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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의 만찬 ㅣ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일러스트판 전에 구판도 빌렸지만 급한 대로 일러스트로 리뷰한다.
어릴 때 엄마는 우리 남매에게 위인전 세트를 사주셨다.
세계판과 한국판이 있었다.
내가 심심하면 하는 일은 위인전 뒤에 있는 연표를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표를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 내가 11살인데 위인들 11살 때는 뭘 했는지..
그 버릇은 지금도 그대로다. 그래서 책을 피자마자 보이는 연표를 봤다.
그리고 지금 내 나이에 이 작가는 뭘 했는지 유심히 봤다.
모차르트는 그때 내게 좌절감을 줬다.
이 작품을 쓴 작가는 내게 샤덴프로이데를 선물했다.
불륜을 했는데 내 나이쯤 사랑하는 연인 아이를 유산했다고..
그게 자랑인가?라고 생각하며 이자크 디네센이란 작가에 빠졌다.
알고 보니 작가 이름은 가명이고 이 작가에 일대기가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단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전율했다.
이 짧은 이야기 안에 성경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듯했다.
마지막 12명 만찬이 마치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한 만찬 같은 느낌까지 줬다.
노르웨이 험한 산골 마을 베를레보그에 마르티네와 필리페라는 경건한 자매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목사셨고 두 자매는 마치 (가톨릭으로 치면) 수녀처럼 신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겼다.
마르티네와 필리페 자매 집에는 바베트라는 프랑스 출신 하녀가 있었다.
이들이 인연을 맺은 것은 아주 먼 과거로 떠나야 한다.
마르티네와 필리페 자매는 젊었을 때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때도 지금처럼 검소하고 신실했으나 미모를 가릴 수는 없었다.
마르티네를 보고 로렌스 로벤히엘름이라는 장교는 사랑에 빠진다.
장교는 세상적인 사랑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마르티네가 가진 영혼을 울리는 사랑은 처음이었다.
그는 고모 집인 베를레보흐를 떠나며 운명을 얘기하며 마르티네에게 작별을 고한다.
프랑스 가수 아실 파팽은 슬럼프를 겪으며 조용한 이 동네에서 요양을 하기로 한다.
우연히 교회에서 필리페 목소리를 들은 아실 파펭은 열정적으로 아버지인 목사를 설득해 필리페에게 성악을 가르친다.
아실 파펭은 필리페와 같이 듀엣을 하던 중 자신이 한상 꿈꿨던 예술 경지를 경험한다.
단지 노래에 빠져 노래 속 주인공이 됐던 아실 파팽.
필리페는 처음으로 자신 손을 덥석 잡은 남자를 생각하며 레슨을 그만두길 원한다.
결국 아실 파팽은 자신이 한 실수를 깨닫고 서둘러 프랑스로 떠난다.
목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1871년 6월.
비 내리는 날에 아실 파펭이 쓴 편지를 들고 온 바베트라는 여인이 찾아온다.
요리를 잘 하지만 프랑스에서 아들과 남편을 잃고 감옥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이라고 한다.
두 자매는 하녀를 둘 돈이 없었지만 갈 곳 없다는 바베트의 간곡한 청을 들어준다.
바베트는 지혜로운 여자였다.
바베트가 들어온 후 자매는 예전보다 더욱 윤택한 삶을 살게 된다.
점점 자매들 집에 모인 교회 사람들이 불화하기 시작한다.
툭툭 털고 지나갈 수 있는 일들을 그들은 크게 생각하고 분노했다.
자매는 항상 이런 일을 지혜롭게 해결한 아버지를 그리며 아버지 100세 생일인 12월 15일에 만찬을 하기로 한다. 그런 와중에 바베트는 프랑스에서 만 프랑 복권에 당첨된다.
곧 자매는 바베트가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슬퍼한다.
바베트는 자매에게 간곡히 자신이 만찬을 준비하도록 해 달라고 청한다.
만찬이 끝나고 음식을 먹으며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예전에 갖고 있던 서로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내려놓고 그들은 화합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모든 만찬이 끝난 후, 그제야 두 자매는 바베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바베트는 자신이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잉클레 주방장이었다는 사실과 이 음식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받은 만 프랑을 재료비로 다 썼음을 고백한다.
책을 읽고
이 책을 읽고 자매를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오만을 보았다.
자매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 길은 하나님을 위한 길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이 생각은 아버지 목사가 갖고 있던 생각이고 당연히 딸에게 전해졌다.
그렇기에 목사는 아름다운 딸을 내보내지 않고 자신 품에서 크게 했다.
이 험한 산골에 두 남자가 제 발로 두 자매에게 온다.
자매 외모뿐 아니라 그 안에 가진 영혼과 재주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젊은이였다.
그런 두 사내를 그냥 떠나보낸다. 그게 과연 신이 원한 결과였을까?
로렌스 장군은 결국 세상에서 허무함을 느낀다. 아실 파팽이란 가수도 절망하며 섬을 떠난다.
이 둘은 몇 십 년 지나 인연을 이어나간다. 로렌스 장군은 다시 돌아와 마르티네를 계속 생각하며 살았음을 고백한다. 아실 파팽 또한 바베트를 보내며 자신 마음은 항상 필리페에게 향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로지 외진 집 갇혀 하나님만 생각하는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행동이라고 착각하며 평생을 보낸다.
이 좁은 식견은 바베트에게 향한다. 바베트가 프랑스 여인이란 이유만으로 허영심 많고 화려할 것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한다. 정작 바베트는 화려한 귀족에게 반발한 코뮌 지지자였다. 또한 바베트가 준비한 정성을 다 한 음식조차 자신들이 가진 영성에 더러워질까 걱정한다.
이런 자매의 어리석은 행동은 성경에 나온 몇 가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예수님이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고는 기도하러 가는 길에 베드로는 이런 말을 한다. 그냥 우리 제자들과 깊은 산에 숨어서 평생을 살자고 말이다.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크게 혼낸다. 딸은 내보내지 않으려 했던 목사나 외지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면서도 이를 차단한 두 자매는 흡사 다가올 일을 회피하는 베드로 행동과 같다.
마리아는 비싼 향유로 예수님 발을 닦았다. 이에 유다는 그 모습을 보고 마리아를 나무란다. 그 돈이면 가난한 사람을 먹일 수 있다는 이유다. 유다 행동은 자매가 바베트가 성대한 만찬을 준비하려고 할 때 반감을 느꼈던 그 부분과 일치한다. 어쩌면 그들은 유다처럼 교만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만찬을 통해 많은 사람이 달라졌다.
자매는 자신이 다른 면으로 평생 교만하게 살았음을 깨달았다. 화환 대신 유용한 쌀을 대신 받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일이란 개념이었다. 그렇다면 꽃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파는 사람에 대한 노고는 그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인가? 혹시 나는 장인이 한 땀 한 땀 예술혼을 불어 넣어 만든 명품 백을 우습게 여기며 사치품이라고, 그런 거 드는 사람은 모두 허영심에 찬 사람이라며 또 다른 '영적' 허영심을 갖고 있지 않았나 돌아본다.
교회 식구들은 음식을 먹으며 자신이 갖고 있는 분노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깨달았다. 음식은 천상의 맛이었다. 마치 프랑스 궁전을 옮겨 놓은 듯한 맛이었을 것이다. 말로 풀거나 글로 풀어보면 정말 유치하고 사소해서 들어줄 수 없는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부아가 끓어오른다. 이런 분노를 만들게 한 주체에게 가서 아무리 내 고통을 이야기해도 풀어지지 않는다. 이럴 때는 오히려 여행을 가거나 다른 일에 신경을 돌리길 추천한다. 위대한 자연 경관을 보거나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면 예전 분노는 어느새 손톱보다 작은 일로 변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에서는 위대한 만찬이 그런 작용을 했다고 생각한다.
로렌스 장군은 마르티네에게 모진 말을 하고 헤어졌다. 사실 다시는 보지 않으며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떠나는 것은 비겁했다. 최소한 마르티네 당신을 마음을 다 받쳐 사랑한다고 진실을 이야기한 후 마르티네 의견을 듣고 정리했어야 한다. 로렌스 장군은 그저 이별한 선포한 후 마을을 떠났다. 다시 돌아와 화려한 곳에서 먹었던 음식을 만나 마르티네에게 자신이 가진 진심을 이야기할 용기를 얻는다.
바베트 또한 최선을 다한 음식을 대접하며 과거를 반성한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최고로 화려한 요리를 하는 주방장이었다. 그러면서 자신 요리를 먹는 사람들을 증오했다. 이들은 곧 그녀에게 적이었다. 그녀는 이런 화려한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반기를 드는 쪽에 섰다. 결국 귀족은 바베트 가족을 다 죽여버렸다. 결국 그들도 죽었다. 프랑스를 떠나 노르웨이에서 멀리 삶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깨달았다. 결국 내가 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내 예술 작품을 알아보고 손뼉 쳐주는 관객이었구나! 나는 알고 보면 내게 필요한 사람을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 했어. 알고 보면 내 경쟁자가 있기 때문에 발전할 때도 있다. 경쟁자 덕분에 살 수 있을 때도 있고. 적이라고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는 편견은 곧 죄악이다.
이 책을 읽으며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 생각났다.
결국 바베트는 음식을 위해 전 재산을 쓴다.
전혀 아깝지 않다.
자매에게 귀한 유대를 선물했다.
교회 사람들 분노는 사라졌다.
장군은 죽기 전까지 털어놓지 못할 줄 알았던 진심을 전했다.
그리고 바베트도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위대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돈은 그렇게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그들 영혼에 대한 사랑.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