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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리바의 집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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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이었던 <즈우노메 인형>과는 다른 공포였다. 즈노우메 인형은 읽는 내내 고개를 돌리면 왠지 인형이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었는데, 이번 책인 <시시리바의 집>은 읽는 동안 마치 모래 함정에 점점 빠져들어가서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공포를 경험했다. 아찔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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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집안 곳곳 모래가 쌓여있는 기묘한 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의 주요한 화자는 요시자키 가호와 이가라시 데쓰야라는 인물인데, 요시자키 가호는 오랜만에 우연히 어린시절 친구였던 도시를 만나면서 이 집을 찾게 되는 인물이고, 이가라시 데쓰야는 어린 시절 이 집에 들어갔다온 후로 쭉 문제를 겪고 있는 인물이다. 전작인 <즈노우메 인형>에 해결사롤 등장했던 미하루(맞나???)의 언니인 히가 고토코가 여기서는 해결사 역할을 맡아 이 집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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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무서웠던건 사실이지만 전작보다는 덜 쫄리기도 하고, 미스터리의 풀이도 약간 시원찮은(??!!) 느낌이라 약간 실망이다. 더군다나 히가 자매들 중에서 가장 영능력(?!)이 좋다고 하는 고토코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임팩트가 약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문제를 일으키는 그것(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생명체라고 하기에도 뭣하고, 그렇다고 물건은 아닌 것이 애매함)이 생각보다 약해서 그랬던 것 같다.(개인적으로는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가 계속 생각났음. 그정도로 귀여운 캐릭터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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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밤에 잠도 못잘 정도로 더 지리는(?!) 작품으로 돌아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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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실망한거 치고 뒷얘기가 궁금해서 엄청 빨리 읽긴 했다. 내가 이렇게 빨리 읽을 수 있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네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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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

같은 해 여름, 나는 깨달았다. 자자자 사실이다. 자자자 머리가 이상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자자자자자 지금읜 내가 자자자자자자자 증거다.
나는 그 이상한 집에 들어 자자자아아아아아아아 간 후로 이상해졌다. 그 집에 들어갔다가 나온 이후 자자자자자자 준도 이상해지고 자자자자 이사오 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 히가도 이상해 자자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 머릿속에서 자자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P20

부엌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발에 눈길을 향한 순간, 마룻바닥에서 시선이 멈췄다.
발자국이 몇 개나 있었다. 발자국이 없는 곳에는 갈색의 미세한 입자가 보였다. 바닥을 둘러보자 여기저기에서 기묘한 흔적이 보여 흠칫 놀랐다. 발이 스친 듯한 자국도, 바닥과 벽의 경계선에 갈색 입자가 쌓여 있는 것도.
모래였다.
새집의 새 마룻바닥에 희미하게 모래가 쌓여 있었다. - P38

아그작. 모래 씹는 소리가 입 안에 울려 퍼졌다. 순간, 오한이 온몸을 뛰어다녔다. 온몸에 달라붙은 모래 감촉을 견딜 수 없었다. 목, 턱 밑, 귀 뒤, 팔, 팔꿈치, 오금, 허벅지.......
숨이 막히고 어지러웠다. 모래 냄새가 코를 덮쳤다. 모래가 콧속을 지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수십, 수백 개의 모래 알갱이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나는 앞이 캄캄해지는 공포에 휩싸이며 확신했다.
이제 내 차례다. 나도 드디어 이상해질 것이다. 나보다 먼저 이상해진 친구들처럼.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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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B. A. 패리스 지음, 김은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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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나올 수 없는 끈적하고 깊은 늪에 빠진 기분이다. 감정이입이 잘 이루어져서 더 힘들고 지치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작은 부분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어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던 경험이 있다면(누가 없겠냐마는) 전적으로 주인공들의 심리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기분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책은 주인공인 리비아의 40번째 생일, 그 날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리비아와 애덤은 학생 때 아이가 생겨 결혼한 커플이고, 첫째 조시와 둘째 마니를 둔 가족이다. 결혼식도 제대로 치루지 못했던 리비아에게 ‘40번째 생일 파티는 인생의 하나뿐인 목표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행사였고, 평생을 이 날만 준비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파티를 앞두고 리비아와 애덤은 각자 마니에 대한 비밀을 갖게 되고, 서로를 위해 비밀을 숨기려 한다. ‘이 비밀을 지키는 것이 맞는가?’, ‘밝힌다면 언제,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가?’를 고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교차해서 나타난다.


사실 이 부분에서 너무너무너무(x99999999) 답답했다. 당장의 평화를 위해서 무조건 덮어 놓는 것이 능사는 아닌데. 오히려 숨기고 덮어놓는 시간 동안 문제는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결과적으로 파국적인 수준까지 다다른다.(이건 다른 경우에도 맞는 말이다. 지금 당장의 평화가 최우선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사실 리비아도 애덤도 말로는 상대를 위해서라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비밀을 덮는 것뿐이다. 과거에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을 상쇄하기 위해서, 비밀이 밝혀졌을 때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자신의 과오를 소리내어 인정하기 싫기 때문에. 이런 면모는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적나라게 드러나는데, ‘상대를 위해서라고 말한 것과 달리 상대를 비난하고 원망하며 상처를 준다.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은 판타지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그런 판타지를 꿈꾸게 하면서도 가차없이 부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잔혹하지만, 뭐 현실이라는게 늘 꽃밭일 수는 없는 거니까.


+ 늦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진짜 늦은거 맞다. 그니까 더 늦기 전에 지금 바로 해라.


+ 아무리 가족이라도, 리비아와 애덤처럼 사랑하는 사이라도, 넘겨짚는 것은 금물이다. ‘저 사람이 내 마음과 같겠지?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만큼 어리석은 생각도 없다. 아니 솔직히 내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추측하냐구. 그러니까 제발 진솔한 의사소통, 대화라는 걸 좀 하고 살아야 한다.



[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


펼친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오늘이란 시간이 당신이 바라는 모든 것 그 이상이 되길 바라. 당신은 그런 하루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사랑하는 남편이. 추신 - 우린 최고의 부부야.’ - P30

목숨처럼 원하는 무언가를 박탈당하면 그 열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P36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낳는 게 정말 좋은 점이 있네요." 조시가 말했다.

"자기 인생을 뒤로 미뤄두어야 하는 건 빼고 말이지?"

남편의 말이 농담인 건 알았지만 조시의 얼굴에 그늘이 스치는 걸 보자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남편의 얼굴을 보니 방금 한 말을 주워 담았으면 좋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 P60

"이해가 안 돼요."

"오늘 밤엔 이해할 거다. 지금은 아빠 생각대로 할게."

"하긴 그동안 무슨 일이든 아빠가 원하는 대로 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조시는 그 말을 너무 태연하게 했다. 그 덕에 아들이 내가 살면서 모든 일을 자발적 선택이 아닌 의무감에서 해왔다고 믿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 P67

맨 처음 남편이 외박했을 때 나는 남편이 사고를 당했거나 살해되었다고 생각했다. 흠씬 두들겨 맞고 상처투성이가 된 남편의 몸이 도랑에 누워 있는 모습이 그려졌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뒤이어 여자 경찰을 대동한 남자 경찰이 문간에 서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증략)... 속 좁은 생각인 건 나도 안다. 사실 그런 생각은 그 힘들던 시간을 떠올릴 때만 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걱정으로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게 어떤 건지 남편도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악의 상황을 주려워한다는 게 어떤 건지. - P113

어쩌면 신은 내가 운명에 도전하고 있다고 판단해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는 걸까. - P131

폴라가 너무 외로워하는 모습에, 내가 부럽다는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따. 내가 폴라를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 정말 싫지만 폴라 눈에는 내가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였나 보다. 가족과 친구와 건강이 있으니 내가 정말 운 좋은 사람이라는 건 나도 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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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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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사람들 #프레드릭배크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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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환장파티다. 읽는 내내 얼마나 끅끅대고 웃었는지ㅋㅋㅋㅋㅋㅋㅋ 역시 프레드릭 배크만. 최애 작가 자리를 다시 탈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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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심약한 은행 강도와 진짜 말 드럽게 안들어 쳐먹는(;;;;) 인질들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은행을 털려고 했던 은행 강도는 (누구나 처음은 힘들겠지만) 미숙하기 그지없고, 인질들은 이런 은행 강도를 ‘제대로’ 일 못한다고 혼내기도 하고(?!) 처음에는 다 그렇다고 위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 인질들은 협상을 내걸면 ‘공짜로’ 피자를 먹을 수 있지 않냐며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서 경찰에게 피자를 주문한다.(“영화보니까 그렇던데요!”....) 이런 인질들을 보면서 은행 강도는 “정말 최악의 인질들”이라고 몇 번이고 되뇌인다.(사실 은행 강도도 ‘직업적으로’ 최악이기는 하다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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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불안하다. 각자의 삶에서 위태로운 일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 난간에 올라서기 직전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은행 강도의 인질’이 되었을 때, 즉 삶에서 한 번이라도 겪기 힘든 스트레스 상황을 직면했을 때 보이는 모습은 예상 밖이다. 굉장히 침착하고 유머러스하고 다정하다. 이런 모습을 통해 작가인 프레드릭 배크만은 어떤 굉장한 사건보다도 우리의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어쩌면 가장 불안하고 힘든 일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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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책에 등장하는 은행 강도와 인질들은 각자의 역할(즉, ‘강도’와 ‘인질’ 역할)에 매우 서툴다. 정말 최악의 강도와 인질들인데(실제 상황에서 절대 이렇게 행동하면 안된다는 걸 양 측 모두 제발이지 알았으면 좋겠다;;;;) 이 또한 우리의 모습과 동일한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만 모두 처음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데 서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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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사라. 거의 오베의 현신이다. 프로 팩폭러인데 말을 얼마나 찰지게 하는지, 듣는 내가 아플 정도(이런 사람과는 정말이지 말싸움을 해서는 안된다. 데미지 너무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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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동안 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 피플>이 계속 생각났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각자의 웃픈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아주 절묘하게 담겨져 있다. 그리고 아주 가벼운 이야기부터 쉽게 입에 담기 어려운 깊은 이야기까지 가슴에 꽂히는 정교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정말이지 한 문장도 뺄 것이 없다. 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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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강도. 인질극. 아파트를 급습하려는 경찰들로 가득한 계단. 이 지경에 다다르기까지는 수월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정말 한심한 발상 하나만 있으면 됐다. - P15

여기서 인질극이 펼쳐지기는 하지만 그게 이 이야기의 주제는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를 쓰겠다는 목적이 있기는 했지만 인질극이 주제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원래는 은행 강도 사건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조금 어그러져버렸는데, 은행 강도 사건이란 게 원래 가끔 그럴 때가 있다. - P17

(사라)
"그걸 커피라고 부르세요? 저기 저 기계에서 나오는 액체를 봤는데, 경관님하고 내가 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두 명이고 경관님이 그게 독약이라고 장담하더라도 마시지 않겠어요."
(짐)
"저하고 커피, 둘 중 어느 쪽이 더 기분나빠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 P114

"돈을 어떤 데 쓰세요?"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사는 데 쓰죠."
심리상담사로서는 처음 듣는 대답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비싼 음식점은 테이블 간 간격이 넓어요. 비행기 1등석은 가운데 자리가 없고요. 특급 호텔에는 스위트룸 고객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따로 있죠.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남들과의 거리예요." - P145

로는 미소를 지었다, "딸이 있으세요? 몇 살인데요?"
운행 강도는 딸들의 나이를 밝히려니 목이 메는 모양이었다. "여섯 살하고 여덟 살요."
사라는 헛기침을 하고 물었다. "그럼 그 아이들이 가업을 물려받을 건가요?"
상처받은 은행 강도는 눈을 깜빡이며 권총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적은...... 처음 이에요. 나는......범죄자가 아니에요."
"그 말이 맞길 바라요. 충격적일 정도로 솜씨가 형편없거든요." 사라는 딱 잘라 말했다. - P201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아요!"
"알았어요."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은행 강도 일의 핵심이라 짚고 넘어갈 타이밍이 아니었기에 은행 강도는 이렇게 말했다. - P235

"좋았어! 내가 피자를 준비하겠어요!"
그는 성큼성큼 발코니 족으로 걸어갔다. 에스텔은 접시를 찾으러 얼른 부엌으로 종종걸음 쳤다. 로는 율리아에게 어떤 피자를 먹고 싶은지 물으려고 벽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관홀에 혼자 남겨진 은행 강도는 권총을 움켜쥔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최약의 인질이야. 당신들은 역대 최악의 인질이야." - P263

어쩌면 당신도 우울한 상태이기 때문에. 엑스레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이 지독하게 아픈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그걸 설명할 방법이 없는 날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대다수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기억 속 저 깊은 곳에서는, 바람과 다르게 우리가 다리 위에 선 그 남자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걸 안다. 대부분의 어른들에게는 정말 끔찍했던 순간이 여럿 있었고,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꽤 행복한 사람들도 주야장천 행복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당신은 그를 살리려고 할 것이다. 인생을 실수로 끝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직접 뛰어내리려면 선택을 해야 한다. 어디 높은 꼭대기로 올라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뎌야 한다.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당신은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 P30

그녀는 이후로 날마다 뛰어내린 남자와 자신의 차이점에 대해 고민했다. 그걸 발판 삼아 직업과 경력과 모든 인생을 선택했다. 그녀는 심리학자가 되었다.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한 발을 저쪽으로 내밀고 난간에 서 있는 것처럼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이었고 그녀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눈빛으로 말했다,. "나도 겪어봤어요. 나는 거기서 무사히 내려오는 방법을 알아요." - P155

"그럼 앞으로 뭘 하실 거예요?"
"모르겠어요."
심리 상담사는 마침내 중요한 말이 생각난다. 대학교에서 배우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가끔 들어야 하는 말이다.
"잘 모르겠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도 좋죠."
- P456

"우리 걱정은 하지 마요." 율리아가 구슬렸다.
"사실 우리는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요." 로게르가 말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인 척하면 돼요."
"맞아요, 그럼 아무 문제 없지 않나요? 다들 어려울 것도 없잖아요!" 사라가 단언했다. 이번만큼은 무시하는 발언이 아니라 진심 그대로였다. -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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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무대, 지금의 노래
티키틱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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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여진 에세이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읽는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잘 쓰여진 에세이가 맞다. 아주 수려하고 멋들어진 문장은 아니지만 ‘아 맞아. 맞는 말이야. 그렇지.’하는 마음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저자들이 몸담고 있는 분야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인데도 이렇게 공감을 이끌 수 있다는 건 에세이로서 제 역할을 다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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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티키틱’은 3분 가량의 짧은 뮤지컬/영화를 만드는 크리에이터 팀인데(개인적으로 음악이 너무 좋아서 영화보다 뮤지컬이라고 칭하고 싶다) 이들이 영상에서 추구하는 것 또한 ‘공감’이다. 반전이 넘치거나 숭고하고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겼다기보다는 우리의 일상을 담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만한 내용이다. 책의 94쪽과 114쪽에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데, 작고 사소하더라도 ‘내 이야기’가 갖는 힘은 어마무시하다. 누군가가 겪은 대단한 사건보다 나의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고 귀한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티키틱’의 영상들은 오래 두고두고 볼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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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는 걱정이 많았다. 나는 영상보다는 텍스트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라 1년에 유튜브에 들어가는게 손에 꼽을 정도인데, 무려 ‘인기 유튜버’가 쓴 책..... 과연 내가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그렇지만 이런 유튜브 바보도 티키틱은 알고 있었고!!! 그니까 그 정도로 유명한 분들이신거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후루룩 읽었다. 역시 잘 쓰여진 책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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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좋아하는 티키틱의 작품은 <후회의 노래>. 진짜 거짓말 안하고 20번은 본 것 같다. 내용과 음악, 영상미까지 무엇 하나 놓친 것 없고 작은 디테일까지 완벽한 작품인 것 같다. (<롱테이크>도 좋아하지만 약간 더 가라앉은 느낌이라.. 우선은 후회의 노래가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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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본.... 파본이 왔다.... 148쪽이 2장 들어 있어서 신혁님의 얼굴과 세진님의 뒷모습을 한 번씩 더 봄. 149쪽은 영원히 읽을 수 없는 건가....(엉엉)



[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

재미삼아 시작했던 영상 제작은 지금의 나를 티키틱의 대장으로, 감독이자 크리에이터로 발돋움하게 만들어줬다. 호기심에 발을 디뎠던 산책로가 알고 보니 기나긴 여행길의 초입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기하고, 묘하고, 감사한 일이다 - P20

수많은 고민을 거치던 중, 의외의 곳에서 답이 나타났다.
‘밴드를 만들자.’
영상이 아닌 음악으로 눈을 돌려서 찾은 팀의 유형이었다. 지금까지 좋아했던 밴드들을 차례로 떠올려보니 이들은 대부분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인원 구성에, 모든 멤버가 확실하고 전문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서로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멤버와 그들의 노래가 모두 사랑받고, 모든 구성원이 한 무대에 올라 동일한 조명을 받는다는 것. - P27

늘 조금 독특한 형식의 수필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삶이 변하면 극 중 인물들의 삶도 정직하게 발맞춰 변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쓴 시나리오 속 주인공들에게는 ‘극적으로 갈등이 해결되는 순간’ 같은 게 좀처럼 오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그런 일은 잘 없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스토리텔링의 묘미가 주인공과 함께 모험 속으로 빠져드는 것에 있다고도 말하는데, 우리는 그 반대편에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한 인물을 무대 위에 올려놓은 뒤 그가 존재하는 모습 자체를 조명하는 것에 가깝다. 마치 ‘이런 날이 있었다’하고 적는 일기처럼 말이다. - P94

‘연고 없는 이의 사고보다는 실수로 바짝 깎은 내 손톱이 더 아프다. 쉽게 겪지 못할 특별한 사연이 주는 슬픔의 강도는 더 강할지 모르지만, 슬픔의 거리가 가까운 건 내가 겪을 법한 작고 흔한 이야기다. 티키틱은 울림을 전할 때 타인의 서사를 통한 감동보다 보통의 경험을 건드리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다. 일상은 원래 사소하다. 우리와 가까운 것일수록 더 작고 보잘것없다’ - P114

이 노래는 하루의 모든 것이 끝났을 때의 이야기다. 아침에 힘차게 현관을 나설 때와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기분에는 적든 크든 차이가 있다. 설령 미처 다 끝내지 못한 일이나 정리하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어서 오늘 계속 붙잡아두고 싶다고 한들 어쩌겠나. 내일은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오는 것을. 노래의 마지막에 적어 두었듯 ‘아쉬움은 두고 다음 노래로, 해가 뜨면, 그래, 다음 장으로’ 걸음을 옮겨야 하는 것이다. - P184

글을 마무리하니 벌써 또 새벽이다. 남은 일을 마무리하고 천천히 잘 준비를 해야겠다. 우리의 오늘이, 우리와 함께 무대를 만들었던 다른 모든 이들의 오늘이,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에 남긴 당신의 오늘이 모두 가치 있는 것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P184

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네 사람의 전문성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모니다. 실은 음악도, 연기도, 조명도, 디자인도,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즐거움과 울림을 위해 그저 거들 뿐. 각 분야의 노고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편안하게 감상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 P229

(신혁) 티키틱의 멤버가 되기 전과 후,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졌나요? 그리고 그 변화에 만족하시나요? 이 판을 벌린 장본인에게는 참 떨리는 질문입니다.
(추추) ‘뭐하면서 지내느냐’는 질문에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어서, 그 대답에 힘이 가득 실려 있어서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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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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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는 기분’이라고 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일들을 얘기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착해지는 기분’은 나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 무엇보다 쉽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일이 나에게 착하게 대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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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음식을 먹는 것만큼 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다(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얼추 실패해도 잘 먹기 때문에 걱정은 안함) 그래서 처음 혼자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과일청도 만들고, 밑반찬도 만들어 두고, 닭 두 마리를 통째로 삶아서 죽을 끓이고(내가 진짜 손이 크다는걸 이때 뼈저리게 느꼈다. 물릴 때까지 먹었음) 그랬다.


하지만 최근에 식단 관리를 열심히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주방에 설 일이 거의 없어졌다. 기껏해야 샐러드를 씻거나 데우기만 하면 되는 닭가슴살을 통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넣는 정도? 그래서 종종 우울한 마음이 들 때마다 그저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메뉴를 먹지 못해서 마음이 또 힘들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뭔가 생각이 달라졌다.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는 그 과정도 정말 중요하구나. 이렇게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는 행동이구나. 하나를 먹더라도 정성껏 식탁을 차려야겠다. 온전히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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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작가님의 생각과 표현이 다정해서 우울할 때 펴들어도 좋을 것 같다. 기자님이라서 그런지 글도 술술 읽히고 책장도 쉽게 넘어간다. 나는 영화를 열심히 찾아보는 편은 아니라서 모르는 작품도 많았는데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더 공감하며 읽으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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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왠지 맥시멀리스트이실 것 같은뎈ㅋㅋㅋㅋ 공감되는 부분 넘 많았잖아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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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

언젠가 들었으나 누구에게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말이 있다. 아끼는 것을 떠올릴 때 다음 두 질문에 공통으로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와야 앞으로의 과정이 순탄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좋아하는가. 그리고 이것도 나를 좋아하는가. - P7

‘정성껏’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내게 음식과 요리는 일상적인 행위인 동시에 사람과 삶을 한층 더 정성껏 바라보게 하는 대상이었다. 마음 안에 차오르는 길고 내밀한 언어들을 납작하게 접은 채 ‘좋아요’ 하나로 반응을 보이면 그만인 세상에서, 간편한 경험들이 우선하는 세상에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요리는 확실히 비효울적인 행동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맥락과 소통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취할 때의 마음을 구별하게 한다. 한 그릇의 요리에 담긴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 P9

작은 거실은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귀여운 강아지들의 발소리로 가득 찼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기분 좋게 웃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에서 이보다 더 충만하게 행복한 순간들을 나는 떠올리기 어렵다. - P22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신경써서 재료를 고르고, 그것이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온전히 이해한 상태로 음식을 먹는 것은 꽤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체험이다. 배만 부른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포만감을 주는 행위다. - P30

쓸데없이 부엌살림을 늘리는 데 질색하는 엄마는 내가 뭔가를 가지고 싶어 할 때마다 "독립하면 네 살림으로 사"라는 말을 하곤 했다. 엄마 말은 잘 들어야 한다. 독립한 나는 기다렸다는 듯 ‘내 살림’을 꾸준히 늘려나가는 것으로 효심을 발휘하는 중이다.
- P47

의지는 불타오르게 만드는 것보다 꺼뜨리는 게 더 쉽다. 포기하면 편하다. 발이 다 짓무르고 피가 나는 순간에 절벽에 잠깐 앉아서 상황을 수습하려는데, 그 와중에 등산화 한 짝이 수백 미터 아래로 떨어져버리는 게 인생이니까. 안락한 소파에 앉아 달콤한 핫초코 한 잔을 마시는 게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 데는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
- P53

정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어록을 남겼고, 나는 그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모두 설레니까 하나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삶을 실천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 P75

인생에는 단맛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순간들을 맞이할 때, 피로가 몸과 마음을 지배하려 할 때 즉각적인 처방전으로 이보다 유용한 건 찾기 어렵다. 쓴맛을 보았을 때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달래는 일은 중요하다. 다시 힘을 내볼 수 있도록 기분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살아가려면 나라는 존재를 계속 구슬리고 달래며 움직여보는 수밖에 없지 않나.
발휘하는 힘이 세다는 측면에서 귀여움과 달콤함은 일맥상통한 지점이 있다. 무기력과 분노를 가라앉히고 내가 살아갈 세상으로 다시 눈 돌리게 한다. 지켜야 할 것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P80

나는 진심으로 탄수화물이 인류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믿는다. 타인을 향한 애정, 너그러운 마음씨와 예절, 그런 게 다 탄수화물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첫 끼는 되도록 탄수화물을 제외하고 채소를 풍부하게 섭취하는 게 좋다는 정론은 때론 나를 지치게 만든다. 어쩌다 탄수화물은 건강과 다이어트의 주적이 됐을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체중과 건강을 염려하며 식재료를 고를 때 칼로리를 따지고 계산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사는 게 매우 덧없이 느껴진다. 인생은 왜 이 맛과 저 맛 사이가 아니라 저칼로리와 고칼로리 사이란 말인가. - P106

세상의 모든 결과물은 애정과 열정과 선한 의도에 비례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가 기억해주는 위대한 작업을 할 때보다 그렇게 될 리 없는 시시한 작업을 할 때가 더 많다. <에드 우드>에는 그런 모두를 위로하는 마음이 있다. 지치지 않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 꾸준한 마음이 실은 가장 대단한 것임을 말하는 목소리가 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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