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의 그늘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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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황석영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지만 전투보다는 후방 근무를 한 까닭에, 소설 역시 PX를 둘러싼 물자 유출에 중점하고 있다. 미군 PX에서 유출되는 물건이 암시장을 통해 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통해, 미군의 군산복합체 성격 혹은 경제 제국주의로서의 미국을 통찰하겠다는 취지인 것 같지만, 빈약한 경험으로 거대 서사를 시도하는 무리가 곳곳에 느껴졌다. ‘고작한국군 상병인 안영규가 거대 암조직에 맞서 베트콩으로 흘러나가는 무기거래를 파헤친다는 설정이, 헛헛한 얼개로 느껴졌다.

 미국이 2차 세계 대전보다 많은 폭탄을 소진한 베트남 전쟁에서, 고작 미군 식량인 씨레이션을 대단한 미군 물자로 삼고 시종 긴장을 끌어내려는 서술이, 블랙마켓의 야채 등을 둘러싼 전개를 거대 서사에 접목하려는 불균형이, 그것도 한군국 상병(안영규)이 중심이 되어 이 거대 전모에 접근한다는 설정이, 내게는 설득력도 흡입력도 없었다. 유약하던 팜 민이 키엔 중위와 협상하는 장면에서 일시에 능란한 전문 협상가로 서술되는 생뚱함(160), 대부분 등장인물들의 대화법이 생략과 암시의 스타일로 일관하는 점, 결말에 비해 너무 긴 소설 분량 등 곳곳이 매끄롭지 못하다.

 그런데 이런 서사의 결함과는 별개로 중간중간 삽입된 보고서(강간과 미라이 학살, 어린 베트콩의 고문과 살해 등)에서 오히려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이 더 드러났다. 작가가 이처럼 전쟁의 끔찍한 묘사나 참혹함을 부각하는데 급급해 전쟁의 본질을 놓치기보다는 전쟁의 배후와 핵심에 접근하려 했다는 의견에 비추어 볼 때, (나는 이 의견 역시, 작가의 제한적인 경험을 만회하려는 소설적 선택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소설이 군산복합체로서의 전쟁본질을 드러내는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저 피의 밭에 던진 달러, 가이사의 것, 그리고 무기의 그늘 아래서 번성한 핏빛 곰팡이꽃, 달러는 세계의 돈이며 지배의 도구이다. 달러, 그것은 제국주의 질서의 선도자이며 조직가로서의 아메리카 신분증이다.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군대와 정치적 힘 보태기, 다국적 기업망의 그물로 거두어진 미국 자본의 기름진 영양 보내기(290)처럼, 작가가 결말 부분에 총정리하듯, 미국 자본의 세계지배를 베트남 전쟁의 본질로 제시한다.

 아쉬운 서사 밀도와는 별도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 능력은 주목할만 하다. 남베트남 정부군과 베트콩으로 갈리는 팜 형제와 구엔 형제의 설정 등 소설 초입부터 결말을 얽어매는 작가 솜씨는 녹록치 않다. 또한 이 소설이 발간된 당시에는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것들 중에는 이 소설이 매우 앞서는 것이었다. 지금 2021년에는 베트남 전쟁 관련 자료들이 그나마 있지만, 당시에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 소설의 기초가 된 난장(亂場)1978년 연재로 완결되고, 1988무기의 그늘로 재편되었다 하니, 그 시대성은 매우 앞서는 것이다. 지금도 이 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80년대 전후의 우리에게 베트남 전쟁은 오직 반공과 경제논리로만 규정되었고, 다른 의견이나 상상은 없었던 시대 아니었던가. 이는 소설 말미에 붙은 해설에서도 그대로 지적된다.


처음 발표되던 무렵만 해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기억은 파병의 정당성을 강변한 정권의 통제로부터 한치도 자유롭지 못했으며, 사태의 진상에 접근하기 위한 최소한의 문제제기도 공론화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대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무기의 그늘은 당시까지 베트남 전쟁에 관해 공유된 국내외의 지배적 편견을 일소하고 전생의 실상을 최대한의 객관적 시각으로 조명한 값진 성과(353)라는 임홍배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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