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동문선 현대신서 102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 동문선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글렌 굴드를 들었을 때, 도대체 이런 바흐 연주가 가능하기라도 한 걸까라는 충격에 빠졌었다.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지 대학 1학년 때인지는 흐릿하지만, 그 날의 방에 흐르던 햇빛과 음들의 생경함은 아직 생생하다. 빌헬름 켐프의 연주로 골드베르그를 수없이 들었지만, 명암 구분이 흐릿하여 따분하기만 했었다. 그러다 굴드의 연주를 듣는 순간 한 음 한 음 성찰하듯 입체적으로 흘러 들어오는 바흐는,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서양 고전 음악을 들으며 ‘처음 듣는 순간부터 놀라웠다’라는 순간이 몇 번이나 될까?   

 

 글렌 굴드를 들었을 때 바흐 해석의 충격은 너무나 강한 것이었다. 한 작곡가에 대한 것도 아니고 (과연 한 작곡가의 전 곡을 좋아할 수 있을까?) 연주자의 모든 연주를 좋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연주자에 대한 경이로움은 글렌 굴드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비교해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피아노를 좋아하지만 이는 또 굴드에 대한 애착과는 다른 것이다.  

 

 

  당시 LP시대에는 골드베르그 변주곡과 2성 3성 인벤션만 출반되었었는데, 이제 그의 전집 에디션이 흘러 넘치고 있다. 레코드 샾에 가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어쩌면 굴드에 대한 것은 ‘집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집착이 맹목적이긴 하지만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기에, 수 많은 굴드 팬들이 있을 것이다. 

 

 

   끊어치는 분명한 아티큐레이션 논 레카토 주법, 페달을 사용하지 않는 프레이징 구축, 왼손이 단지 반주로 그치지 않고 독립된 멜로디 라인을 구성하는 것, 그래서 두 손의 멜로디가 전혀 섞이지 않게 독립된 소리로 들리는 것, 아마도 이런 것들이 그의 독특한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다운 것은 이것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어? 하는 정도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곡 해석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의 설득력을 가진 해석, 이를테면 빠르기를 일반적인 통념에 구애받지 않는 것(베토벤 14번 소나타,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멜로디라인을 완전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주하는 것(특히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작품 310. 물론 굴드의 이런 모차르트 해석에 혹평을 가하는 평자들이 많다.) 그리고 장식음을  단지 장식음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멜로디로 정확하고 분명하게 짚어주는 것 등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음악이 파격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해석보다 더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일 것이다.  

 

 

 또한 곳곳에 배어 나오는 그의 숨소리, 신음소리! 과연 이처럼 매력적인 노래가 있을까? 이 소리가 너무 심해 녹음에 지장이 생긴다고 방독면을 쓰고 계속 노래하며 녹음했다나? 그리고 이번 책을 통해 알게 된 그의 녹음상의 조작. 글쎄 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잘 모르겠다. 누구나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반복과 편집을 하지만 굴드가 특히 이에 많이 의존했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리고 굴드의 초기 녹음보다는 후기 녹음들이 음질면에서도 그렇지만 음의 깊이나 강약, 힘의 강도에서 더 좋은데, 이도 녹음 편집의 영향일까?  


   이 책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마치 처음 맛보는 과자를 대하는 아이처럼 아껴가며 한 장씩 읽어갔다. 굴드에 대한 여러 정보들이 무척 흥미롭고, 작가가 그에 대한 감상부분은 굴드 팬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음악을 모르고는 전혀 이해될 수 없는 감정의 넘침이기도 하다.  오직 공감과 찬탄만이 흘러 넘쳐도 좋으리라.  

 

 특히 이 책의 저자는 브람스 발라드와 인터메쪼에 대한 예찬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굴드의 녹음 중 브람스의 피아노 소품들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했다. 굴드에 대한 애정을 가진 자라면 어찌 그 음반을 찾아보지 않겠는가?  

  굴드의 브람스는 느린 부분에서도 브람스 특유의 긴장감이 손상되지 않고 살아 움직인다. 듣고 있자면 참 묘하다. 발라드 4번에서 특히 그러하다. 음 하나하나에 싣는 음색이 대단히 정교하여 한 음이 그 다음 음을 항상 당기고 긴장시키는 것 같다. 브람스 초기 작품인 발라드를 굴드는 사망하기 바로 전인 1982년 2월 녹음했다. 그의 생을 마감하기전 녹음으로 (바흐의 골드베르크가 아닌) 브람스를 듣자니 묘한 긴장이 느껴진다. 그 다음 랩소디 op79의 두 곡이 있다. 82년 6, 7월 녹음이며 랩소디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상대적으로 잘 듣지 않는 편이다. 그 다음 5 곡의 인터메쪼가 있다. 이 다섯 곡은 너무나 아름답다.(op 117-1, 117-2, 76-6, 118-1, 118-2) 이는 굴드의 초 중기인 1960년 11월 녹음이다.  루빈스타인이나, 길렐스, 라두 루푸의 연주와 비교해보면, 역시 굴드의 모음판에 손이 가장 자주 간다.   

 

 

 이 책은 일반적인 전기와는 사뭇 다르다. 굴드의 객관적인(무엇이 객관적일까?) 행적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대부분 작가의 심리를 굴드의 음악에 겹쳐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굴드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읽어내지 못할 책이다. 오직 굴드에 대한 애정으로만 끝까지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어쩌면 우리는 굴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굴드에 대한 애정의 확인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굴드를 사랑하는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독서이리라. 또 이 책에서 밝힌  ‘브루노 몽생종’의 글들이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의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어줄까.  

 

  굴드의 연주로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듣는 이 아침, 그의 숨소리와 노래소리와  함께 그의 현존을 느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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