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p.26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누군가에겐 “일과가 끝난 뒤 돌아가는 휴식의 공간을 집이라고 한다면” 나에게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이기 위해”, 아이를 돌보고, 밖에서 노동을 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 나는 집을 비울 수조차 없었다.
어지럽혀진 집안이 눈에 들어오면 참을 수 없었고, 쓸고 닦고 치우는 일을 반복하고 나면 내가 처한 현실이 암울해졌다. 물건이 마구 놓인 집안의 혼돈을 견디는 것도 스트레스였지만 혼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더 참기 힘들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원하는 ‘질서와 안정’은 나의 끝없는 희생을 담보로 했다. 그토록 원했던 ‘질서와 안정’은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이거나, 무언가를 덮기 위한 가림막에 불과한 것 같았다.
거기서 벗어나야 했다. 그래서 눈을 감기로 했다. 서재였지만 어느새 창고가 되어버린 방, 그 방으로 들어갔다. 어지럽혀진 거실과 설거지가 쌓인 주방이 보이지 않게 문을 닫았다. 옷과 가방, 선풍기와 제습기 등 철 지난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책상 앞에 앉으면 다 괜찮았다. 거기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끝없이 반복되는 집안일의 수렁에서 놓여 날 수 있었다. 의무와 역할 없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그곳에서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대가 없이 반복되는 가사의 굴레에서, 완벽하게 정리된 집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방으로 들어가, 하얀 백지를 펼쳐 놓고 무작정 적어 내려갔다. 마음 속에 뒤섞여 있는 것들을 종이 위에 쏟아 놓고, 분류하고 정리했다. 많은 것을 바로잡고 잘라내면서, 적절한 단어를 찾아 제대로 문장을 만들면서, 숨어 있던 내 안의 욕구에 가 닿을 수 있었다. 무질서한 방은 더 이상 나의 내면을 뒤흔들 수 없었다. 그런 날이 오더라도 하얀 종이를 꺼내 다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러니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방은 절실하다. 창고이지만 유일하게 내가 될 수 있는 곳, 나만의 방은 더 이상 문학 속 은유가 아니다.
평일엔 아이와 남편이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창고이면서 서재인 방에서 보낸다. 가사 노동은 육아와 식사 관련한 최소의 것으로 한정했다. 청소의 주기는 길어졌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때가 쌓였을 테다. 집은 늘 아이 물건으로 어수선하고 예전처럼 아름답지도 않다. 하지만 괜찮다. 말끔하게 정돈된 집은 허상일 뿐 진정 원하는 것은 내면의 안정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질서와 안정’은 눈에 보이는 공간이 담보해주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고 독립적인 자아가 만들어주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