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여인
미시마 유키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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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 놀랄 만큼 명료한 윤곽을 띠었다. 이 가을의 밝은 햇빛 이상으로 잔혹한 것은 없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냄새와 색채가 흩날렸다. 굶주린 환자처럼 그녀의 감정은 그저 쉴 새 없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137p

-이상한 일이었다. 세쓰코가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하는 것, 자신을 분석하는 것, 이런 것은 모두 필요에서 생겨난다. 세쓰코는 자신이 행복한 종족에 속한다는, 타고난 자신감을 상실해 버렸다. 139p

이름은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작가지만 전혀 모른다. 두께가 적절해서 골랐는데, 어려울 것 없고 복잡할 것 없는 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탐미주의'적인 성향은 나완 잘 맞지 않는다. 내 지나치게 확고하고 극단적인 도덕관은 그 탐미주의가 핑계로 다가온다. 내 도덕관은 타인에게 보이지는 것에 의한 것이 아닌 자의적인 기준이라 더욱 까다롭고 엄격할지도 모르겠다. 도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간에게 일탈은 필요하고 어떤 순간이 어떻게 다가오는가에 대해 불가항력의 순간들이 있겠지만. 많은 순간에서 그것에 반하는 행위나 생각이 나를 괴롭혔던 것만은 분명하다.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위한 까다로운 기준이 작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의 탐미주의는 일정 이상을 넘어가면 내겐 징징거림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은 범위 안에 있지만, 약간의 인내가 필요했다. 스스로에게 몹시 관대하고 그 이상으로 아름답게 포장하고 치장해서 역겨운 상황에 숭고한 태도를 가장하는 것은- 견딜 수 없다. 하지만 문학에 그런 잣대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내 모든 까다로움에 대해 정리하고 기준을 달리할 필요성을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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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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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책을 3권 읽었다. 고작 3권인데도 나는 줄리언 반스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에세이를 가장 먼저 읽었고, 시간을 두고 2권의 소설을 읽었다. 그 3권 모두 밑줄이 넘쳐난다. 기억하고 싶은, 다시 읽고 싶은 문장이 많다. 그보다 앞서 작가의 스스로에 대한 사회에 대한 시선이 맘에 든다. 자기 반성이 있다. 꽤 많은 나이에도 그저 그렇게 흘러간 것을 당연시 하지 않는다. 자기가 이뤄낸 것에 대해, 살아온 삶에 대해, 지나간 역사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이들고 싶다. 조금은 고집쟁이지만 타인의 생각에도 오호, 그럴수 있군.이라는 태도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은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 내 기억에는 어떤 오류가 있을까. 그것이 혹 부지불식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내 기억은 내게 관대하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일단 과거의 상처에 대한 원망은 얼마간 지웠지만 잔존하는 갈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용서한 적도 제대로 용서받은 적도 없다. 그대로도 나쁘지 않다 여겼지만 그것으로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두렵고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 한 때의 치기어린 지성은 나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을 공격하고 갉아먹는다. 그 모든 것이 오해 혹은 실수 였대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과거는 두렵고 미래는 불안하다. 하지만 현재는 개선의 여지가 있고 충분히 변화가 가능하다. 되돌릴 수 없다면 지금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자. 열심히, 최선을 다해!

- 책을 읽고 나니 영화포스터가 조금 불편해졌다. 하지만 기대를 접을 순 없다. 궁금하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했을지, 어떻게 그려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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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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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보다 죽음에 대한 열정이 많았던 사람이 응급의학과에서 만나는 무수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 우리는 종종 혼동한다. 의사라는 직업군을 단순히 '의사'라고만 생각하곤 한다. 그 '의사'의 이미지는 흰 가운을 입고 나이에 비해 높은 급여를 받는 엘리트가 지배적이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순간, 혹은 절실한 순간 그들이 내 목숨에 깊게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한다. 그 상황을 직접 겪지 않고서는 전혀 와닿지 않는다. 드라마, 영화, 소설 속에나 등장하는 가상의 세계의 반신같은 이미지는 현실에서 마주하지 못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만 그들의 일이 생명과 작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 전엔 전혀 짐작도 가늠도 불가능하다.
* 죽음을 자주 목도하거나, 죽음과 직면하거나, 죽음을 갈망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죽음의 무게가 있다. 직접 겪고 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을 쉽게 뱉을 수 없다. 삶이 쉽지 않은 것과 같은 크기로 죽음 역시 쉽지 않다. 그것이 쉬울 거라는 생각은 무지에서 오는 착각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벗어나고픈 고통 역시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선 안된다.
* 삶에 대한 희망과 긍정의 언어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어디에나 낮게 깔려 있다. 하지만 존재하는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는 죽음 뒤를 단언해선 안된다. 그것이 휴식이나 무.의 상태일거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는가.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도 미지의 부분이 분명하고 그것을 속단해선 안된다. 삶에 대해서는 인류의 기록과 정보가 수없이 제공되지만 죽음과 그 후에 대해서는 어떤 정확한 사실도 정보도 없다. 난 그 뒤가 두렵다. 영혼, 천국, 귀신, 환생 그 모든 것에 대해 두렵다. 혹 다 없다해도 심장과 뇌가 정지한 다음에도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 것이 삶보다 끔찍하고 무한하다면?
* 생명이 귀하다는 의미는 그저 삶에 삶과 목숨에 집착한다는 뜻도 아니고 사랑과 행복의 결정체 어쩌고 하는 아름다운 뜻도 아니고 그저 문자 그대로. 산 목숨은 모두 귀하다.는 의미다. 다른 이유가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이 귀하다는 의미다. 그것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이라는 의미다. 언제쯤 명확하고 확고하게 인지할 수 있을까?
* 조금은 알겠다. 이것저것 아주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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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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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담백한 문체. 수용소에서 묵묵히 살아내고 사소한 것에 만족하는 슈호프의 하루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적나라하지만 잔인하고 자극적인 묘사가 아닌 사실적이고 담백한 묘사가 현실감을 준다.
사실 그 무엇보다 슈호프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저 살아내고 제 몫을 하고 일정 범위 안에서 이득을 취하기도 하고 친절을 베풀기도 하고 잔머릴 굴리기도 한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상황에서 너무도 인간적이고 너무도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끼니와 무사한 하루가 가장 중요한 슈호프에게도 나름의 원칙이 있다. 그에게도 작은 기쁨과 만족이 있다.
수용소가 아닌 현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선택의 순간들이 있지만 완전한 자유란 불가능하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외면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각자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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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살아남기 -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전쟁의 과학
메리 로취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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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전혀 관심이 없는 소재라서 문외한에 가깝다. 하지만 무기와 과학에 관심이 많은 아들이 자꾸 요구한다. 이 무기와 저 무기의 성능과 특이점, 일상 속에 숨겨진 과학들에 대해 대화하고 싶어한다. 매번 듣기만 하고 엄마는 그 부분에 대해 잘 몰라서.하며 대화를 마친다. 자, 아들과 대화할 너무도 적합한 책이 나타났다. 너무 어려운 과학도 아니고 문외한인 나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전혀 모르고 관심없던 분야, 전쟁 속에서 숨겨진 과학이랄까?
- 전쟁이 가져온 엄청난 과학의 발달을 목도한다. 그 화려한 성장이 엄청난 비극과 함께 했다는 것에 그저 찬탄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매번 외면하고 말았다. 과학의 발달이 인간에게 과연 이로운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전쟁과학의 어두운 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생명을 빼앗고 도시를 파괴하는 것만이 전쟁과학이라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으며 약간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 보호와 안전을 위한 과학, 물리적인 전투 외에 효과적으로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과학, 전쟁에 참여하는 많은 군인들의 인권과 생명 등 많은 드러나지 않은 과학들이 작가 특유의 유머로 씌여져 있다. 새로운 정보들을 얻으며 키득거릴 수 있는 책이라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드러나는 것보다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발상은 몹시 엉뚱하게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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