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술 1902-1950 - 조국엔 언제나 감옥이 있었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자연스레 선생님이라 부르고 싶은,  이, 관, 술,
일대기를 따라가며,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사회 역사적 좌표로 자리매김하여 가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해방 공간 지도자로서 민중의 인지도가 김일성이나 김규식 보다 더 높았던 5위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지난한 길을 꿋꿋이 걸어간 선생의 모습에 진한 감동과 함께, 우리 현대사의 굴절이 함께 다가와 깊은 슬픔도 함께 했다. 해방공간의 좌우 대립과 시대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처럼 ‘공산주의자의 눈으로 본 해방공간’은, 예전에 내가 읽었던 자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생동하고 있었다.
  엄혹한 일제시대, 민족주의 우파들의 고담준론(?)과 해외파들의 안온과는 달리, ‘반제동맹 - 경성콤그룹 -조선 공산당’으로 이어지는 이관술의 투사적 실천에 가슴이 저려 왔다. 당시 최고의 인텔리이자 부농의 아들로 아쉬울 것 없던 그가 가족과 목숨을 내놓고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차별 없는 인간해방, 노동해방의 세상이 아니었을까.

  그도 처음부터 투사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덕여고의 교사로 재직하며 ‘경성 만세 운동’의 경과를 지켜보며 그는 서서히 사회의식에 눈뜨고 실천가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 후 그는, 변절과 타협의 시대를 정면으로 치고 나가며 투사로 살아간다. 아마도 그는 민족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 지사이자, 민중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윤리적 인간이었을 것이다. 정파간 권력투쟁보다 오직 노동운동을 위해 묵묵히 걸어갔던 그의 모습에서 나는 지극히 윤리적인 인간의 모습을 본다. 전태일에게서 불로 처형당하는 예수를 느꼈던 것처럼, 이관술에게서도 낮은 곳을 향하는 참된 예수의 사랑이 오버랩 되었다.
  특히 이관술이 체포-처형의 계기가 된 ‘정판사 위조 지폐 사건’은 이 책이 제시하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조작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그가 유죄라는 자료를 읽지 않은 독자로서는, 지금 편파적인 자료만 읽은 것이 된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정황, 당시 미군정이 남한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고 단독정부로 가기 위한 수순에 따라 조선 공산당을 고문으로 엮어 만든 사건이라는, 이 책의 주장과 근거 제시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책의 끝부분, 이관술이 처형 당하는 부분에 이르면 ‘현대사의 비극’ 운운하며 쉽게 말할 수만은 없는, ‘야만의 세월’이었다. 물론 북조선도 수많은 학살과 살인을 저질렀고, 남한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김일성 정권’의 파쇼적 측면과 해방공간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운동가’와의 삶을 등치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관술이 북조선 정권에 합류했다면, 그가 고위 권력자가 되었을 가능성 보다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적어도 내 생각엔 박헌영보다 훨씬 더 순수했던 이관술이 그 권력 투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의심이 간다.

  어쩌면 그는 이상주의자일 것이다. 남북 어디에도 안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이상이다.’ 나는 항상 묻는다. ‘당신이 말하는 현실은 누구의 현실이며 그것은 어떤 현실인가?’ 아직 오지 않은 삶을 이상이라 부르며 가치를 폄하한다면 “죄 없는 자만이 이 여인을 돌로 쳐라”는 예수의 가르침도 이상주의자의 헛된 소리일까?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단지 용기가 없거나 솔직하지 못할 뿐이다. 차라리 그러지 못해 부끄럽다고 솔직히 고백하자. 그것이 차라리 위선적이지는 않다.        

  일제시대 재판부보다 못한 군정 재판이나, 더 악독한 친일 경찰들, 즉결처분,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인 보도연맹 학살. 이런 사건을 책에서 활자로 읽으며 ‘많이 죽었군’이라거나 ‘급박한 시대의 불가피한 상황’ 운운하는 자들이야말로, 야만의 지속일 것이다. 진실 없는 (그리고 책임 규명 없는) 역사 청산이 가능하기나 할까?  김영삼 정권 때 사회주의 운동가의 국가 유공자 인정 발표에 따른 이관술의 비석마저도 수구 세력들에 의해 다시 땅에 묻어야 할 만큼(이 사건  예전에 신문 기사로 본 듯하다) 우리의 역사 인식은 아직, 천박하다.  
  특히 그의 개인 가족사를 보면 우리 현대사의 참담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한 큰 사위, 동생 이학술의 사살, 아내와 딸들의 행방불명, 유일하게 살아남은 큰 딸과 어린 막내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겠는가는 우리가 짐작하지도 못할 것이다. 거물급 ‘빨갱이’의 자식으로 이 땅에서 숨쉰다는 것이 어떤 삶이었을까?
  이관술의 손녀인 손옥희 님에게서 책을 선물 받은 나로서는, 그들이 살았을 시대의 어둠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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