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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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기 전엔 국가에 대한 인식이 미비했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농처럼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해준 게 뭐냐!’고 지껄일 뿐. 그리고 2014년 4월 16일을 기점으로 생각이 많아졌다.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하지 못한다면 존재 의의가 있는가에 대해 끝없이 생각해야 했다. 참담했다. 아이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준 것이 미안했다. 그러다가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권으로 이어진 지금 나는 다시금 괜찮은 나라를 꿈꾸고 있다. 절망은 공포를 낳고 희망은 열정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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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디스토피아 관련 문화 콘텐츠가 넘쳐나고 있다. 이렇게 넘쳐나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이 경각심을 주고 우리를 깨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인 역할을 위해선 바른 대안과 불안해소가 함께 있어야지 않을까? 희망이 없고 꿈꾸지 않고 쉽게 체념하는 것이 단지 개인의 책임일까? 좀 더 긍정적이고 밝은 미래를 기대하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괜찮다는 말로 제자리에 주저앉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현 여부를 떠나 우리가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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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맘에 안드는 부분이 많았다. 인물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억지로 짜맞춘 느낌도 강하다. 처음엔 거친 표현도 불편하고 몰입도 어려웠다. 읽어갈수록 이제껏 너무 경직되어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했다. 국가의 존재 의의 이전에 인간의 존재 의의를 먼저 생각한다면 주어진 의무 이전에 권리를 생각한다면 좀 더 너른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현실에도 희망을 보고 꿈꾸고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즐거워야 한다. 신나게 발을 내딛어야 한다. 닫힌 내 시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이 이야기가 고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절망과 좌절이 아닌 희망과 꿈임을 깨닫게 해준 이 이야기가 고맙다. 심란한 현실 속에서도 유쾌한 꿈을 꾼 등장인물들을 응원한다. 물론 그들의 능력이 나라 하나 쯤은 뚝딱 세울 수 있는 정도라 나 따위의 응원은 필요치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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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
찰스 M. 슐츠 지음, 이솔 옮김 / 유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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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어릴적 TV에서 처음 만난 것 같은데- 꽤 오래 잊고 있다가 20년 전 쯤 문장 하나로 다시 만났다. 그 문장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문장이 내게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이 잊혀지진 않는다. 그리고 또 십수년 잊고 있다가 몇년 전 김슨생이 구입한 피너츠 완전판으로 다시 만났다. 난 왜 그걸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이제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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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란 삶을 관찰하는 데서 생겨나는 게 아닐까? 지식을 쌓고 복잡한 생각을 하는 것보다 외면하지 않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데서 지혜가 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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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슐츠는 완벽히 미국인이다. 성실하고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미국인. 그 세대의 표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늙도록 어린시절을 잊지 않았다. 그 부분이 타인에 게 얼마나 관대함으로 작용했을지는 그의 만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표현대로 생각하는 개와 머리큰 아이들이 등장하는 그의 만화는 수십년 동안 사람들 곁에서 위로하고 웃게하고 공감하게 했다. 그 이유는 어딘가가 닮아서일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어떤 부분이 그들이 마주한 어떤 사건이 우리가 만나는 일상과 다름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과장없는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말들에 때론 놀란다. 아, 그렇지- 그런 거였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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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찰리 브라운을 보면서 느낀 성경적인 부분들이 오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슐츠는 글을 통해 그림을 통해 신앙고백을 해왔다. 그 고백들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언제고 시간을 내어 차분히 그의 만화를 만나야겠다. 지금은 마음이 너무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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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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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외가에서 빌려온 세로줄 책으로 셰익스피어의 글들을 만났다. 그 땐 이야기로서 충분했다. 덕분에 우리반에 있다는 전교1등으로 추정된 해프닝(절대적으로 해프닝- ;;)도 있었다. 30년전 이야기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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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셰익스피어란 고전 중의 고전이고 거장 중에 거장임은 분명하다. 익히 아는 4대 비극은 물론이요. 희극들도 많고 워낙 작품이 많기도 하다. 이번에 셰익스피어의 책들을 뒤져봤는데, 유명한 몇몇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는 번역도 너무 오래되었고 구하기 힘들겠더라. 안타깝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뜻대로 하세요’나 ‘말괄량이 길들이기’, ‘헛소동’, ‘페리클래스’, ‘헨리 6세’를 일고 싶은데(전에 읽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구하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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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과 거장이라는 이 매력적인 시리즈를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나올 책들도 두근두근하달까. 니체는 정말 좋았고, 셰익스피어는 약간 아쉽다. 기행문으로 쓸 거면 좀 더 쉬웠어도 좋을텐데 셰익스피어나 문학 전반에 대한 지식 없이는 좀 난해하다. 어느 면에선 작가의 욕심이 이해가 된다.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작품도 다 소개하고 싶었을테고 그것에 대한 무수한 비평과 의의도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4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읽히고 재해석되고 분석되온 셰익스피어를 한 권에 담기가 어려웠을 것은 당연하다. 작가의 욕심이 독자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든 것은 그 욕심의 효과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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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적인 권선징악에서 벗어나 인간의 갈등과 내면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문장들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사랑받고 있다. 그 문장들을 현대에 이르러 재해석하고 확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야기속엔 작가의 면면들이 숨겨있기 마련인데, 셰익스피어의 글 속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그 자신도 늘 느껴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토록 깊고 처절한 내면을 감추고 드러내는 인물들 사이로 대중성을 위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셰익스피어가 어떤 인물이다를 단적으로 표현하기란 어렵다. 몇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 쪽이 더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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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라면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끝없는 갈등이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인물들을 만나야겠다. 분명 30년 전과는 다를 것이다. 이렇게 또 책을 지를 이유가 늘어간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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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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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사람을 보면 본받고 싶어진다. 아니 그것은 가당치도 않고 흉내라도 내고 싶어진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글이라도 따라읽고 싶어진다. 난 이덕무를 전혀 몰랐다. 어쩌면 아버지라면 아셨을지도 모른다. 사극의 실존인물들에 대한 이력을 줄줄 읊어주셨던 아버지라면. 하지만 이제 계시지 않으니 물을 수가 없다. 꿈에서라도 슬쩍 여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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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참 잘 지었다. 문장의 ‘온도’. 온도라는 말이 가지는 다양한 느낌들이 다가온다. 차고 어둡더라도 볕을 기다릴 수 있다면 빛이 스밀 수 있다면 좋겠다. 이덕무의 문장도 그렇지만 엮은이의 문장도 그렇다. 때론 찌르고 때론 슬프게 해도 어딘가 빛을 기다리는, 볕이 스미는 느낌이 있다. 모두 공감하진 않더라도 페이지의 2/3를 접어둘만큼 끄덕거리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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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는 자꾸 쓰라고 한다. 있는대로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쓰라고 다그친다. 무엇에도 개의치 않고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내겐 허세도 거품도 치장도 가득하다. 털어내기엔 내 글도 나도 너무 초라하다. 언젠가는 솔직해서 공감하고 자연스러워서 귀여운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한 30년 후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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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평생 2만권의 책을 읽었다 한다. 평생을 가난했던 이덕무가 2만권의 책을 만난데엔 지인들의 공이 컸다. 워낙에 읽기를 즐긴 탓에 이덕무의 손을 거치지 않은 책이 좋은 책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니 귀한 서책을 내어주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으리라. 읽는 다는 것은 그저 활자를 쫓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소화시키는 데 있다면 이덕무의 머릿속과 마음 곳곳에 가득한 생각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2만권까진 아니라도 5천권 정도는 읽었으면 싶다. 하긴 1년 1-200권도 여의치 않은데 가당키나 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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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김수영이 자주 언급되는데, 서슬퍼런 김수영의 시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가와도 닮았다. 세상도 두렵고 타인도 두렵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이다. 아무도 몰라도 나는 알고 있는 면면들을 다시 살피자. 안 들켰다고 내쉬는 한숨을 누군가 들을지도 모른다. 아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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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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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하다’는 몹시 슬퍼서 마음이 아프다는 뜻이다. 정치와 마음은 지극히 공적인 부분과 지극히 사적인 부분이라는 점에서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인다. 쉬운 이해를 위해 그 접점을 찾아본다.
정치-인간-마음.
정치-민주주의-인간-마음.
정치-민주주의-관계-인간-마음.
정치와 마음 사이 꽤 많은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몹시 어색하고 기이하게 여겨진다. 지나치게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해온 것은 아닐까? 개인과 집단을 너무 별개로 치부한 것은 아닐까? 좀 안일했던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 왜냐- 사람이 너무 많고 그 많은 사람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효과적이고 손쉬운 결론을 위해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하지만 그렇다해도 희생을 강요할 순 없고 모두 평등할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그러니 갈등하지 않을 수 있는가. 각 개인의 입장과 생각과 요구가 다르다. 그 모두를 충족시킬수는 없고 다수의 횡포로 소수를 그냥 무시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간혹 사람들은 갈등을 말하는 이들이 갈등을 일으킨다고 오해한다. 갈등이 원래 존재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 갈등을 드러내고 확인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마치 아무 갈등이 없는 것처럼 잊고 외면한다. 그러면 갈등이 사라지나? 해소되나? 안타깝게도 그 갈등을 외면한 댓가가 따른다. 갈등이 점점 자라나는 것이다. 덩치가 커지고 힘을 갖고 갈등의 당사자들을 무너뜨린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진 않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갈등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누군가,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꺼내서 분석하고 엉킨 매듭을 풀 듯이 낑낑대며 수고한 까닭이다.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모두 같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 의견이 부정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 좀 틀려도 괜찮고, 다른 것은 당연하고,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함께 궁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문자로 배웠지만 체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불편과 불쾌를 감수하고 체험해야한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좀 더 솔직한 관계, 좀 더 나은 결론에 이른다. 그래야만 좀 더 바람직한 사회, 좀 더 신뢰할한 세상이 된다고 말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은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있다. 그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인간은 모두 각자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가졌고 그것들은 자주 서로 부딪힌다. 70억이 넘는 사람들이 계속 서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 부딪힐 지 혹시 완충재를 사용할 수 있는지 부딪힘으로 더 빛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전혀 부딪히지 않고 살고 싶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에 대한 부분만이 아니다. 관계, 마음, 종교 모든 것에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씌여있다.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우리가 현실과 이상(가능성)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내적자아와 외적자아의 갈등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결국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네 마음은 어떤가- 그 마음은 안녕한가- 그 마음이 안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조금쯤 더 안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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