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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ㅣ 살림지식총서 136
강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평점 :
학계의 금기들-스승비판, 전공불가침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공개적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용기 있고 의미 있는 작업이다. 대학원에서 석 박사 과정에 참여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아쉬운 점은, 이런 주제는 학계에 관심있는 자들을 主 독자로 할 것인데 예상 독자에 비해 그 내용이 평범하고 , 특히 후반부는 글의 논지에서 벗어난 것 같다.
책을 보다가 어?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져 몇 말 올린다.
‘진보 없는 보수, 보수 없는 진보’를 말하는 50쪽에서, ‘사회의 모순을 구조적인 차원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비판하는 진보주의자가, 자신의 주 고민 영역이 아닌 부분에까지 일관되게 행동하기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 무리한 주장’이라는데 과연 그럴까? 이 말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글쓴이의 의도는 알겠는데, 한편 지식인이란 자신 밖의 영역으로 인식과 실천을 확장해 가며 사회적 연대 책임 의식을 갖는 자라고 생각한다.
74쪽에 이르러, 진중권이 정치판에서는 소신있게 행동하면서 문화판에서는 물렁물렁하다고 비판한다. 그럼 글쓴이 자신이 앞서 말했듯 ‘자신의 주 고민 영역이 아닌 부분에까지 일관되게 행동하기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 무리한 주장’은 어떻게 되는가? 아미면, 진중권이 미학 전공자이어서 그는 문화판에서 더 선명하게 놀아야하고 정치판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그런 구분이 곧 일종의 ‘전공불가침의 법칙’이 아닌지? 왜 그런 구분을 하는가? 글쓴이의 현실 인식 수준이 의심스럽다.
더불어 말하건데, 우리 사회의 소위 ‘진보’와 ‘보수’는 그 담론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그 층위가 분명하지도 않고(민주/반민주, 상식/비상식, 그리고 세대와 계층 심지어 지역까지) 중층적으로 분포한다고 본다. 글쓴이를 이를 너무 단순화시켜 단정하고 있다. 특히 소위 ‘진보’를 비판하면서도, ‘보수’의 여러 행태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언급이 없는지 궁금하다. 설마 글쓴이에게 어떤 금기가 작용하는 것은 아니겠지?
‘학계의 금기’를 지적한다는 책 제목을 보고 구입한 나 같은 독자에게는, 이 짧은 책에서 상대적으로 장황(?)하게 늘어놓는 생태주의 , 문화비평을 접할 때, 반은 속은 기분이 든다. ‘빈약한 내용’(78족)으로 ‘고도의 구상화 없는 글쓰기’(80쪽)가 바로 지은이 자신에게 해당하지 않는 것인지 반문해볼 일이다. ‘대중적 글쓰기의 허구성’이라고? 이 짧은 글에서 저자는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 한다. 그러다보니 독자의 시선을 잡아두지 못하고, 논지의 전개도 산만하다.
책 사서 귀한 시간을 할애한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다시 말하면 본전 생각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