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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한국사 - 우리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탐닉했나
김동주 외 지음 / 서해문집 / 2024년 9월
평점 :
양쪽 관자놀이 뒤 깊숙한 곳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을 주관하는데, 편도체는 우리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은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어떤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 기분이 우리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며 매순간 자기 자신을 사유하며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현존재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심리적 기제가 불안이라고 했다. 불안은 우주적으로 물려받은 본질적인 감정이며,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성취도에 의해 계급이 나눠지면서다. 돈을 얼마나 벌었고,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계급이 달라지면서 우리는 외양 중심의 세계를 살게 됐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해지면서 세상의 눈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당하기 시작한 사회에서 소비는 너무나 당연한 행위가 됐다. 소비를 통해 남들이 보는 나를 더욱 더 가치있게 꾸며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분이 드는데, 이런 기분과 함께 소비는 끝없이 반복된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상태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소비의 한국사]는 소비사회의 한국사적 맥락을 살펴보기 위해 다섯 명의 연구자가 모여 쌀, 물, 라면, 커피, 부동산, 가전제품, 술처럼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을 비롯해, 생필품이 아니었지만 사회 변화에 따라 일상적 소비재가 된 것들,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거나 중독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것들을 통해 근현대사 속에서 소비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욕망을 잠식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5장 ‘당신이 꿈 꿔 온 강남의 탄생’에서 중요한 소비재이자 투자의 대상이 된 ‘집’의 소비역사를 다루면서 강남으로 대표되는 신도시 개발의 역사를 통해 정부와 기업이 금융기관의 지원 사격을 받아 만들어 낸 욕망을 파헤친다. 6장 ‘마, 느그 집에 냉장고 있냐?’에서는 근대화한 삶을 상징하는 몇 가지 가전제품-텔레비젼, 냉장고, 세탁기가 어떻게 중산층의 ‘필수가전제품’으로 불리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만들어냈고, 자긴 자는 우쭐대고 못 가진 자는 가진 자를 보며 그것을 욕망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7장 ‘우리는 취하고 싶다’에서는 한국인이 술을 마신 역사를 돌이켜 보며 한국의 알코올 소비 대중이 원한 건 알코올 그 자체가 아니라 쉼 없이 일하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고된 현실을 잊어버리기 위해, 때로는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정서적 욕구 때문이라며 근현대사를 지나온 기간 동안 한국인이 정서적으로 목마른 시간을 버텨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비의 한국사]는 정부가 나서서 소비를 주도한 사례들도 다루고 있는데 세수 증대를 위해 복권, 경마장 등을 통해 도박을 권장하고 ‘적당히만 하라는’ 주의를 주는 척하며 합법적으로 카지노를 운영하고, 10장 ‘판매와 소비 욕망의 용광로, 관광의 시간’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섹스관광을 육성했던 정부, 부자나 상위 계층이라는 만족감과 중산층이라는 안정감, 이색적 경험이라는 쾌락을 사는 산업으로 관광 산업을 육성하는 등 정부나 국가는 대중의 욕망을 어
떤 식으로 자극해 소비를 유도하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은 미덕이자 숨길 필요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소비를 하지 않으면 사회에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함을 느끼게 되고, 소비를 하지만 더 가지기 위해 또 소비를 하고 불안을 느끼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와 사회가 주도하는 소비의 수레바퀴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사유하고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소비가 당연시 되는 사회에서 나는 소비를 할지 하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불안은 우리를 소비에 빠지게도 하지만 강박과 향략에 빠지게도 한다. 제14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우신영 작가님의 [시티뷰]에는 강박과 결핍, 트라우마를 겪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바다를 메워 만든 최첨단의 무국적 도시 송도에서 필라테스 센터를 운영하는 수미는 의사인 남편과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으로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지키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게 중요해서 국제학교 로고가 박힌 후드티를 입고 다니고 레인지로버를 탄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크게 불편은 없지만 이십대 헬스트레이너와 바람을 피운다.
수미의 남편인 석진은 내시경을 담당하는 내과의사이다. 섬에서 가난하게 자란 석진은 자신에게 과분한 수미를 만나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린다. 페이닥터의 삶을 정리하고 송도에 내과를 개원했지만 손님이 늘지 않자 아내 수미의 추천으로 주말 의료봉사를 나가게 된다. 의료봉사에서 페이덕터로 일하던 병원을 자주 찾던 환자 유화를 만나게 되고 유화에게 묘한 설레임을 느낀다.
유화는 요거트 공장에서 일하는 조선족 여자로 두달에 한 번 정도 면도날을 삼키고 스스로 내과를 찾아와 내시경을 받는다. 5만원 저렴하게 받기 위해 비수면으로 내시경을 받는 유화는 작은 키에 마른 몸을 가지고 있고, 여기저기 갈라지고 뜯겨서 검정 테이프가 붙어 있는 국방색 장화를 늘 신고 다닌다. 주니는 수미가 다니는 헬스장의 헬스트레이너로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지만 수미와 연애를 한다. 싹싹해서 단골 회원도 많고 헬스장에서도 나름 인정을 받고 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도 늘 열심히 한다.
시티뷰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계층을 이루고 있다. 수미는 변호사일을 하는 부모님을 둔 부잣집 딸이고, 석진은 지금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중산층을 이루고 있지만 가난하고 암울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고, 주니는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위해 갓생 살고 있고, 유화는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 놓여있는 조선족이다. 하지만 네 명의 인물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 불안에 잠식되어 있다. 혼불문학상 심사평에서 최진영 작가님은 “자본과 계급이 존재 이유와 사랑의 의미까지 재단하는 현대사회에서, 욕망과 성취로 덮어버린 당신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지.”라고 했는데 그 밑바닥에 존재하는 것은 ‘불안’이지 않을까? 자신이 속해 있는 계층 상관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불안을 느끼고 불안 때문에 각자의 상황에서 강박적인 행동을 하고 사소한 부도덕을 저지르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그런데 무서운 건 불안 때문에 소비하고 강박에 빠지고 향략에 빠지는 건 우리의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우리는 불안하게 만드는 기분이 지금 이 곳에서 자신의 삶을 염려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는 본래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고 한다. 매 순간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고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자기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현하는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감정이 불안인 것이다. 즉 우리는 매일 불안이라는 중력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무의식의 영역을 바꿔 불안을 넘어서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사회 속에 살고 있지만 매순간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고 자기 자신을 삶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자기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현하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과정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의 삶은 완성품이 아니라 수작업의 대상이다. 남들보다 오래 만져주면 분명히 남들보다 빛나게 되어 있고, 남들보다 정교해지게 되어 있다.
[책방에 모여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동네책방 ‘마그앤그래’에서 한 명의 시인과 8명의 아마추어 작가들이 모여 매달 둘째, 넷째 금요일에 만나 각자가 써온 글을 발표하고 합평했던 글들을 모아 낸 에세이 선집이다. 글쓰기 모임이 있는 주의 요일은 월화수목‘글’토일인데, 그만큼 격주로 찾아오는 글쓰기 모임은 이들에게 특별했다. 글을 쓴다는 건 고독한 과정인데 평소 주부이자 워킹맘, 아내, 며느리로 살아온 9명의 여성들은 글쓰기를 통해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육아의 어려움, 성범죄에 노출됐던 공포스러운 기억, 여성들의 노동 등에 대한 진솔한 자기 이야기는 공감을 일으키고 ‘나 역시’ 글쓰기라는 고독한 과정을 통해 나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거울반응’이 일게 한다.
인간은 매 순간 경계에 서서 선택을 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하면서 신을 따라가지 말고 경계에 서라고 했다. 이원화된 모든 것의 경계에 서서 불안하고 흔들리더라도 매 순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라고. 그래야만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확정형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지만 나 자신의 내부를 단단하게 가꿔 무의식의 영역을 예쁘게 잘 만들 수도 있다. 무의식의 영역이 잘 다듬어진다면 어떤 선택 앞에서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하고 좋은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소비에 중독되고 강박에 빠지고 향락에 빠지는 대신 독서를 하고 글쓰기를 하자. 독서와 글쓰기를 하면 ‘나’를 상실하지 않고 ‘나’를 돌보고 챙기며 한 번 뿐인 삶을 잘 살 수 있으리라. 인간의 삶이 과정이라면 이 과정을 독서와 글쓰기라는 행위로 채워 나가야지, 다짐했던 책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