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감정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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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도 스스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자신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마주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된다.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대상화해서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없고, 타인에게 역시 마찬가지다.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일정 기준이 필요하고 대입할 수 있는 매뉴얼이 필요한 것이다. 말하자면 '감정 사용 설명서'랄까?
- 내용이 어렵진 않다. 아주 쉬운 말로 씌여 있어서 누구나 문장 자체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한 번 읽는 걸로는 부족하다. 수차례 읽고 메모하고 적용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이 책의 방법들이 완전하고 완벽해서 모든 감정과 관계를 해결해주리라 생각진 않는다. 다만 시도해볼 만 하고, 기대해볼 만 하다.
- 이 책에 책갈피와 메모가 많아지고 어느날 어느정도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좀 더 편안한 나 자신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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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 잔의 진실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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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불편하다. 그 이유는 소재가 자극적이고 묘사가 적나라하고 현실이 참담해서가 아니라. 애정이 없어서이다. 역자는 류의 글이 음지의 것을 양지로 끄집어 낸다고 했는데, 나는 반대라 생각한다. 음지의 것을 더 음지로 더 어둡고 더 나쁘고 더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감할 수 없다. 그런 태도는 거의 집착에 가깝에 글에서 드러난다. 물론 그의 글을 좋아하지 않고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다.
그의 글은 불안을 자극한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불안이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불안과 공포다. 인간에겐 자신에 대한 공포가 본질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고독이라거나 인정욕구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 공포는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세우고 벼랑으로 내몬다. 그 안의 만족이 있다면 그것은 특별하고픈 욕구의 과잉에서 오는 기만이 아닐까? 그 공포를 지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감이다. 제각각의 사연과 모양새로 살아가지만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공감대. 그것만이 인간의 어두운 공포를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류는 상처가 많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모르고 그 상처를 더욱 자극해 더 큰 상처를 내며 그 상처를 훈장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건실하고 묵묵하게 살아가며 스스로 공감할 수 없는 극단의 세계에 매료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2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류의 글은 불편하고 폭력적이다. 다만 그 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그 때는 작가가 무서웠고 지금은 작가가 안쓰럽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 마지막 이야기에서야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마무리가 편안해서 그나마 편안해졌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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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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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작가의 글을 참 좋아했다. 현실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를 자주 다루는 작가의 글을 꽤 많이 읽었고 책 역시 꽤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 '온다 리쿠'식이 재미있지만 약간 지겹게 다가와서( 그럴 것이 한 작가의 글을 2-3년간 한 20권 이상 읽었으니 질릴만도하다. ) 멈춘 것도 꽤 되었다. 그 뒤로 어쩌다 한 번 만나는데 올해는 두번짼가?
- 129p를 읽으며 응? 했다. 소설이니까 굳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아도 되지만, '국가사업으로 예술 분야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는 한국'이라는 문장이 불편했다. 국가사업으로 예술 분야에 투자하다니! 대체 무슨 소린가- 한국은 예술 분야에 투자하고 성장과 발전을 도모한 일이 없다. 국가에서 투자하는 예술 분야란 잘해야 대중문화를 이용한 외화벌이 수준의 조악한 한류 만들기 정도다. 아니 사실은 그것도 국가사업 투자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이거 이런식으로 쓰시면 안되는 거 아닌가요!!싶어졌다.
- 클래식, 정확히는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그리고 콩쿨에 대한 글이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다. 언젠가 그래도 음악에 대해 잘난체 하기는 클래식이 제일 쉽다.고 말한 분이 있었다. 일단 클래식은 계속 생산되는 현재의 음악이 아닌 과거의 음악이라 연대순으로 작곡가에 대해 공부하고 거기에 연주자를 대입하면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가 적으니 다른 장르에 비해 공부하기가 수월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곡, 저곡의 이름도 모르고 작곡가도 누가누군지 모르고 대표작따위 모르고 유명한 연주자도 모른다. 실로 문외한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한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말해 공감각에 대한 호기심이다. 소리를 글로 풀어내는 부분들이 자극하는 상상력. 시각 뿐만이 아닌 청각에 대한 상상력. 그 부분이 즐겁다. 작가의 표현력에 따라 상상력의 크기가 달라진다. 이 글에서 작가는 내가 알던 것과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아, 온다 리쿠가 이런 글도 쓰는 구나. 이런 매력도 있었구나.
- 일본의 만화 등에서 자주 만나는 '아니, 이것은 흡사 프랑스 남부의 여름 바람에서 느껴지는-', '아, 어머니께 혼나고 난 후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양갱 속에 스며있는 달콤한 위로의-' 식의 과장된 묘사를 이 글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유치하다기보다는 작가의 선택이라 여겨졌다. 등장한 곡에 대한 독자와의 교감이나 나처럼 클래식 문외한에게 곡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표현으로 선택한 방법일 것이다. 아주 약간의 민망함은 있었지만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생각한다.
- 단순요약, 재미있었다. 꽤 두툼한 글을 낮동안 2/3 읽고 밤에 기어이 마저 읽고 자야하는 즐거움. 뒷얘기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어는 아니지만 작가가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는 건지를 알고 싶어지는 기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일단 바르토크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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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 (마음산책X) 개봉열독 X시리즈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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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60대에 자살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죽음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직 내가 삶에 더 가깝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노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싶다는 욕구와 떠나고 싶다는 소망을 실천한 사람들에게 유독 끌리는 지도 모르겠다. 버지니아 울프와 더불어 로맹 가리 역시. 그렇다해서 그들의 죽음을 동경하지는 않는다. 살아낸 삶을 동경할 뿐.
-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로 나온 글들을 몇 읽었고 좋아하는데 이 글은 글 위에 뭔가 덧 씌워진 것 같다. 이제까지 읽어온 작가의 어떤 글보다 적나라하고 격정적이고 비판적이며 고백적이다. 그 만큼의 열정을 품고 살아냈을 그의 60년이 그에겐 몇 백년 같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사로잡는 것과 사로잡히는 것, 현실과 상상.에 대해 까닭없이 괴로운 순간들이 있다.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줄 수가 없고 끝없이 갈등하고 만다. 굳건히 한 손을 잡으려면 더없는 의지와 서러운 포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 글에서 시각예술의 모든 장르를 마주하는 것 같다. 과장된 연극과 장대한 오페라와 서글픈 서커스 찰나의 영화와 지속되는 사진들, 그 모든 것들이 문장 위에서 살아난다. 지독한 자극으로 다가와 머릿 속의 모든 것을 몰아낸다.
- 이 책을 읽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얼마쯤 읽다가 책을 놓고 다른 책들을 집어 들어야만 했다. 가득한 이미지와 소리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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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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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감정에 일일이 어떤 표식을 부착할 수 있다면 누군가는 그 순간의 그의 감정을 '너무 일찍 도착한 향수'라 명명했을 것이다. 51p

최근 애청하던 알쓸신잡에서 김영하가 작가는 이름을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이 그의 수첩만큼이나 인상적이었는데, 이 문장에서 작가가 이름을 붙이는 장면을 목격한 기분이다. 작가가 글을 헌정하는 메세지가 몹시 다정하게 다가온다. 누구에게- 라는 단순한 몇 음절에 애정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문득 아내에게 이 글을 헌정하기엔 이야기 속의 마리가 부당해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글을 헌정하고 싶다는 마음은 없다. 못내 미안해질 것만 같다. 쓰지도 않은 글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가당치도 않다.

이야기 속의 고작 하루는 얼마나 치열하고 파란만장하던지 세 가족 모두 각자의 엄청난 고뇌와 갈등을 뒤로하고 다음날 아침. 가족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그것이 전과 같을 수는 없을텐데 각자 서로를 억측하고 비난하고 용서하고 위로하며 전과 비슷하게라도 돌아갈 수 있을까?

이야기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얼만큼은 모두 엄청난 하루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는 아침을 어찌 '장하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간지러워도 '장하다'는 칭찬을 자신에게 가족에게 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면 좋겠다. 내가 가장 못하는 바로 그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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