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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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세이를 읽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특히 “--해도 괜찮아같은 소위 말하는 <힐링 에세이>들이 인기를 얻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는 1권도 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런 책들이 잘못한건 없겠지만, 매번 똑같은 말을 하는 것 같고 심지어 별로 깊이있는 말이 아니게 느껴졌다.(적어도 내가 만난 책들은 그랬다. 그래서 한 두권? 까지는 재밌게 읽었는데 그 뒤로는...) 더군다나 밑도 끝도 없이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라>고 하는 것 같아서 나한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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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는 사실 약간 절망했다(진짜로...). 아니 왜 첫 책부터 에세이야... 제목이 <, 이게 뭐라고>이니 분명 작가가 책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나는 이만큼 많은 책을 읽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는(아닙니다) 책일 줄 알았다. 그래서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다. 근데 보면 볼수록 이 작가님 내 스타일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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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고 쓰는 사람인 작가 장강명이 팟캐스트를 진행할 때 겪었던 일들과 그때의 고민들을 이야기한다. 특히 본인의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팟캐스트 진행자로서 말하고 듣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문체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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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공감갔던 부분은 영상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나도 영상보다 글자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작가님과 비슷한 경험이기도 한데, 요즘은 여행 브이로그를 보면서 여행 계획을 짠다는 말에 진짜 엄청 놀란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도서관가서 여행 책자를 찾아보는 사람이다(나는 유튜브를 전혀 보지 않는데, 이걸 두고 늘그니라고 놀리는 친구도 있다). 영상은 나름대로 장점이 많지만 글자가 주는 매력을 따라오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만큼 시간을 들여서 내멋대로 상상하고 해석하는 것은 텍스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읽는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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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들고 싶은 부분도 꽤 많았는데 가장 크게는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이 책에서 작가님은 읽고 쓰는 것과 말하고 듣는 것을 극단에 놓고 이야기한다. 근데 이게 둘로 나눠지는 개념은 아니지 않나? 차라리 4분면으로 나누어서 읽는 것과 쓰는 것을 한 축의 양 극단에,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다른 축의 양 극단에 놓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읽는 사람이라고 다 쓰는 사람인 것은 아니니까(나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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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자책에 대한 부분. 여기서 작가님은 전자책을 싫어하고 종이책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약간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표현했는데(p.109, “독서가들 중에는 손 끝에 닿는 책장의 느낌이니 종이 냄새니 하면서 종이책의 물성에 대한 애정을 호들갑스럽게 과시하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그게 이상한 자부심과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의심한다.), 아니 이거야말로 취향의 문제 아닌가?? 전자책은 뭔가 손에 들어오는 느낌이 아니라서 쓰기 불편하고 머리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논문도 다 뽑아서 보는 사람). 종이책을 넘기는 그 느낌이 좋은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인데... 아니 그리고 <리커버 에디션> 이런 것도 충분히 살만하지 않은가? 사고싶으면 사는거지. 좋은 책은 그만큼 판본별로 사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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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작가가 “‘좋은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와 같은 주제를 놓고 대낮에 맨정신으로 지인과 토론할 일은 거의 없다”(p.97)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문득 약간 자부심이 생겼다. 왜냐면 내 주변의 사람들과는 이런 일들이 어렵지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건 약간 심리학과의 과특이기도 한데, 이 사람들은 진짜 수업 시작하기 전 잠깐의 시간에도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다. 이런 진지한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오고가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다들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고(그러니 심리학과에 왔겠지만) 대부분 못말리는 분석쟁이들이라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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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줄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가끔 "책을 언제 어디서 읽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게 "물을 언제 어디서 마시느냐"는 질문처럼 들린다. 그냥 아무 데서나 수시로 읽는다. 팟캐스트 출연을 기다리며 스튜디오에서 읽기도 하고, 마산으로 내려가는 무궁화호 열차에서 읽기도 하고, 장례식장에서 문상객을 맞는 틈틈이 읽기도 한다. 물을 안 마시면 목이 마르고 책을 안 읽으면 마음이 허하다. 그리고 책 정도면 포터블한 물건 아닌가? - P21

나는 궁금하다. 왜 일곱 살짜리조차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그런 환상을 품는지. 왜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조차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어가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는지. 책, 그게 뭐라고? - P23

사람들은 긴 글을 읽기 싫어한다. ‘누가 요약 좀’이라거나 ‘너무 길어서 읽지 않았습니다’ 라는 댓글을 남긴다. 쓰는 인간들과 그들의 매체는 그렇게 점점 자리를 읽어간다.(중략)
말하기는 쓰기보다, 듣기는 읽기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다. 말하기와 듣기는 읽기와 쓰기보다 훨씬 더 오래된 행위다. 보다 원시적이고 동물적이다. 말하고 듣는 인간은 넓은 영역의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빠르게 대응한다. 말하고 듣는 인간은 반응한다.
- P40~41

읽기와 쓰기가 말하기와 듣기보다 우월하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읽기-쓰기와 말하기-듣기는 완전히 범주가 다른 활동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관심사나 특기도 그 둘 중 한쪽에 치우쳐 있다고 본다. 나로 말하자면 분명히 읽고 쓰는 쪽의 인간이다. 관심사도, 특기도.
- P130

나는 작가들이 오지 않는, 그래서 작가들이 방해할 수 없는, 순수한 독서 축제를 상상했다. (중략) 내 상상 속 책 축제는 한겨울에 일주일 동안 펼쳐진다. (중략) 일주일 동안 모든 참가자들에게는 소박하지만 멋진 숙소가 제공된다. 시설은 다 똑같다. 노약자와 가족을 위한 방이 조금 다를 뿐이다. 방을 배정할 때에는 지인들은 이웃하지 않게 두는 게 원칙이다. 방의 옷장에는 입을 옷가지들도 다 갖춰져 있는데 이용자의 옷 사이즈를 주최 측에서 미리 파악해 크기가 다 잘 맞는다. (중략) 참가자들은 축제 첫날 행사장에 들어갈 때 입구에서 돈과 휴태전화와 컴퓨터 기기를 모두 진행요원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제비 뽑기를 한다. 제비에는 책의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이 적혀 있다. 참가자들은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찾아 읽고, 등장인물을 자기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 P148~150

이렇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과연 있을까 싶은데, 아이슬란드가 그렇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에서는 TV 독서 프로그램이 황금 시간대에 편성되며, 1년 내내 이런저런 책 관련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아이슬란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책을 선물하는 전통이 있어서, 그 시즌마다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욜라보카플로드‘라고 부른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책 홍수‘라는 뜻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어떤 책을 선물할지를 놓고 뜨거운 토론을 벌인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판타지 소설처럼 들린다.
- P151

‘이거 진짜 재미없음. 완전 구림’이라는 한 줄짜리 감상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어떤 사람이 그런 한 줄 감상이라도 많이 올리면 그의 취향이 드러나고, 그렇게 되면 그의 한 줄짜리 감상은 취향이 겹치는 다름 사람에게 의미 있는 참고 사항이 된다. 취향이 정반대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유용한 지침이다. - P180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성적 분석보다는 감성적인 위로를 선호하는 정서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인들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데에도 서툰 것 같다고 말하면 너무 야박한 평가일까. 과거에는 에세이와 르포르타주 사이에 체험기, 수기같은 문학적 전통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흐릿해지는 듯하다. - P192

<당선, 합격, 계급>을 쓰느라 웹소설 작가들을 취재하면서 남성향 웹소설 독자들이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남자 주인공이 활약하는데 옆에서 설치지 말라는 거다. 그냥 주인공을 짝사랑하기만 하라는 거다. 완벽하고 무적이어야 할 우리의 남자 영웅이 한낱 여인한테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니까. ‘히전죽’이라는 웹소설 독자들 사이의 속어도 있다. ‘여성 캐릭터는 전체 이야기나 남자주인공한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히로인의 위치에 오르기 전에 죽입시다’라는 말을 줄인 거란다.
- P215~216

이후에 나온 얇은 국내 소설 단행본 시리즈는 ‘소장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표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때깔이 좋아야 한단다. 그렇게 앞은 점점 매끈해지고, 옆은 점점 날씬해진다. - P225

읽고 싶은 책들은 읽은 책보다 언제나 훨썬 더 빠르게 늘어간다. - P234

고전은 독자에게 얌전하게 교훈을 던져주지 않는다. 그들은 독자들이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시비를 건다. 자신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이 존재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맞쳐보라고 묻는다. 그것이 고전의 힘이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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