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 4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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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카프카를 읽는다는 것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답을 제시하지 않는 미완의 소설, 미로에 갇혀 ‘이방인’처럼 헤매 이는 주인공...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속에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소설은 당장의 위안을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이 지금의 시대에 마주한 유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인간이란 애초에 부조리한 존재이며, 삶 또한 근본적으로 부조리와 허위에 사로잡혀 있다는 명백한 선언. 그의 소설을 통해 마주한 이 고독한 선언이 역설적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에 힘을 얹어준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며,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인간 의지의 증명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카프카의 최후의 소설 <성>에는 불가능에 저항하는 K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토지측량사 K는 늦은 저녁 성 아래 있는 마을에 도착해 여관에 들르지만 성 관리인의 아들에게서 백작의 허락 없이는 마을에 머물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K는 ‘백작의 초빙을 받은 토지 측량사’라고 자신을 밝히지만 성에서 돌아온 답은 ‘착오가 있다’라는 것. 다음날 K는 허가를 받기 위해 산 위의 성으로 향하지만 성은 쉽사리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성에서 돌아오는 답은 강력하다. “안돼!”, “내일도 안되고, 다음번에도 안돼!”,(p.32) “언제라도 절대 들어올 수 없어.” (p.35) 초빙을 받았지만 성에 들어갈 수도, 마을에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토지측량사 K.

 

외딴 마을에 도착해 고군분투하지만 ‘이방인’의 자리에서 맴돌 뿐인 K는 카프카의 다른 작품 <소송>이나 <법 앞에서> 마주했던 주인공들과 유사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송에 휘말려 삶을 소진해버리는 요제프 K, 법의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문지기에게 거부당하고 평생에 걸쳐 기다림만 지속하는 시골 사람의 처지가 떠오른다. 이후 전개되는 소설의 양상 또한 이전 작과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자신의 처지를 구명하기 위한 K의 지난한 노력이 이어진다.

 

K는 심부름꾼 바르나바스가 전한 편지를 통해 자신의 문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가진 듯한 ‘클람’이라는 관리의 존재를 알게 된다. 편지에 언급된 촌장을 만나보지만 성에서의 업무 착오로 더 이상 토지측량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클람을 만나보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대신 관리들이 묵는 상급 여관 주점에서 일하는 프리다와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약혼까지 하지만 여건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한다.

 

다리목 여관의 여주인, 촌장, 바르나바스의 누이 올가와의 대화를 통해 K는 성과 관리들, 마을의 실체를 알아간다. 성과 관리 사회는 마을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으며 마을은 거기에 강력하게 귀속되어 있다. 사람들은 아무 의심없이 권위와 권력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성의 초빙을 받았다고는 하나, 성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K의 상황으로 그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 또한 냉랭하다. 성과 관련된 어떤 끈이라도 잡아보려 발버둥치는 K의 노력은 과연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소송>이나 <법 앞에서>와 유사한 주제와 분위기로 진행되는 <성>은 이전 작보다 더 해석의 폭이 넓다. ‘성’과 ‘관리들’의 의미와 ‘K’라는 존재, 그리고 그가 획득하고자 분투하는 대상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성> 또한 <소송>처럼 미완의 작품이기에 누구도 확정적인 해석을 내릴 수 없다는 데에 이 소설의 ‘완전함’이 거론되기도 한다.

 

K가 마을에 도착해 성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일주일여의 기간 동안 마을 사람들 몇몇과 접촉하며 나누었던 대화가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K와 마을 사람 사이의 대화는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장에 걸쳐 집요할 정도로 반복적으로 서술된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절대적으로 합치될 수 없는 의미의 차를 변주하면서. 독자를 좌절하게 할 만큼 지리하고 답답하게 이어지는 대화의 서술에 카프카 소설의 묘미가 있다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혹시 내가 무슨 다른 말이라도 했어요? 이 사람은 늘 이래요, 비서님. 늘 이렇다고요. 자신에게 제공되는 정보를 왜곡하고서는 잘못된 정보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거죠. 나는 그에게 지금까지 줄곧 말해왔고, 오늘도 말하고 있으며, 또 언제나 이렇게 말할 거예요. 클람은 이 사람과 면담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이죠. (…) K가 말했다. “당신에게 용서를 구해야겠군요. 내가 당신을 오해한 것이니까요. 지금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나는 당신이 전에 한 말을 듣고 그래도 아주 적은 희망이기는 해도 한가닥 희망이 있다고 여겨졌거든요.” “바로 그거예요.” 여주인이 말했다. “물론 나의 견해지만요. 당신은 내 말을 다시 왜곡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반대로 말입니다. 내 생각에 당신에게는 그런 희망이 있는데, 물론 이 조서에만 근거해서 그렇다는 거요.(…)” p.163

 

지난한 대화에서 K가 실질적으로 얻는 것은 없다. K가 성의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 마을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실낱 같은 가능성을 물고 늘어지며 끝없이 반복될 뿐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도는 대화는 영영 헤어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혀버린 듯한 인상을 남긴다. 성과 관리들의 권위에 맹목적인 마을 사람들의 사고는 닫혀 있고, 이를 이해할 수 없는 K는 무의미해보이는 항변을 지속할 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믿음에 따라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입장과 판단을 내놓는 등장 인물들의 대화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평행선처럼 이어진다. 그 뒤에 남는 것은 어디에도 진실은 없다는 씁쓸한 확인이다. 이를 통해 카프카는 인간이 처한 삶과 사회의 바탕에 놓인 허위와 부조리를 극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성’이라는 절대적 대상에게 인정받기 위해, 벗어나지도 못하면서 헛된 노력을 지속하는 K는 일정 부분 우리 모두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답도 없고 진실도 감춰진 미로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때로 거부당하고, 때로 무언가를 성취한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다다르는 곳은 ‘삶’의 반대편 혹은 그 끝인 ‘죽음’이다. K는 여러 면에서 ‘이방인’ 같은 삶을 살았던 작가 자신을 닮기도 했다. 거부당하면서도 끝없이 시도하고 투쟁하며 자기만의 고독한 글쓰기 속에서 생을 마감한 카프카의 답답하고 애처로운 삶이 엿보인다.

 

“K는 클람이 있는 먼 곳, 그의 난공불락의 거처, 아직 K가 들어본 적이 없는 그런 외침에 의해서나 중단될 수 있는 그의 침묵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또 반박할 수도 입증할 수도 없는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 저 위에서 알 수 없는 법칙에 따라 그어놓아 순간적으로만 눈에 보일 뿐 K가 있는 낮은 곳에서는 깨트릴 수 없는 그의 세력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모두가 클람과 독수리의 공통점이었다.” p.166

 

영영 다다를 수 없었던 ‘성’과 ‘관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부조리한 삶’ 자체이거나 유대인이었던 카프카의 배경을 고려해 절대적 권력이나 신의 영역으로 해석하는 의견이 있다. 유대교 전통에서 벗어나 서구지향적 삶을 살았던 작가는 그로 인해 유대교 전통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단절감과 이질감을 느꼈다. 전통적 유대교에 있어 ‘이방인’일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처지가 반영된 것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벤야민은 ‘부패한 아버지들의 세계’라고 말했다. 아버지와의 불화가 끊이지 않았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끝없이 노력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좌절만 경험했던 카프카 본인의 삶이 소설 속에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라본다면 ‘성’은 그가 그토록 도달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세계’일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토지 측량사로 받아들여졌지만, 단지 겉으로 보기에나 그럴 뿐이야. 사람들은 나를 갖고 놀았고, 집집마다 나를 내쫓았어. 사람들은 지금도 나를 갖고 놀고 있어. 그런데 지금은 더 많은 것이 관여되어 있어. 말하자면 어느정도 삶의 규모가 커져버렸고, 이것 자체만 해도 의미가 상당하지.” p.281

 

K는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고자 고군분투했지만 ‘성’과 연결된 관료 누구와도 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도록 K는 자신의 투쟁을 지속한다.(소설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카프카는 K의 죽음을 결말로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가야할 방향도 진실의 기미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자신을 대변하며 스스로 의미를 구축해간다. 그렇기에 K의 집념은 삶과의 투쟁을 벌여야만 하는 인간의 실존적 의지로 읽히기도 한다.

 

“눈으로 본 것, 소문으로 들은 것, 그리고 왜곡을 가하는 몇가지 부수적인 의도가 겹쳐져서 클람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는데, 그 윤곽은 대략 맞을 거예요. 그러나 윤곽만 맞는 거죠. 그밖의 클람의 이미지란 가변적인데, 물론 그것도 클람의 실제 생김새만큼은 아니지만요. 그는 마을에 올 때와 떠날 때의 모습이 다르며, 맥주를 마시기 전과 마시고 난 후의 모습이 다르고, 깨어 있을 때와 잘 때의 모습이 다르며, 혼자 있을 때와 대화할 때의 모습이 다르다고 해요. 그렇게 보면 저 위 성에 있을 때의 모습이 거의 완전히 다르다는 점도 이해가 되죠.” p.249~250

 

마을 사람 누구도 '클람'(소설 속에서 클람은 K가 닿고자 애쓰는 실질적이며 우선적 대상으로 등장한다)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회자되는 말, 일부 허위가 뒤섞인 말을 진실인양 믿는다. ‘성’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인식도 그렇지 않을까. ‘성’에 대한 진실은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지만 마을 사람들의 인식 속에 성은 ‘절대적 권위’를 넘어 '신적 믿음'으로 자리 잡혀 있다. 어떠한 진실도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허위로 가려져 있지만 거기에 의문을 던지고 저항하는 인물은 K가 유일하다. K는 성패를 떠나 자기 존재의 타당성을 증명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겐 불가능하고 무가치하게 보였던 K의 싸움이야말로 부조리한 사회구조(관료주의)와 거부당한 실존에 저항해 ‘인간의 자유 의지’를 지키며 자신의 의미를 길어내려 한 의미심장한 몸짓일 수 있다.

 

“관청에 대한 경외심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타고난 것이고, 이후에도 평생에 걸쳐 모든 방면에서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당신들에게 주입되고 있어. 또 당신들 자신도 가능한 최선을 다해 거기에 가세하고.”(…)

“천으로 두 눈을 가린 사람은 아무리 격려해주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법이지. 천을 벗어야만 볼 수 있어.” p.258~261

 

성에 대해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복종을 보이는 마을 사람들에게서는 현대인의 일그러진 초상을 발견할 수도 있다. 사회에 통용되는 가치, 규범, 체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행동과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을 배척한다. 소설 속에서 홀로 외롭게 싸우는 K의 노력이 무가치하거나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는 시선 뒤에는 가능성이 낮다면 애초에 저항의 시도조차 하지 않겠다는 무기력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육체의 힘은 어느 한도까지만 이르는 법이고, 바로 그 한계 지점이 보통은 의미심장하다고 해도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아니, 그 점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어요. 세상은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교정하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돌아가고 있어요. 다른 점에서는 암울할지 몰라도 탁월한 장치, 언제나 다시 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장치인 것이죠. (...) 어서 가보세요. 저편에서 어떤 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여기서는 모든 것이 기회로 가득하니까요. 물론 어떤 기회들은 이용하기에는 너무 크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좌절을 맛보기도 해요. 그래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p.382

 

소설은 일견 난해하게 다가온다. 미로에 갇힌 듯한 인간 군상들 속에서 자신을 구명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K의 시도를 통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삶에 대해 근원적이고 복잡 미묘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각자의 마음 속에 남은 이 질문은 끝나지 않는 소설 속 K의 투쟁처럼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두꺼운 소설 속 한 귀퉁이에 K가 놓지 않았던 실낱같은 가능성을 두둔하는 메시지를 숨겨두었다. 부조리한 세상일지라도, 스스로를 교정하고 균형을 유지하려는 '탁월한 장치'가 존재하며 그 속엔 온갖 가능성이 가득하기도 하다고. 불운한 삶을 살았던 작가가, 마지막 힘을 그러모아 우리의 등을 밀어준다. 각자의 성을 향해, "어서 가보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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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2021-04-08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성>에 대해 꼼꼼하면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며 생각을 정리해주는 폭넓은 해석을 담은 리뷰를 읽으면서 감동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