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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군함도 세트 - 전2권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작가가 이 작품을 오래 준비해온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여직 일제강점기 35년, 36년이라고 글로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읽다보니 말이 35,6년이지 그 전부터 삶과 생활을 야금야금 빼앗겨온 것을 알겠다.
그 생각은 미처 못했다.
어느날 천지가 개벽하듯 나라를 빼앗기고 그 뒤 뼈아픈 역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토지를 빼앗기고 일자릴 빼앗기고 이리저리 몰려온 것이다. 먹을 것을 잃고 가족을 잃고 세상천지 의지할 곳 없이 나라마저 잃은 그 마음을 그 삶들을 어찌 가늠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것을 어찌 기억해야 다시는 그 아픔이 우리에게 오지 않을까. 아픔.이라고 쉽게 말할수도 없는 그 삶들을 우리가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빼앗아간 그들이 대대손손 편한 것을 어찌 그냥 두고봐야만 한다는 말인가-
빼앗긴 들에 봄이 왔다고 생각했건만 그 봄이 제 봄이 아니고 꽃샘추위 여전한 채로 60년도 넘어간 것은 아닌가.
"헐벗고 서러운 거야 어디 사라지겠는가. 앙금처럼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았다가 때 없이 팔뚝처럼 솟아오르고 부옇게 들고일어나는 저 억울함을 1-219p"
기약없이 불쑥 솟는 고통과 절망을 분노와 억울함을 어찌 있겠는가. 분노로 견디고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와중에도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랑이라고 작가는 끝없이 말한다.
"봐라, 면면히 흘러가는 거. 세상이 어떻게 요동쳐도 아이들은 태어난다. 아이들은 태어나고 우리네 사는 일도 면면히 흘러간다. 1-264p"
"찻잔에는 푸릇한 바탕에 흐드러지게 핀 모란이 그려져 있었다. 무늬가 아름답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 그랬었나. 사람들은 찻잔에 모란무늬도 그리며 살았었나. 갑자기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1-463p"
금화의 인생이란 아름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처절하게 살아내는 것만이 전부였다. 사람 사는 것이 매일반일진데, 왜 이토록 처절해야 했을까.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이것이 희망이다. 어깨와 어깨를 부딪치며 손에 손을 움켜잡고 우리가 일어설 때, 이것이 희망이다. 우석은 생각했다. 이렇게 어깨동무를 하고 힘을 모아서 우리는 간다. 수레바퀴처럼 굴러간다. 젊은 조선의 아들들, 푸른 수레바퀴가 되어 우리는 간다. 2-344p"
"산다는 것의 의미도, 믿음도, 가치도 다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그 마지막 그루터기, 그 사랑. 그것이 남아 있기에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제 나는 그 소중함을 안다.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사이의 사랑이라는 것을. 사람과 사랑이다. 이제 안다. 마지막까지 기대고 부둥켜안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며, 사람 사이의 사랑이다. 2-416p"
인간다움을 놓을 수 없어 끝없이 괴롭던 지상은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자기를 살 게 하는, 누구를 살리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 사이의 사랑임을 작가는 지상의 입을 통해 전하는 것이 아닐까.
"오세요. 당신이 오실 때는 제가 기다리는 때입니다. 제가 기다리기에 당신은 오셔야 합니다. 2-459"
서형이 그토록 기다린 것은 지상이었나. 들의 봄이었나. 빼앗긴 나라였나.
작가는 끝없는 고통과 절망을 말한다. 아니 그것은 작가의 말이 아닌 그 시대를 견뎌낸 모두의 현실일 것이다.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 의탁한 지상의 아버지도, 어쩌다보니 친일파의 자식이 된 지상과 우석도, 자식이 독립군이 되었다는 앓아눕는 서형의 어머니도,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 자박거리며 뛸 때까지 지상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서형도, 행동하고 움직이며 바꾸려는 우석도, 사랑을 너무 늦게 만나 내어줄 것이 하나 없는 금화도, 군함도에서 도망친 지상이나 카메가제 특공대로 나간 아들이나 같다는 에가미 노인도, 군수 개발을 하면서 그래도 전쟁은 아니라고 이래서는 안된다는 나까다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 누가있을까. 대체 그들을 그처럼 아프게 한 이가 누구란 말인가. 그토록 사람들을 처참하게 몰아간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역사를 특히 과거를 파헤치는 글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감정적이어서도 안되고 너무 적나라해서도 안되지만 그 당시를 절절하게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작가는 사건과 상황을 전달하면서도 그 속의 삶을 얘기하고 있다. 그들 모두 각자의 삶, 그 모두가 소중하고 그 모두를 품어안는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잊고 잃은 역사의 현장 뿐이 아니라 그 속의 사람들이 아닐까.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그 절망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낸 사람들을 기억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를 살아낼 우리를 위해서도 잊지 않고 기억해야한다. 전쟁이 준 참상과 무수한 죽음과 절망을 잊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