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맞지 않는 아르테 미스터리 18
구로사와 이즈미 지음, 현숙형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책이다. 읽으면서 답답하고 슬픈 느낌이 꽤 많이 들었는데, 무엇보다도 이 책이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은 말하자면 디스토피아적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소수의 사람들이 기이한 모습으로 변하는 세상이 무대이다. 특히 청년층 그 중에서도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주로 발병하는데, 대부분 곤충/동물과 사람을 섞어놓은 것 같은 괴이한 모습으로 변한다. 세상은 여기에 '이형성 변이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사회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한다. 즉 이형성 변이 증후군에 걸린 '생명체'는 더이상 사람이 아니며, 실수든 고의든 죽여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미하루의 아들도 어느날 갑자기 애벌레를 닮은 모습으로 변해버린다. 그때부터 미하루가 겪게되는 이야기가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이때 책에서 보여주는 '이형성 변이 증후군'이 비유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너무 스포라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음). 혹여 유추가 잘 안되더라도 에필로그쯤 가면 친절하게 이해를 도와주는 내용들이 나오니 걱정말고 쭉 읽으면 된다. 다만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그 누구 한 명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벌레가 되어버린 유이치도, 유이치의 부모도, 유이치가 살고 있는 사회까지도 유이치가 '이형성 변이 증후군'에 걸리게 된 원인 제공자이다.


사실 결말이 나에게는 찝찝했는데(ㅋㅋㅋㅋ 이건 해피엔딩도 아니고 새드엔딩도 아니야.....!), 나름 현실적이면서도 클리셰를 격파하는(?!) 결말이었던 것 같다. 책 마지막 장의 두 문단이 주는 여운이 길다. 책 한권 전체의 내용이 함축되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분명히 말해주는 잘 쓰여진 마무리인 것 같다.


+이렇게 말할 것까지는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삽화를 안 실어 주셔서 을매나 감사한지(ㅋㅋㅋㅋ.........)


+최대한 스포가 될만한 부분은 빼고 정리했음. 그래서 남기고 싶었던 부분 중 빠진게 많음 주의



[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

.



괴이한 형체를 보고 느끼는 공포감만이 아니라, 절망으로 가득 차 울리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그것’이 변형되어버린 아들의 모습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12

몇 해 전부터 난데없이 발생하기 시작한 기이한 병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바뀌어버리는 병이다.
이 병의 사례가 처음 보고된 것은 간토 지방의 어느 지역이었다. 그러나 사태는 눈 깜짝할 새에 각지로 퍼져나가, 금세 전국 곳곳에서 사례가 보고되기에 이르렀다.
인간이 다른 형태로 변이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런 악몽 같은 일이 전역에서 실제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전설이라느니 비현실적이라느니 그런 태평한 소리는 늘어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 P15

"잘 들어. 사회에 나가면 마음이 맞지 않는 녀석들이 널려 있어. 학교는 인간관계를 배우는 곳이기도 하단 말이야. 이러고도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근성도 없이, 사내자식이. 정신 좀 차려!" - P26

"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건 찬스야, 여보. 이제 드디어 저 쓰레기를 합법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라고." - P37

미하루는 지금까지 이형성 변이 증후군에 관한 정보를 계속 외면해왔다. TV에서 특집 방송을 했던 때도, 바로 채널을 돌려서 다른 방송을 보려고 했었다. 그런 식으로 멀리하며 우리 집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 P42

생각해보면 나는 늘 속박되어 있었다. 자유가 없었다. 괴로워도 힘들어도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몸 상태가 좀 좋지 않아 늘 하던 일을 못하게 되면 바로 질책을 받았다.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저것 때문에. - P80

사람이 나이와 함께 둥글어진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 말 그대로다. 나이가 들면서 신기하게도 관용적이 된다. 나쁘게 말하면 포기고, 좋게 말하면 깨달음이다.
미하루도 어렸을 때는 온갖 세상사에 분노했었다. 그런 경향이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는 때가 10대일 것이다. 세상의 모호함을 허용하지 못하고, 예리한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 주변이나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만다. 그렇게 충돌을 계속하면서 어느정도 가시가 닳고 온화해지는 것이다. - P127

미하루는 나날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형이 된 유이치의 겉모습에도 익숙해졌다. 혐오감이 완전히 불식된 것이냐고 하면 그건 별개의 문제지만, 미하루가 생활하는 데 유이치가 이형이라는 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이치는? - P197

‘내 인생은 어디에서부터 발을 잘못 내디딘 것일까?’
유이치가 변이되고부터? 유이치가 집에서 두문불출하기 시작하고부터? 유이치를 낳고부터? 이사오와 결혼하고부터? 이사오와 만나고서부터? 애초에 취직을 했던 시점부터? 대학에 가지 않고 고졸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
아니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 P217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 완전히 변해버린 아들을, 사람이 아니라 그 겉모습대로 다른 생명체로 다루었던 사실.
사람이 하는 말 같은 건 이해하지 못할 테지. 사람의 사고력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을 테지. 그렇게 멋대로 추측하고 아예 유이치의 속마음을 살피는 걸 포기하고 있었던 사실.
아니, 그것은 과연, 유이치가 이형이 되고 나서의 일이었을까? - P260

미하루가 지금까지 믿어온 ‘보통 사람들’이라든가 ‘모두’라는 뭔가 큰 묶음에서, 틀에서, 분리되어버리는 듯한 감각. 그것이 너무나도 두려운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보조를 맞춰서, 대다수로서 융화되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는 건, 목장에서 무리 지어 있는 양들과 비슷한 심리일까?
특별한 행복도 불행도 없는 생활. 모난 정이라며 두들겨 맞지 않는 생활. 무엇인가에 의해 겨냥당하지 않는 생활. - P263

개선되고 있는 상황, 또 다른 한편에는 변함없이 비참한 상황. 현실은 빛과 어둠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고, 무엇을 바랄 것인가.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현실은 얼마든지 변용된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움켜쥘 것인가. 그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는 끊임없이 탄생하고, 저마다의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의 SF #2
정세랑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서평을 올리고 나면 서평단에서 짤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ㅋㅋㅋㅋㅋㅋ.... 솔직하게 쓰겠습니다. 약속한 서평 업로드 기간을 어기면서까지 노력해서 읽은 책이기 때문에 꼭 남겨야겠어요(현재 기분 나쁘지 않음 주의)

 

사실 언젠가부터 잡지(특히 책과 관련된 잡지)를 안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다는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잡지(특히 책에 대한 거)라면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어도 아 이 책 너무 궁금하다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결국 그 책을 찾아보게 만드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친절하게 설명을 제공하는 일종의 책 소개 모음집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잡지들은 이미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타겟으로 잡고 있고 너 이거 기억하니? 이거 너무 좋았잖아하고 취향을 공유하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 같다.(그래서 몇 권 사보고 탈주한 잡지가 바로....) 물론 잡지마다 고유한 색깔을 지니고 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새로운 독자층이 유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책을 보내주신 출판사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읽기 어려웠다. 인터뷰 하나를 읽으려고 해도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보를 찾아야 이해가 되었다(내 독해력의 문제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작품에 대한 소개나 설명이 생략된 채로 작품을 논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나 이만큼 책 많이 읽었다!’하고 자랑하는 내용이 되지 않으려면 좀 더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도 중간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 소설은 꽤 즐겁게 읽었다. 가장 재밌었던 것은 #문이소 작가님읜 #이토록좋은날_오늘의주인공은 이었다. 초단편소설이지만 글 구성도 좋았고 마무리도 시원했다. 이 잡지를 통틀어 가장 유쾌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소설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ㅋㅋㅋㅋㅋㅋㅋ..... 이럴거면 읽지 마 그냥...) 요즘 시국 때문인지 아니면 SF의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는 건지 대부분의 소설이 약간 디스토피아적이었다는 점..... 안그래도 요즘 마음이 우중충한데 정말 견디면서 읽었다. 행복한 세상에서 사는 SF는 없는거니....?

 

[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지 않을 이야기 - 팬데믹 테마 소설집 아르테 S 7
조수경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잘 쓰여진 글이라 더 처참하다. ‘재난’을 주제로 하는 4개의 단편 소설이고, 전염병과 성폭력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다. 읽는 내내 울화가 치밀고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현재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이고, 해결되지도 않은 상황이고,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마음아프고 짜증이 난다.

특히 두 번째 이야기인 김유담 작가의 <특별재난지역>은 정말 읽으면서 엉엉 울고 싶었다. 진짜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화자인 일남은 직접적으로는 사건의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일남의 아버지, 남편, 자식들 그리고 손녀까지 모두 끔직한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그 가운데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일남의 모습이 절절하다. 이 이야기는 ‘힘내라!’라고 쓰여진 카드가 팔랑팔랑 떨어지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된다. 이미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는 회복이 불가능한 정도인데, 어떠한 이해도 없이 가볍게 ‘힘내라’고 하는 건 또 얼마나 폭력적이고 깊이없는 처사인지.

그렇지만, 이렇게 끔찍하고 진저리나는 이야기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그런 일이 있었대”하고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길 바란다.

+ 사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미성년/청소년 혹은 지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에 대한 일인데, 정말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에 대한 혐오만 쌓이는 것 같다.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저버리는 일이다. 그러데 심지어 N번방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생명체(욕을 쓰고 싶었으나 참습니다. 숨은 쉴테니 아직 생명체는 맞겠죠 뭐)들의 사건도 이렇게 해결이 안되는데, 내가 보고 있는 사건들처럼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무수한 일들에는 무슨 희망이 있나 싶다.

[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

최근에 깨달은 나의 가장 큰 장점은 질기다는 거였다. 강하기보다는 질긴 것. 어쩌면 강한 것과 질긴 것 중 살아가는 데 더 필요한 건 질긴 것인지도 몰랐다. - P20

"엄마, 아들한테는 이런 거 대놓고 해달라고 못하죠? 왜 마스크 구해 드리는 건 딸이니 며느리여야 해요?"
"상진이 갸는 지금 바쁘다 아이가, 당장 시험이 코 앞인데."
상희가 쿄웃음을 쳤다. - P64

휴대전화를 쥔 일남의 손이 덜덜 떨렸다 .보이스피싱으로 돈 보내달라 카는 사기꾼들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열 살짜리 가스나 알몸 사진이 와 필요하다 카노, 이거는 듣도 보도 못한 기라. 숭악한 놈들, 고얀 놈들. - P88

"근데 엄마가요. 이 사진 우리끼리 비밀이라고 했는데, 엄마 말 안 들으면 학교 친구들한테도 사진 다 보이줄 꺼라고. 우리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다고 했어요. 우리 집 주소도 다 알고 있다 했는데." - P88

아니, 일남은 처절하게 버려지고 고립된 기분이었다. 일남은 한 팔로 무릎 위에 올려진 부친의 유골함을 세게 끌어안았고, 나머지 팔로는 곤하게 잠든 가영의 어깨를 감쌌다. - P100

"예진이는...... 그런 일 겪으면 안 돼."
신 선생님도 그런 일 겪어선 안 되는 거였어요.
예진이는 안 되지만 신 선생님은 겪어도 괜찮은, 그런 일이 아니었다고요. - P143

(해설) 확진자 동선이 공개되며 개인 정보가 공개되고 그로 인해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의 인권이 무책임하고 무차별적인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전염 사회를 지나며 우리가 보았던, 기억해야 할 폭력이 아니었던가. 집단 방역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더라도 공통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안전을 위협받아도 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파운데이션으로 잠시 덮어둔 슬픈 침묵을 기억해야 한다. - P198

(해설)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대상인 노인과 디지털 성착취에 가장 취약한 대상인 미성년 여아들을 함께 배치하는 작가의 의도를 우리는 피할 길이 없다. 일남의 아버지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의 ‘죽음’고 비교할 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은 조금도 가볍지 않다. 그 역시 죽음이라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이러스의 빠른 확산세와 함께 운명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되던 그때, 특정되지 않은 디지털 재난 공간에서 수많은 여학생들의 인격도 죽어갔다. 코로나19와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폭력이다. - P2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즈우노메 인형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5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뒷 얘기가 궁금해서 호로록 금방 다 읽어버렸다. 특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잘 살아있고, 무엇보다도 작가가 꼼꼼하게 심어놓은 떡밥이 잘 회수되어서 좋았다(몇 개는 처음부터 눈치챘는데, 그게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서술트릭’도 하나 숨겨져 있었는데(못알아챔), 와 정말 내가 이렇게 편견을 가진 사람이었나 싶어서 반성했다.

이 책은 도시 괴담, 그러니까 ‘이 원고를 읽은 사람은 곧 죽는다’는 괴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원고를 읽으면 검은 머리에 후리소데를 입은 즈우노메 인형이 보이기 시작하고 결국 그 인형에 의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형이 점점 목을 조여오는데 증맬루 미칠 것 같음.

사실 이 책에서 악인의 역할을 맡는 사람, 즉 즈우노메 인형의 발단이 되는 사람이 정해져있기는 하다. 그걸 파헤쳐나가는 것이 책의 주요 골자인데, 좀 찜찜한 감이 없지 않다. 마치 ‘조커’처럼 그 나름의 사정과 안타까운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재 시점에서도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책에서는 행복한 것처럼 묘사되지만 본인의 착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약간 B형 성격장애의 면모도 보이는 것 같고.... 주변 사람들은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데 본인만 알아채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결말도 참... 마음이 무거웠다.

+ 앞으로 읽으실 분들을 위해 최대한 스포가 안될만한 내용만 옮겨 적었다. 공포물 좋아하시는 분들 완전 추천(저는 전작인 보기왕도 구입해 볼 예정임)

+ 딴소리긴 한데, 공포/호러 분야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 때문에 무서운 거(예를 들면 ‘싸이코’나 ‘쏘우’) 혹은 귀신 때문에 무서운거(‘링’이나 ‘컨저링’ 같은). 개인적으로 전자가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데, 귀신이나 악령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악한 사람은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근데 솔직히 어젯밤에 침대에 누웠을 때 즈노우메 인형이 생각났다(저는 심각한 TJ형 인간인간이라 인형이 나타나면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를 먼저 생각했음). 그리고 꿈에서 쫒겨다녔다. 진짜 엄청 오랜만에 꿈 꾼건데 매---우 피곤했음😨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처음에는 멀리서 보였다. 지금은 침대 옆에 있다.
오도카니 서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써도 알 수 있다. 날 리 없는 기척이 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는데.......
머릿속에서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새 시야 한쪽 구석에 있던 그 모습이. 녀석의 모습이.
그 애한테서 들은 모습과 똑같다. 크기는 고양이만 할까? 검은색 후리소데를 입고 있다. 단발머리에 손을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고 있다.
그리고 얼굴은 새빨간....... - P11

‘저주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거야.’
하필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렸다. 망상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듣게 된다.
‘우리 눈에는 안 보여. 그래서 골치 아프지.’ - P13

"후지마 눈에는 안 보였어?"
"그래, 안 보였어. 무슨 말이야?" - P132

만에 하나라도 저주를 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가. 그렇다면 이 원고를 쓴 의도는 악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살의다. 사람을 살해할 생각으로 원고를 보낸 것이다. - P319

그들이 버티고 있으면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일하는 시간을. 유타와 놀아주는 시간을. 남편과 보내는 시간을.
비참했던 그 시절과 정반대인 지금의 생활이 위태로워진다.
두 사람이 죽는 것은 안됐지만 나하곤 관계없는 일이다. - P3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에세이를 읽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특히 “--해도 괜찮아같은 소위 말하는 <힐링 에세이>들이 인기를 얻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는 1권도 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런 책들이 잘못한건 없겠지만, 매번 똑같은 말을 하는 것 같고 심지어 별로 깊이있는 말이 아니게 느껴졌다.(적어도 내가 만난 책들은 그랬다. 그래서 한 두권? 까지는 재밌게 읽었는데 그 뒤로는...) 더군다나 밑도 끝도 없이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라>고 하는 것 같아서 나한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

그래서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는 사실 약간 절망했다(진짜로...). 아니 왜 첫 책부터 에세이야... 제목이 <, 이게 뭐라고>이니 분명 작가가 책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나는 이만큼 많은 책을 읽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는(아닙니다) 책일 줄 알았다. 그래서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다. 근데 보면 볼수록 이 작가님 내 스타일이시네.

.

이 책은 읽고 쓰는 사람인 작가 장강명이 팟캐스트를 진행할 때 겪었던 일들과 그때의 고민들을 이야기한다. 특히 본인의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팟캐스트 진행자로서 말하고 듣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문체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어서 좋았다..

.

가장 공감갔던 부분은 영상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나도 영상보다 글자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작가님과 비슷한 경험이기도 한데, 요즘은 여행 브이로그를 보면서 여행 계획을 짠다는 말에 진짜 엄청 놀란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도서관가서 여행 책자를 찾아보는 사람이다(나는 유튜브를 전혀 보지 않는데, 이걸 두고 늘그니라고 놀리는 친구도 있다). 영상은 나름대로 장점이 많지만 글자가 주는 매력을 따라오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만큼 시간을 들여서 내멋대로 상상하고 해석하는 것은 텍스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읽는 인간인 것이다.

.

한편 대들고 싶은 부분도 꽤 많았는데 가장 크게는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이 책에서 작가님은 읽고 쓰는 것과 말하고 듣는 것을 극단에 놓고 이야기한다. 근데 이게 둘로 나눠지는 개념은 아니지 않나? 차라리 4분면으로 나누어서 읽는 것과 쓰는 것을 한 축의 양 극단에,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다른 축의 양 극단에 놓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읽는 사람이라고 다 쓰는 사람인 것은 아니니까(나포함).

.

그리고 전자책에 대한 부분. 여기서 작가님은 전자책을 싫어하고 종이책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약간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표현했는데(p.109, “독서가들 중에는 손 끝에 닿는 책장의 느낌이니 종이 냄새니 하면서 종이책의 물성에 대한 애정을 호들갑스럽게 과시하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그게 이상한 자부심과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의심한다.), 아니 이거야말로 취향의 문제 아닌가?? 전자책은 뭔가 손에 들어오는 느낌이 아니라서 쓰기 불편하고 머리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논문도 다 뽑아서 보는 사람). 종이책을 넘기는 그 느낌이 좋은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인데... 아니 그리고 <리커버 에디션> 이런 것도 충분히 살만하지 않은가? 사고싶으면 사는거지. 좋은 책은 그만큼 판본별로 사고싶은데.

.

+ 여기서 작가가 “‘좋은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와 같은 주제를 놓고 대낮에 맨정신으로 지인과 토론할 일은 거의 없다”(p.97)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문득 약간 자부심이 생겼다. 왜냐면 내 주변의 사람들과는 이런 일들이 어렵지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건 약간 심리학과의 과특이기도 한데, 이 사람들은 진짜 수업 시작하기 전 잠깐의 시간에도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다. 이런 진지한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오고가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다들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고(그러니 심리학과에 왔겠지만) 대부분 못말리는 분석쟁이들이라 그런 것 같다.

.

.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줄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가끔 "책을 언제 어디서 읽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게 "물을 언제 어디서 마시느냐"는 질문처럼 들린다. 그냥 아무 데서나 수시로 읽는다. 팟캐스트 출연을 기다리며 스튜디오에서 읽기도 하고, 마산으로 내려가는 무궁화호 열차에서 읽기도 하고, 장례식장에서 문상객을 맞는 틈틈이 읽기도 한다. 물을 안 마시면 목이 마르고 책을 안 읽으면 마음이 허하다. 그리고 책 정도면 포터블한 물건 아닌가? - P21

나는 궁금하다. 왜 일곱 살짜리조차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그런 환상을 품는지. 왜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조차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어가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는지. 책, 그게 뭐라고? - P23

사람들은 긴 글을 읽기 싫어한다. ‘누가 요약 좀’이라거나 ‘너무 길어서 읽지 않았습니다’ 라는 댓글을 남긴다. 쓰는 인간들과 그들의 매체는 그렇게 점점 자리를 읽어간다.(중략)
말하기는 쓰기보다, 듣기는 읽기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다. 말하기와 듣기는 읽기와 쓰기보다 훨씬 더 오래된 행위다. 보다 원시적이고 동물적이다. 말하고 듣는 인간은 넓은 영역의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빠르게 대응한다. 말하고 듣는 인간은 반응한다.
- P40~41

읽기와 쓰기가 말하기와 듣기보다 우월하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읽기-쓰기와 말하기-듣기는 완전히 범주가 다른 활동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관심사나 특기도 그 둘 중 한쪽에 치우쳐 있다고 본다. 나로 말하자면 분명히 읽고 쓰는 쪽의 인간이다. 관심사도, 특기도.
- P130

나는 작가들이 오지 않는, 그래서 작가들이 방해할 수 없는, 순수한 독서 축제를 상상했다. (중략) 내 상상 속 책 축제는 한겨울에 일주일 동안 펼쳐진다. (중략) 일주일 동안 모든 참가자들에게는 소박하지만 멋진 숙소가 제공된다. 시설은 다 똑같다. 노약자와 가족을 위한 방이 조금 다를 뿐이다. 방을 배정할 때에는 지인들은 이웃하지 않게 두는 게 원칙이다. 방의 옷장에는 입을 옷가지들도 다 갖춰져 있는데 이용자의 옷 사이즈를 주최 측에서 미리 파악해 크기가 다 잘 맞는다. (중략) 참가자들은 축제 첫날 행사장에 들어갈 때 입구에서 돈과 휴태전화와 컴퓨터 기기를 모두 진행요원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제비 뽑기를 한다. 제비에는 책의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이 적혀 있다. 참가자들은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찾아 읽고, 등장인물을 자기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 P148~150

이렇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과연 있을까 싶은데, 아이슬란드가 그렇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에서는 TV 독서 프로그램이 황금 시간대에 편성되며, 1년 내내 이런저런 책 관련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아이슬란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책을 선물하는 전통이 있어서, 그 시즌마다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욜라보카플로드‘라고 부른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책 홍수‘라는 뜻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어떤 책을 선물할지를 놓고 뜨거운 토론을 벌인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판타지 소설처럼 들린다.
- P151

‘이거 진짜 재미없음. 완전 구림’이라는 한 줄짜리 감상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어떤 사람이 그런 한 줄 감상이라도 많이 올리면 그의 취향이 드러나고, 그렇게 되면 그의 한 줄짜리 감상은 취향이 겹치는 다름 사람에게 의미 있는 참고 사항이 된다. 취향이 정반대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유용한 지침이다. - P180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성적 분석보다는 감성적인 위로를 선호하는 정서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인들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데에도 서툰 것 같다고 말하면 너무 야박한 평가일까. 과거에는 에세이와 르포르타주 사이에 체험기, 수기같은 문학적 전통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흐릿해지는 듯하다. - P192

<당선, 합격, 계급>을 쓰느라 웹소설 작가들을 취재하면서 남성향 웹소설 독자들이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남자 주인공이 활약하는데 옆에서 설치지 말라는 거다. 그냥 주인공을 짝사랑하기만 하라는 거다. 완벽하고 무적이어야 할 우리의 남자 영웅이 한낱 여인한테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니까. ‘히전죽’이라는 웹소설 독자들 사이의 속어도 있다. ‘여성 캐릭터는 전체 이야기나 남자주인공한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히로인의 위치에 오르기 전에 죽입시다’라는 말을 줄인 거란다.
- P215~216

이후에 나온 얇은 국내 소설 단행본 시리즈는 ‘소장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표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때깔이 좋아야 한단다. 그렇게 앞은 점점 매끈해지고, 옆은 점점 날씬해진다. - P225

읽고 싶은 책들은 읽은 책보다 언제나 훨썬 더 빠르게 늘어간다. - P234

고전은 독자에게 얌전하게 교훈을 던져주지 않는다. 그들은 독자들이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시비를 건다. 자신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이 존재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맞쳐보라고 묻는다. 그것이 고전의 힘이다. - P2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