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양으로 읽는 법 이야기 - 법정에서 소크라테스와 공자를 만나다
김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한겨레 신문의 책 소개를 통해 주저없이 선택했다. 이전에 읽은 저자의 『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책세상 刊)에서 통속적으로 오해하는 마키이벨리의 정치론을 비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법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인데, 저자는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상식적’인 법 이해를 교정해 주고 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책머리에 밝혔듯 “천부인권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인간들의 권리를 향한 역사적 투쟁을 이해한다는 말이기도 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계급적 이해관계로 싸웠고, 그 승리자가 정의의 이름으로 세상을 지배해왔으며, 공짜로 얻어진 법적 정의는 없다’는 것이다.
1장에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절도를 금하는 법은 결국 가난한 자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법은 이미 그 자체로 강자의 법일 수 밖에 없음을 여러 가지로 보여 주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법치의 엄밀한 적용인 기계적 법치주의가 정의로운 것 같지만 법 자체에 내재된 불평등을 개선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인치주의적 재량을 허용하면 권력자의 법으로작동할 위험이 있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적 법치주의’라는 형용모순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공자의 예치(禮治)가 “예는 서민에게 미치지 못하고 형은 대부에 이르지 않는다(예기)”에서 알 수 있듯 노예제 지배계급의 특권옹호와 닿아있고, 한비자는 신흥 봉건 세력을 대변하는 법치를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구약 성서와 영화의 예를 등을 들어 법은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금지하는 행위를 처벌의 수단으로 삼는 동태복수의 문제점을 제시한다.
2장에서는 법이 어떻게 지배계급에 봉사하는지를 인혁당 재판부의 판사와 전관예우의 예 등으로 설명한다. 특히 링컨 부분. 남북 전쟁은 미 연방의 해체를 막아 미 제국주의의 기초를 닦은 전쟁이기에, 링컨의 업적은 이 부분이지 노예 해방이 아니라는 것. 노예 해방 위인으로서의 링컨은 허구적이고 조작되었음을 지적한다. 남북 전쟁은 남과 북의 관세 문제로 인한 경제적 충돌이며, 오히려 흑인 노예에 대한 링컨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3장은 현대의 법이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설명한다. ① 고대 지배계급은 ‘신의 뜻’으로 노예 사회를 정당화했고 ② 중세 지배계급은 ‘기독교’로 봉건 사회를 정당화했다면 ③ 부르주아들은 ‘이성’으로 자본주의 질서의 정당화를 추구했는데 이것이 근대적 법치주의 탄생 배경이라는 것이다.
로크의 자연법론과 사회계약론이 그 허구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확립에 절대적이었으며, 역설적이게도 그 자연법론이 자본주의 지배계급을 압박할 수 있는 ‘양날의 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몽테스키외가 주창한 삼권 분립 정신도 사실은 군주정에서 귀족의 권력을 연장시키기 위한 술수였다는 것. 그는 대의제을 말하지만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민중의 권력 소외와 다르지 않다는 것. 역사상 직접 민주정을 주장하던 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대의제로 돌아서는 권력자의 기만을 여러 예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현대 정체(政體)에서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니 대의제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 지배계급의 기만이며, 국민소환, 국민투표, 국민발안 등의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여 대의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장에서는 역사속에서 민중의 법이 입법, 행정, 사법에서 어떻게 진보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① 입법 -19세기 초 1일 18시간 노동을 위한 입법운동에서부터 끊임없이 자본과 싸워 온 노동 입법의 예를 보여준다. ② 행정 -입법을 거쳐 법이 문장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현실 규범이 되지 않고 또 끊임없는 투쟁이 있어 왔음을 보여준다. 1870년에 주어진 미합중국 ‘시민’의 참정권을 ‘여성’에게는 1920년에야 서서히 실행되기 시작했고, ‘흑인’은 목숨을 건 투쟁의 결과 1964년에야 집행이 시작되었음을 설명한다. ③ 사법 - 법적 정의가 절대 진리라면 왜 대법원의 판례 변경이 일어나는지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마르크스에 의하면 ‘동등한 권리사이에는 힘이 사태를 결정 짓’기에 노동시간은 밀고 당기는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으로, 법은 계급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공산주의 윤리론과 성경의 유사점을 지적하며 저자가 말하는 명언 하나! “마르크스의 이런 꿈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간단히 물리쳐버릴 수 있다면, 예수의 꿈도 간단히 물리쳐야만 할 것이다. 간통한 여인의 에피소드를 통해 강제규범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도덕 규범이 지배하는 이상사회를 설파하려 했던 ‘예수의 꿈’을 말이다.”(222쪽)
5장에서는 우선,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며 이는 나쁜 강자보다는 좋은 약자를 위한 장치임을 구체적 예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가 어떻게 독재자에 의해 날조되어 지배자의 통치에 전용되었는지를 길게 설명한다. 당시 소크라테스는 그의 철학적 신념에 따라 민중에 의한 직접 민주정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정치적 반대파에 의해 정치재판을 받은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의 오점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즉 ‘잘못된 기소에 의한 배심원들의 부당한 판결’을 자신의 죽음이라는 준법을 통해 입증하려는 저항적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법은 ‘존재의 학문’이 아니라 ‘당위의 학문’이기에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정구 교수 사건’으로 설명한다. 또한 법 ‘실증주의자들의 법 개념’은 있는 그대로의 법규범만을 연구하고 그 법이 좋은가 나쁜가는 정치의 영역으로 미루어 놓는데 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한다. 이와 대비되는 ‘마르크스식의 고전적 법 개념’은 영구 불변의 법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법이란 지배계급의 의지일 뿐이다. 그럼에도 피지배계급은 법을 일반 정의로 착각하고 그 지배계급의 정의 실현에 동의한다. 이렇게 되면 법은 동의를 통해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즉 허위의식이 된다. 끝으로 법은 모순적인 현실의 반영이며, 법의 발생, 적용, 진화의 총과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