국 목숨을 잃지만, 허영과 통속만이 전부였던 그녀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궁극을 찾는 키티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주어진다. 메이탄푸에서 콜레라로 "죽은 건 개"였던 것이다.

 
p266-267
"난 이런 의문이 듭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한갓 환영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역겨움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일한 것은 인간이 이따금씩 혼돈 속에서 창조한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그린 그림, 그들이 지은 음악, 그들이 쓴 책, 그들이 역은 삶. 이 모든 아름다움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것은 아름다운 삶이죠. 그건 완벽한 예술 작품입니다."
 

 "그것은 '길'과 '길을 가는 자'입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걸어가는 영원한 길이지만, 어떤 존재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것 자체가 존재이니까요. 그것은 만물과 무(無)이지요.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들이 자라나고, 모든 것들이 그것을 따르며, 마침내 그것으로 모든 것들이 돌아갑니다. 각이 없는 네모이고,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이며, 형태 없는 상(象)이랍니다. 그것은 거대한 그물이고, 그물코는 바다처럼 넓지만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의 피난처가 되는 성소입니다. 그것은 아무 곳도 아니지만 창문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망하지 않기를 소망하라고 그것은 가르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라고 합니다. 비천한 사람이 온천히 지속됩니다. 굽피는 사람이 똑바로 섭니다.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고 성공은 실패가 도사린 함정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언제 전환점이 나타날지 짐작할 수 있을까요? 부드러움을 추구한 사람은 심지어 어린애처럼 될 수 있습니다. 부드러움은 공격한 자에게 승리를 불러오고 방어한 자에게 안전을 가져다줍니다. 위대함은 스스로를 극복한 자의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는 모두 고귀해질 수 있다. 아니, 고귀함을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그 고귀함을 간직할 수 있는 건 "스스로를 극복한 자"들 뿐이다.

모옴이 말한 "사랑의 비극은 죽음이나 이별이 아니다.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 이미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게 된 날이 왔을 때이다."에서의 '비극'은 월터와 키티 모두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그 비극을 극복한 키티만이 남겨졌고 그녀 앞에는 "평화로 이어지는 그 길"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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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페 일기 - 행복이란 분명 이런 것 다카페 일기 1
모리 유지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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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헛헛한 날  

반디 앤 루니스에서 처음 만났다. 

표지의 깔끔한 디자인이 저절로 손이 가게 했던 책. 

 

우연하게 펼친 책장 너머엔 

너무 이쁜 사진들이 가득했다. 

소소하고 평온한 일상을 담은 사진일 뿐인데 

너무 행복해 보여서 눈물이 핑 돌았다. 

 

보고 있는 동안 나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게 해주는 책. 

 

주위 사람들에게 마구마구 선물하고 싶어진다. 

 

책장 한 장 한 장에서 내가 느꼈던 

작지만 따뜻한 행복을  

내 주변 사람들도 느낄 수 있었으면...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저자가 전하는 일상의 행복처럼 

책을 선물하는 작은 일상에서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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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보물창고 - 공상 소년소녀가 떠나는 파리 뒷골목 탐험-보물창고 시리즈 보물창고 시리즈
박은희 글, 이경인·박은희 사진 / 브이북(바이널)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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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 속에 온통

파리의 잔상들 뿐이다.

 

파리의 거리들

파리의 카페

파리의 음식

파리의 상점

사람들...

 

UGUF가 파리에서

찾아낸 보물들을

이쁘게 잘 정리해서 보여준다.

 

글보다 사진이 더 많아서

도서관에서 졸릴 때마다

아껴가면서 봤던 책.

 

맛있는 음식 사진을 보며

군침을 흘리기도하고

쇼콜라쇼와 케Ÿ揚?보며

가슴이 뛰기도 하고...

이쁜 옷들

독특한 캐릭터 상품이나

잡동사니들...

 

골목 골목

그 속에 있는 보물을 찾아다닐 때의

설레임과 즐거움이

고스란히 베어났다.

 

이런 여행도,

이런 책도...

참...

마음에 든다...^^

 

이제 직접

가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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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cat in Paris 파리의 스노우캣
권윤주 지음 / 안그라픽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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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여름즈음 내가 파리를 가게 된다면

스노우캣이 앉았던

그 카페의 그 자리에 앉아서

나도 쇼콜라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할거다...

 

'카페 감정사'에 걸맞게

스노우캣이 들렀던

맘에 들었던

카페들을 소개하며

그곳에서의 스노우캣의 감상을

귀여운 그림들과 함께 전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내가 스노우캣이 된 양

마치 내가 그 카페의 그 자리에 앉아있는 양

파리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퐁피두센터의 카페에 몇 번이고 들러

광장이 내다보이는 그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날이 맑은 날엔

몽마르뜨를 오르고...

어디를 찍고, 어디를 찍는 그런 식의 여행이 아니라

머무름,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무름으로 해서

그 도시에 스며들게 되는 것을

스노우캣은 알려주었다.

 

파리~파리~파리~

혼자서

오랜 시간

커피 한잔 시켜 놓고

앉아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고

심심하지도 않고,

내가 앉은 그 자리가 나만의 공간이 됨과 동시에

그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과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그런 도시...파리...

그런 도시...파리를

사랑하게 되버렸다.

 

파리에서 머무르게 될

그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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