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을 이야기 - 팬데믹 테마 소설집 아르테 S 7
조수경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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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쓰여진 글이라 더 처참하다. ‘재난’을 주제로 하는 4개의 단편 소설이고, 전염병과 성폭력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다. 읽는 내내 울화가 치밀고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현재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이고, 해결되지도 않은 상황이고,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마음아프고 짜증이 난다.

특히 두 번째 이야기인 김유담 작가의 <특별재난지역>은 정말 읽으면서 엉엉 울고 싶었다. 진짜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화자인 일남은 직접적으로는 사건의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일남의 아버지, 남편, 자식들 그리고 손녀까지 모두 끔직한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그 가운데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일남의 모습이 절절하다. 이 이야기는 ‘힘내라!’라고 쓰여진 카드가 팔랑팔랑 떨어지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된다. 이미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는 회복이 불가능한 정도인데, 어떠한 이해도 없이 가볍게 ‘힘내라’고 하는 건 또 얼마나 폭력적이고 깊이없는 처사인지.

그렇지만, 이렇게 끔찍하고 진저리나는 이야기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그런 일이 있었대”하고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길 바란다.

+ 사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미성년/청소년 혹은 지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에 대한 일인데, 정말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에 대한 혐오만 쌓이는 것 같다.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저버리는 일이다. 그러데 심지어 N번방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생명체(욕을 쓰고 싶었으나 참습니다. 숨은 쉴테니 아직 생명체는 맞겠죠 뭐)들의 사건도 이렇게 해결이 안되는데, 내가 보고 있는 사건들처럼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무수한 일들에는 무슨 희망이 있나 싶다.

[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

최근에 깨달은 나의 가장 큰 장점은 질기다는 거였다. 강하기보다는 질긴 것. 어쩌면 강한 것과 질긴 것 중 살아가는 데 더 필요한 건 질긴 것인지도 몰랐다.- P20

"엄마, 아들한테는 이런 거 대놓고 해달라고 못하죠? 왜 마스크 구해 드리는 건 딸이니 며느리여야 해요?"
"상진이 갸는 지금 바쁘다 아이가, 당장 시험이 코 앞인데."
상희가 쿄웃음을 쳤다.- P64

휴대전화를 쥔 일남의 손이 덜덜 떨렸다 .보이스피싱으로 돈 보내달라 카는 사기꾼들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열 살짜리 가스나 알몸 사진이 와 필요하다 카노, 이거는 듣도 보도 못한 기라. 숭악한 놈들, 고얀 놈들.- P88

"근데 엄마가요. 이 사진 우리끼리 비밀이라고 했는데, 엄마 말 안 들으면 학교 친구들한테도 사진 다 보이줄 꺼라고. 우리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다고 했어요. 우리 집 주소도 다 알고 있다 했는데."- P88

아니, 일남은 처절하게 버려지고 고립된 기분이었다. 일남은 한 팔로 무릎 위에 올려진 부친의 유골함을 세게 끌어안았고, 나머지 팔로는 곤하게 잠든 가영의 어깨를 감쌌다.- P100

"예진이는...... 그런 일 겪으면 안 돼."
신 선생님도 그런 일 겪어선 안 되는 거였어요.
예진이는 안 되지만 신 선생님은 겪어도 괜찮은, 그런 일이 아니었다고요.- P143

(해설) 확진자 동선이 공개되며 개인 정보가 공개되고 그로 인해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의 인권이 무책임하고 무차별적인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전염 사회를 지나며 우리가 보았던, 기억해야 할 폭력이 아니었던가. 집단 방역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더라도 공통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안전을 위협받아도 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파운데이션으로 잠시 덮어둔 슬픈 침묵을 기억해야 한다.- P198

(해설)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대상인 노인과 디지털 성착취에 가장 취약한 대상인 미성년 여아들을 함께 배치하는 작가의 의도를 우리는 피할 길이 없다. 일남의 아버지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의 ‘죽음’고 비교할 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은 조금도 가볍지 않다. 그 역시 죽음이라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이러스의 빠른 확산세와 함께 운명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되던 그때, 특정되지 않은 디지털 재난 공간에서 수많은 여학생들의 인격도 죽어갔다. 코로나19와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폭력이다.-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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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우노메 인형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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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뒷 얘기가 궁금해서 호로록 금방 다 읽어버렸다. 특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잘 살아있고, 무엇보다도 작가가 꼼꼼하게 심어놓은 떡밥이 잘 회수되어서 좋았다(몇 개는 처음부터 눈치챘는데, 그게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서술트릭’도 하나 숨겨져 있었는데(못알아챔), 와 정말 내가 이렇게 편견을 가진 사람이었나 싶어서 반성했다.

이 책은 도시 괴담, 그러니까 ‘이 원고를 읽은 사람은 곧 죽는다’는 괴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원고를 읽으면 검은 머리에 후리소데를 입은 즈우노메 인형이 보이기 시작하고 결국 그 인형에 의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형이 점점 목을 조여오는데 증맬루 미칠 것 같음.

사실 이 책에서 악인의 역할을 맡는 사람, 즉 즈우노메 인형의 발단이 되는 사람이 정해져있기는 하다. 그걸 파헤쳐나가는 것이 책의 주요 골자인데, 좀 찜찜한 감이 없지 않다. 마치 ‘조커’처럼 그 나름의 사정과 안타까운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재 시점에서도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책에서는 행복한 것처럼 묘사되지만 본인의 착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약간 B형 성격장애의 면모도 보이는 것 같고.... 주변 사람들은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데 본인만 알아채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결말도 참... 마음이 무거웠다.

+ 앞으로 읽으실 분들을 위해 최대한 스포가 안될만한 내용만 옮겨 적었다. 공포물 좋아하시는 분들 완전 추천(저는 전작인 보기왕도 구입해 볼 예정임)

+ 딴소리긴 한데, 공포/호러 분야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 때문에 무서운 거(예를 들면 ‘싸이코’나 ‘쏘우’) 혹은 귀신 때문에 무서운거(‘링’이나 ‘컨저링’ 같은). 개인적으로 전자가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데, 귀신이나 악령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악한 사람은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근데 솔직히 어젯밤에 침대에 누웠을 때 즈노우메 인형이 생각났다(저는 심각한 TJ형 인간인간이라 인형이 나타나면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를 먼저 생각했음). 그리고 꿈에서 쫒겨다녔다. 진짜 엄청 오랜만에 꿈 꾼건데 매---우 피곤했음😨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처음에는 멀리서 보였다. 지금은 침대 옆에 있다.
오도카니 서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써도 알 수 있다. 날 리 없는 기척이 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는데.......
머릿속에서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새 시야 한쪽 구석에 있던 그 모습이. 녀석의 모습이.
그 애한테서 들은 모습과 똑같다. 크기는 고양이만 할까? 검은색 후리소데를 입고 있다. 단발머리에 손을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고 있다.
그리고 얼굴은 새빨간.......- P11

‘저주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거야.’
하필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렸다. 망상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듣게 된다.
‘우리 눈에는 안 보여. 그래서 골치 아프지.’- P13

"후지마 눈에는 안 보였어?"
"그래, 안 보였어. 무슨 말이야?"- P132

만에 하나라도 저주를 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가. 그렇다면 이 원고를 쓴 의도는 악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살의다. 사람을 살해할 생각으로 원고를 보낸 것이다.- P319

그들이 버티고 있으면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일하는 시간을. 유타와 놀아주는 시간을. 남편과 보내는 시간을.
비참했던 그 시절과 정반대인 지금의 생활이 위태로워진다.
두 사람이 죽는 것은 안됐지만 나하곤 관계없는 일이다.-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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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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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세이를 읽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특히 “--해도 괜찮아같은 소위 말하는 <힐링 에세이>들이 인기를 얻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는 1권도 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런 책들이 잘못한건 없겠지만, 매번 똑같은 말을 하는 것 같고 심지어 별로 깊이있는 말이 아니게 느껴졌다.(적어도 내가 만난 책들은 그랬다. 그래서 한 두권? 까지는 재밌게 읽었는데 그 뒤로는...) 더군다나 밑도 끝도 없이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라>고 하는 것 같아서 나한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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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는 사실 약간 절망했다(진짜로...). 아니 왜 첫 책부터 에세이야... 제목이 <, 이게 뭐라고>이니 분명 작가가 책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나는 이만큼 많은 책을 읽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는(아닙니다) 책일 줄 알았다. 그래서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다. 근데 보면 볼수록 이 작가님 내 스타일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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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고 쓰는 사람인 작가 장강명이 팟캐스트를 진행할 때 겪었던 일들과 그때의 고민들을 이야기한다. 특히 본인의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팟캐스트 진행자로서 말하고 듣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문체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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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공감갔던 부분은 영상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나도 영상보다 글자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작가님과 비슷한 경험이기도 한데, 요즘은 여행 브이로그를 보면서 여행 계획을 짠다는 말에 진짜 엄청 놀란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도서관가서 여행 책자를 찾아보는 사람이다(나는 유튜브를 전혀 보지 않는데, 이걸 두고 늘그니라고 놀리는 친구도 있다). 영상은 나름대로 장점이 많지만 글자가 주는 매력을 따라오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만큼 시간을 들여서 내멋대로 상상하고 해석하는 것은 텍스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읽는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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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들고 싶은 부분도 꽤 많았는데 가장 크게는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이 책에서 작가님은 읽고 쓰는 것과 말하고 듣는 것을 극단에 놓고 이야기한다. 근데 이게 둘로 나눠지는 개념은 아니지 않나? 차라리 4분면으로 나누어서 읽는 것과 쓰는 것을 한 축의 양 극단에,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다른 축의 양 극단에 놓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읽는 사람이라고 다 쓰는 사람인 것은 아니니까(나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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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자책에 대한 부분. 여기서 작가님은 전자책을 싫어하고 종이책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약간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표현했는데(p.109, “독서가들 중에는 손 끝에 닿는 책장의 느낌이니 종이 냄새니 하면서 종이책의 물성에 대한 애정을 호들갑스럽게 과시하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그게 이상한 자부심과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의심한다.), 아니 이거야말로 취향의 문제 아닌가?? 전자책은 뭔가 손에 들어오는 느낌이 아니라서 쓰기 불편하고 머리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논문도 다 뽑아서 보는 사람). 종이책을 넘기는 그 느낌이 좋은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인데... 아니 그리고 <리커버 에디션> 이런 것도 충분히 살만하지 않은가? 사고싶으면 사는거지. 좋은 책은 그만큼 판본별로 사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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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작가가 “‘좋은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와 같은 주제를 놓고 대낮에 맨정신으로 지인과 토론할 일은 거의 없다”(p.97)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문득 약간 자부심이 생겼다. 왜냐면 내 주변의 사람들과는 이런 일들이 어렵지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건 약간 심리학과의 과특이기도 한데, 이 사람들은 진짜 수업 시작하기 전 잠깐의 시간에도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다. 이런 진지한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오고가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다들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고(그러니 심리학과에 왔겠지만) 대부분 못말리는 분석쟁이들이라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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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줄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가끔 "책을 언제 어디서 읽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게 "물을 언제 어디서 마시느냐"는 질문처럼 들린다. 그냥 아무 데서나 수시로 읽는다. 팟캐스트 출연을 기다리며 스튜디오에서 읽기도 하고, 마산으로 내려가는 무궁화호 열차에서 읽기도 하고, 장례식장에서 문상객을 맞는 틈틈이 읽기도 한다. 물을 안 마시면 목이 마르고 책을 안 읽으면 마음이 허하다. 그리고 책 정도면 포터블한 물건 아닌가?- P21

나는 궁금하다. 왜 일곱 살짜리조차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그런 환상을 품는지. 왜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조차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어가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는지. 책, 그게 뭐라고?- P23

사람들은 긴 글을 읽기 싫어한다. ‘누가 요약 좀’이라거나 ‘너무 길어서 읽지 않았습니다’ 라는 댓글을 남긴다. 쓰는 인간들과 그들의 매체는 그렇게 점점 자리를 읽어간다.(중략)
말하기는 쓰기보다, 듣기는 읽기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다. 말하기와 듣기는 읽기와 쓰기보다 훨씬 더 오래된 행위다. 보다 원시적이고 동물적이다. 말하고 듣는 인간은 넓은 영역의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빠르게 대응한다. 말하고 듣는 인간은 반응한다.
- P40~41

읽기와 쓰기가 말하기와 듣기보다 우월하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읽기-쓰기와 말하기-듣기는 완전히 범주가 다른 활동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관심사나 특기도 그 둘 중 한쪽에 치우쳐 있다고 본다. 나로 말하자면 분명히 읽고 쓰는 쪽의 인간이다. 관심사도, 특기도.
- P130

나는 작가들이 오지 않는, 그래서 작가들이 방해할 수 없는, 순수한 독서 축제를 상상했다. (중략) 내 상상 속 책 축제는 한겨울에 일주일 동안 펼쳐진다. (중략) 일주일 동안 모든 참가자들에게는 소박하지만 멋진 숙소가 제공된다. 시설은 다 똑같다. 노약자와 가족을 위한 방이 조금 다를 뿐이다. 방을 배정할 때에는 지인들은 이웃하지 않게 두는 게 원칙이다. 방의 옷장에는 입을 옷가지들도 다 갖춰져 있는데 이용자의 옷 사이즈를 주최 측에서 미리 파악해 크기가 다 잘 맞는다. (중략) 참가자들은 축제 첫날 행사장에 들어갈 때 입구에서 돈과 휴태전화와 컴퓨터 기기를 모두 진행요원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제비 뽑기를 한다. 제비에는 책의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이 적혀 있다. 참가자들은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찾아 읽고, 등장인물을 자기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 P148~150

이렇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과연 있을까 싶은데, 아이슬란드가 그렇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에서는 TV 독서 프로그램이 황금 시간대에 편성되며, 1년 내내 이런저런 책 관련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아이슬란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책을 선물하는 전통이 있어서, 그 시즌마다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욜라보카플로드‘라고 부른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책 홍수‘라는 뜻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어떤 책을 선물할지를 놓고 뜨거운 토론을 벌인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판타지 소설처럼 들린다.
- P151

‘이거 진짜 재미없음. 완전 구림’이라는 한 줄짜리 감상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어떤 사람이 그런 한 줄 감상이라도 많이 올리면 그의 취향이 드러나고, 그렇게 되면 그의 한 줄짜리 감상은 취향이 겹치는 다름 사람에게 의미 있는 참고 사항이 된다. 취향이 정반대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유용한 지침이다.- P180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성적 분석보다는 감성적인 위로를 선호하는 정서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인들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데에도 서툰 것 같다고 말하면 너무 야박한 평가일까. 과거에는 에세이와 르포르타주 사이에 체험기, 수기같은 문학적 전통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흐릿해지는 듯하다.- P192

<당선, 합격, 계급>을 쓰느라 웹소설 작가들을 취재하면서 남성향 웹소설 독자들이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남자 주인공이 활약하는데 옆에서 설치지 말라는 거다. 그냥 주인공을 짝사랑하기만 하라는 거다. 완벽하고 무적이어야 할 우리의 남자 영웅이 한낱 여인한테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니까. ‘히전죽’이라는 웹소설 독자들 사이의 속어도 있다. ‘여성 캐릭터는 전체 이야기나 남자주인공한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히로인의 위치에 오르기 전에 죽입시다’라는 말을 줄인 거란다.
- P215~216

이후에 나온 얇은 국내 소설 단행본 시리즈는 ‘소장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표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때깔이 좋아야 한단다. 그렇게 앞은 점점 매끈해지고, 옆은 점점 날씬해진다.- P225

읽고 싶은 책들은 읽은 책보다 언제나 훨썬 더 빠르게 늘어간다.- P234

고전은 독자에게 얌전하게 교훈을 던져주지 않는다. 그들은 독자들이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시비를 건다. 자신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이 존재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맞쳐보라고 묻는다. 그것이 고전의 힘이다.-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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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트릭의 모든 것
니타도리 케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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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꼭 작가 후기까지 다 읽어야 한다. 작가가 그려놓은 큰 그림은 후기까지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그 전까지 이 책에 대한 평가가 '그저 그렇다' 싶더라도 후기를 읽으면 생각이 바뀔 것 같다(나는 그 전부터 너무 좋았지만)

 

무려 책의 첫 6페이지를 통해 이런저런 트릭을 썼으니 주의하라(심지어 에피소드별로 주목해야 하는 포인트까지 밝혔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었지만, 정말 하나도 알아맞히지 못했다. 나름 추리/미스터리 소설 애독자고 수사 드라마도 꽤많이 봤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구차하게 말해보자면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범인을 대충 알아맞히기는 했지만 거기에 숨겨진 트릭은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이 책은 서술 트릭, 말 그대로 서술상의 트릭을 사용하는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아아아아아주 주의깊게 읽으면 범인이 누구인지 또는 사건에 숨겨진 트릭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이건 이론적으로 가능은 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는....(후략)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잔인하거나 끔직한 이야기가 아니며, 트릭이나 추리 그 자체에 더 힘을 준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이야기가 싫다 하시는 분들은 특히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코지 미스터리로 볼 수도 있겠는데, 그런 분위기에 비해 트릭이 매우 탄탄해서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보게 될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두 번째 작품인 등을 맞댄 연인이 가장 좋았는데, 이건 진짜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괜히 읽는 나까지 두근두근했다. 반면에 네 번째 작품인 별생각 없이 산 책의 결말은 기대 이하였다(솔직하게 말해서^^). 이 트릭을 추리해내려면 주의력뿐만 아니라 사전 정보와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읽으실 분들을 위해서 어떤 류의 지식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이렇게 되면 작가가 야심차게 내세운 공정한 경쟁상황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너무 감사하게도 접하게 된 책인데, 이 책은 내가 돈을 주고 구입했어도 정말 아깝지 않을 책이다. 일단 후기는 썼지만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징(내가 생각하는 책에 대한 가장 극찬은 이것이다.)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장>
이 책에 수록된 모든 단편은 서술트릭을 사용한 이야기이므로, 속지 않도록 신중하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중략)...‘서술트릭’이란 문장 그 자체의 서술법으로 독자를 속이는 유형의 트릭입니다..(중략)...‘자, 어떠냐. 한 방 먹었지’라고 마치 저자한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드는 트릭이 ‘서술트릭’인 셈이죠. 따라서 서술 트릭은 ‘작가가 독자에게 구사하는 트릭’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P7

그럼 공정하게 서술트릭을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해결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합니다. 첫머리에 ‘이 단편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에는 서술트릭을 사용했습니다’라고 먼저 밝히는 거죠. 그러면 모두 주의해서 읽을테니 늦게 내는 가위바위보가 아니게 됩니다.- P11

또한 이 책은 친절하므로 각 이야기의 트릭을 알기 쉽게끔 미리 힌트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마지막 이야기는 힌트 없이도 어렵지 않게 진상을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 앞 이야기는 ‘그때까지의 이야기를 전부 재독해보면’ 트릭을 알아차리기 쉽습니다. 그리고 또 그 앞 이야기는 ‘수많은 등장인물을 어딘가에 메모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그 앞 이야기는 ‘첫 장면이 왜 그렇게 쓰였는지’, 그 앞 이야기는 ‘왜 등장인물의 이름이 그것인지’, 그 앞 이야기는 ‘왜 그런 형식으로 서술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너무 주절주절 늘어놓은 데다 굵은 글씨로 쓴 건 도가 지나쳤나 싶어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만, 아마 이런 힌트가 있어도 모든 이야기의 진상을 꿰뚫어보는 독자는 드물지 않을까 합니다.-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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