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평점 :
아껴 읽었다. 너무나 재미있다. 저자의 고통이 너무나 깊은데, ‘너무나 재미있다’는 것이 가학적이다. 디디에 에리봉을 『미셸 푸코』 전기의 저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미셸 푸코』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는데(확인해보니 1996년에 읽었다) 당시 책의 탁월함에 감탄했기에 이 저자가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책 1부는 노동자 계급인 父系, 2부는 역시 노동자 계급인 母系와 ‘나’의 성장기를 분석한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3부인데 좌파를 자칭하던 부모와 형제들이 (극)우파로 변해가는 것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나름의 대응 방법을 서술한다. 4부는 랭스대학 철학과에서 느낀 실망감,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의 열정과 학업 중단을 회상하고, 5부는 동성애 경험을 성찰한다. 게이 정체성에 따른 고통과 그것의 (정신분석학적 분석이 아니라)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지식인 집단에 소속되어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서술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 듯하다. ①노동자 계급 출신이 지식인 사회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정체성 문제가 가장 중심이고, ②동성애자인 저자의 내밀한 고백과 이것의 사회학적 해석과 ③프랑스 지식인 내부의 스케치가 그것이다.
이 책을 단지 한 저자의 자기분석으로만 접근한다면 크게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계급 의식/동성애/프랑스 지식사회에 관심과 기본 지식을 갖고 본다면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이렇게 흥미있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저자의 깊은 성찰과 뛰어난 자기기술(記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자기분석의 탁월한 예증이다.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