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과 풍경 펭귄클래식 40
페데리코 가르시아로르카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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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로르카. 여기저기서 많이 본 이름이지만 정작 그의 글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서문에서부터 아름다운 문장들에 사로잡혔다. 과거의 글들을 만나기가 주저되는 요즘이다. 고작 40년을 살아온 나도 가치관의 변화에 갈등하는데, 100년 전의 글들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을 해소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문장으로 다가오지 않고 작가의 가치관이나 시대상을 평가하고 분석하게 된다. 물론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관을 가진 작가들도 있어서 감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그 시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가치관과 시대상에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 이 글은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웠다. 덕분에 문장에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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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낀 것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명확하고 사실적인 사진으로도 그 인상을 전하기란 어렵다. 시대를 지나 살짝 바랜 그림같은 묘사가 아름다운 문장에서 드러난다. 몇번이고 그림을 그려보게 되는 문장들에 감탄했다. 점점 완성된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나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아쉬워졌다. 더 즉각적이고 확실한 것들 속에서 아름다운 문장들이 죽어가고 있다. 단어들이 사라져가고 아름다운 표현은 알 수 없는 문자로 대체되고 있다. 이렇게 점점 척박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마음이 말라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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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의 문장들이 마음에 닿고 이런 문장들이 내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 지 새삼 느낀다. 찬찬히 되새길 기회를 잃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것을 눈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마음에 그리는 것 역시 잊혀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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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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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이야기가 아슬아슬 이어진다. 앞의 두 이야기엔 잘 집중할 수 없었다. 첫번째 이야기는 기구를 상상하느라 지나갔고 두번째 이야기는 사라 베르나르를 상상하다 지나갔다. ( 무하의 그림 속 사라 베르나르를 한 다리 걸러서 전해듣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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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를 읽으며 어쩐지 기형도의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가 떠올랐지만 그것은 그저 문장일 뿐이었다. 줄리언 반스가 잃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삶의 절반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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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잃고 난 후 우리에겐 무엇이 남을까. 남겨진 것이 잃은 것보다 작고 의미없을 때 그 남겨진 것 만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추스려야 할까. 읽을수록 상상할 수 없었다. 거대한 상실과 공허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 만큼 사랑한 것이 없어서 나는 그런 마음까지는 아니겠지 생각하니 다행이면서도 부러워졌다. 울어야 할지 그저 안도해야할 지 모른 채 텅 빈 마음에 들러붙은 조각들을 훔쳐봤다. 그 조각들의 온전한 모습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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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바는 없었다. 신뢰와 사랑과 존경이 가득한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덤덤하진 않을테고 쓸쓸하고 슬프겠지. 그래도 매 순간 그립지는 않을 것 같다. 분명 이따금 그립고 이따금 허전할 것이다. 일상이 흘러가는 것은 두고라도 마음도 얼추 흘러갈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머릿속에서 반복재생 되면서 두 가지의 삶이 겹쳐진 것처럼 이쪽에도 저쪽에도 머물 수 없는 상태는 아닐 게 분명하다. 그래, 다행인 걸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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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쓰다 - 작가들의 고양이를 문학에서 만나다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박성민 외 옮김 / 시와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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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으로 구입한 책인데 고양이에 대한 수필, 시, 소설이 모여있다. 고양이 없이 살아온 삼십몇년 동안 그닥 동물에 대해 관심은 없었다.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존중이나 죄책감은 늘 있었지만 동물과 함께 살기엔 너무 게으르고 이기적인 생물이었다. 김슨생이나 성장기 청소년이 동물을 좋아해서 몇 번 함께하기도 했지만 이만큼의 애정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고양이와 함께 산 지 고작 몇 년, 같은 매일이어도 늘 사랑스럽고 뭘 해도 밉지가 않은 시기를 넘어 고양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 때부터 기회될 때마다 고양이 책을 하나씩 구입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책을 읽다가 우리집 고양이들을 보고 흐뭇해진다. 찰스 부코스키는 순전히 고양이 때문에 좋아하게 된 작가고 몽테뉴는 고양이 덕에 달리 보게 된 작가다. 클림트 역시 고양이 덕에 호감도가 올라갔고 에밀리 디킨슨 역시 더 공감하게 되었으니 도 말할 것도 없다. 불과 몇 년 사이 고양이는 내게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고양이 만세!라도 외치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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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관찰하는 것은 흥미롭다. 고양이의 생각을 짐작하는 것은 즐겁다. 고양이의 세계를 궁금해하는 것은 어쩐지 위험하고 고양이의 언어를 이해하기는 버겁다.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무엇에든 큰 애착이 없는 내게(중요치 않아서가 아니라 무엇이든 다 지나기 마련이고 아쉬워도 그만이더라-를 너무 잘 알아서) 고양이란 신기한 존재다. 누구와 어울려 살아가고 부대끼는 것이 편치 않은 내게도 너무 편안한 존재다. 이런저런 추측과 가설로 고양이들을 대하고 있지만 그들의 진짜 속이야 알 수가 없다. 종종 대화를 시도하지만 내킬 때만 응해주고 심지어 심란한 표정을 짓기도 해서 오리무중이다. 그래도 나는 매일 고양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나를 할퀴어도 배변 단속을 잘 못해도 새벽에 나를 깨워도 괜찮다. 고양이들이 아픈 것만 아니면 다 괜찮다. 그런 나를 깨달을 때마다 놀라곤 한다. 고양이의 어떤 면에 이렇게나 사로잡힌걸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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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처음 만나는 글들이다. 엮은이가 최대한 골라서 편집했다고 했다. 고양이에 대한 혹은 고양이에 의한 글들 속에서 우리집 고양이와 내 친구들의 고양이와 어딘선가 만났던 고양이를 떠올린다. 고양이와 함께여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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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손님 (반양장)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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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읽다가 덮어두었다. 열정이 시작되기 전까지 갈망이 시작될 무렵에 도통 집중할 수 없었다.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고 다시 집어들었다. 역시 뜨거운 계절에 어울 리는 책이었다. 온통 여름인 것만 같은 그 열정과 갈망에 딱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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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들이 많다. 사춘기의 온갖 갈등과 치솟는 갈망을 그려낸 아름다운 문장들, 이런 지극히 감정적인 문장들을 만나는 것은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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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우리가 놓지 못한 것. 모든 것을 뒤로하고라도 원했던 것. 무엇보다 간절했던 것. 그것이 한 때의 들뜬 열정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지나고나면 후회만 남을 어리석은 마음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 때 그 마음이 고작 그 때로 지나가버리는 걸까? 정말 후회만 남게 될까? 어차피 한 때의 일에 불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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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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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말과 글과 생각은 늘 납득이 가능했다. 그것이 내 것과 꼭 같지 않아도 일정부분 수긍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흥미로웠다. 삶이든 죽음이든 사랑이든 세상이든 간에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그런 것도 가능하지라고 여겨졌다. 생각을 거듭하다가 마주하는 주관적인 결론이 그저 글이 아닌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다. 그래서 늘 기대하고 늘 만족한다. 요 몇 년 사이 가장 마음을 움직인 작가라면 단연 줄리언 반스였다. 뒤늦게나마 그를 만난 것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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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 너무 많은 말과 글과 생각과 이야기가 있다. 그것 모두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서 인정하고 말 것도 없다. 그저 그런 사랑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무엇이 사랑이고 아닌가에 대해 과연 어떤 것이 사랑인가에 대해 진정한 혹은 지나치게 가벼운 사랑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고 만다.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이 있는 걸까라고 그것이 과연 사랑이었을까를 생각하다보면 끝없는 굴레에 갇힌 기분이 되고 만다. 이런 사랑도 저런 사랑도 있다. 때론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망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한다. 그 무수한 사랑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허세를 떨 수야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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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형태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쿠키틀이 떠오른다. 엇비슷한 쿠키틀로 찍어내도 조금씩 다르다. 한 점의 오차없이 꼭같은 모양으로 찍어지진 않는다. 대충 보면 다 거기서 거기지만 일단 찍는 과정에서부터 조금씩 달라진다. 분명 같은 쿠키틀로 찍었는데도 말이다. 거기에 구우면서 또 달라지고 판에서 떼내면서 또 달라지고 장식하는 데서 또 달라진다. 무한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두 하트모양 쿠키인 것이다. 그 하트모양쿠키에 돌이 들어가거나 머리카락이 들어가거나 실수로 녹지 않은 설탕이나 소금이 잔뜩 들어갔을 수도 있다. 모두 가능성의 범주에 있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쿠키가 있을까. 쿠키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다고 쿠키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직 쿠키를 맛볼 수 없는 이가 나지 않은 영유아는 내멋대로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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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연애의 기억과는 그 비율이 다르다. 우리는 보통 연애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긴장과 설렘이나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잔인하거나 슬픈 연애의 과정과 연애가 끝난 직 후의 절절한 아픔에 대해 기억한다. 연애의 시작과 그 과정과 이별 직 후에는 비친듯이 사랑에 대해 탐구하지만 그것이 모두 끝나고 기억이 순차적이지 않고 상대의 몸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이미 사랑이 아니고 연애도 아니어서 그저 과거의 작은 부분이 되고 만다.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 그건 사랑은 아니었다고 그런 연애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그 부분을 도려내고 싶다고 혹은 미련, 그리움 등으로 남는다. 어떻게든 그 기억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머문다. 현재의 내겐 작용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이야기나 언뜻 떠오른 생각 정도일 뿐.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록 나를 지배하고 뒤흔들고 가로막진 않는다. 아니 사실은 그런 연애도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연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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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가 이야기를 엮어내는 과정을 사랑하므로 다음 책도 줄리언 반스. 아껴둔(?) 책이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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