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이데올로기
마이클 W. 애플 지음, 박부권.이혜영 옮김 / 한길사 / 1985년 1월
평점 :
절판


  학교가 그리고 학교 교육이 정치적이라는 것은 내가 20년 교직에서 깨달은 가장 극명한 진실이다. 학교가 가르치는 것들(명시적 교육과정)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이런저런 행동규칙(잠재적 교육과정)은 학생을 통제하려는 지배권력의 명백한 의도이다.

  어쩌면 이는 단순한 진실이기도 할텐데, 이 단순한 학교의 본질을 모든 교사들이 통찰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교사들은 모두 지배의 언어, 지배의 논리로 이미 훈습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지배를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학교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실행되는지 구체적으로 매순간 자각하기란 더욱 간단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 20년 학교 생활에서, 학교가 지배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실행하는지를 서서히 그리고 분명하게 목도하게 되었다. 이는 나의 지나친 과신인지 모르겠지만 내 과신을 무릅쓰고라도 분명 말할 수 있다. 이를 가장 날카롭게 깨달은 것은, 학교의 억압과 부정을 비난하던 교사들이 정작 학교의 억압과 부정에 침묵 동조하며 오히려 강화하던 그 숱한 모순을 체험하면서이다.

  왜 저 교사들은 그렇게 분노하던 학교에 이리도 순종적일까, 그리고 왜 학교부정에 맞서는 교사를 오히려 핍박할까 하는 깊은 슬픔을 경험하면서, 이는 이제껏 우리가 학교에서 익혀온 것들(순종과 침묵과 융화)들이 바로 지배의 이데올로기이고, 이에 충직한 것을 올바른 것으로 내면화한 결과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마이클 애플의 이 책은 학교의 전반적 교육활동이 어떻게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명저이다. 나는 이 책을 몰랐다. 우연히 2년 전, 마이클 애플을 접했지만, 1985년에 번역된 이 책을 구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대출 복사해 읽으면서, 애플의 한 문장 한 문장에 공감했다. 어쩌면 이제껏 내가 20년 학교생활에서 깨달은 것의 총체적 정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되돌아보면 내가 글로 썼던 상당수가 애플의 관점을 구체적으로 예시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인데, 그래서 내 책의 독자들은 내가 학교 전반에 갖는 관점을 애플의 영향으로 이해할 듯도 하다.

 

 애플에 따르면 학교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학교의 명시적 교육과정뿐 아니라 잠재적 교육과정 전체가 정치적이다. 그리고 당연히 교사도 정치적 역할을 벗어날 수 없다. 애플은 학교가 경제자본뿐 아니라 문화자본을 어떻게 배분하는지를 줄곧 설명하는데, 그 기본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 기초한다. 학교가 어떻게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를 상식적인 것으로 배분하는지, 누구를 위해, 그리고 어떻게, 지배의 이데올로기가 일상의 학교생활에서 구현되는지를 설명한다.

 

 그 한 예로,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교육기관인 유치원에서부터, 학습 능력보다는 권위와 제도에 복종하는 훈련을 최우선 가치로 습득하기 시작함을 지적한다. 또 학교는 ‘합의’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함으로써 ‘갈등’을 배제한다. 사회교과에서도 갈등을 부정적인 것으로 다루고, 사회를 협동체제로만 규정하면서 결국 기존의 체제와 지배의 이념을 지속시킨다. 또 과학 교과에서도 과학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서술하는데, 이는 과학의 본질이 혁명과 논쟁이라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교육과정에서 이주민, 민족, 인종, 계층의 차이를 지능의 차이로 대체하면서, 차별을 자연적인 것으로 지속하고 있다.

 

 이처럼 학교의 다양한 교육과정에 따라, 결국 각 개인은 학교에서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의 침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대단히 어렵다. 애플은 이를 <세계에 대한 이해가 ‘자기 정당화’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학교는 학교의 규칙 자체를 문제 삼은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이해방식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지배의 이데올로기로 세계를 이해하는 개인이,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허위와 부당함을 깨닫는 것은 어려우리라. 

 

  애플은 교육에서 체제용어의 사용은 학교를 공장으로 가정하는 체제경영론자들에 의한 것으로,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신념에 기초한다고 지적한다. 체제경영은 기술적 합리성과 전문성을 강조하며 결국 기존의 정해진 사회 속에서 개인의 역할을 배정 규정하는 기능을 한다. 또 학교가 학생들에게 사용하는 언어(‘학습 부진아’, ‘적절한 행동’ 등의 명명과정)는 중립적이지 않고 왜곡된 관점을 내포하는데, 이처럼 교육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본질적으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한다.

이처럼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학교를 넘어서기 위해서, 애플은 기존과는 다른 사고와 행동방식 즉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으로, 지배적 헤게모니에 대응하는 인식과 활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책은 줄곧 교육과정의 비중립성·정치성을 문제 삼는다. 교육의 본질이 정치적이라는 통찰을, 혹자는 상식적이라 할 것이고 혹자는 지나친 편견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자기가 경험한 바대로 말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리라. 이는 애플이 말한 것처럼 “자기 정당화의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자기의 이해방식 자체를 비판 교정하기란 그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애플은, 교육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향유하고 있기에, 교육을 통한 사회변혁에 부정적이지 않다.

 

 이 책에서 애플의 분석이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교육의 자율성이 어떻게 반헤게모니 투쟁을 전개할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서술이 없다. 들뜬 독서의 즐거움 가운데서도, 책 전반에 걸쳐 추상적 진술의 반복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 문득문득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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