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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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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를 염두 해 둔 건 요즘 일이다.
굉장한 배우들이 출연하나 미국 사람들에게 외면 받았던 작품‘ 써드퍼슨‘이란 영화를 보면서다.
한때 굉장한 작품을 만들어 떠오르는 작가 반열에 올랐지만 그 이후 겉멋이 들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있지 못했던 주인공.
그 주인공에 대해서 출판업계 종사하는 사람이 얘기하는데 이런 부분이 있더라.
˝이놈은 지가 코맥 맥카시나 된 줄 알아.˝
그때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가 코맥 맥카시구나!‘란 생각을 했더랬다.
언젠가 신혼 때 남편이랑 놀러 갔던 교보 문고에서
‘성경을 이을 대단한 소설‘이라는 광고에 휩쓸려 남편이 사서 읽은 이 책이 있기에 난 이 책을 같이 읽어보자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그 많은 코맥 맥카시 작품 중에 이 작품으로 미국의 노벨문학상이라고 하는 ‘퓰리처상‘을 탔으니
코맥 맥카시 작품 중에서도 손꼽는 작품이라는 건 뭐 말해 무엇하리.



결국 나는 이 소설을 ‘내가 발제했다‘라는 이유로 거의 피 토하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읽었다.
가장 책 읽는 속도가 빨랐던 ㅅㅎ언니는 내가 발제를 낸 이후에도 다 못 읽었다며 슬퍼했다.
동화 같은 밝은 책을 읽고 싶다는 회장 언닌 몇 페이지 읽다가 던져버리셨단다.

도대체 명작이란 기준이 무엇일까?
‘인기가 많은 책‘과 ‘좋은 책‘의 기준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오갔다.
이 책을 읽고 나(를 비롯한 다수)는 이렇게 기분이 별론데 많은 명사들의 극찬은 3페이지를 넘어서 책 표지 곳곳에 넘쳐나게 써져 있다.

또 이 답답한 글 더미를 옮긴이의 잘못으로 넘기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들 즈음..
아, ‘정영목‘ 교수님.
할 말이 없어진다.
영문을 필체 느낌 그대로 옮겨 놓으신다는 그분 말이다.
옮긴이의 글에서 보니 이런 부분은 있더라.

매카시의 삶이 그의 세계관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실제로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은 냉정하다 못해 독하다 싶을 정도다. 늘 우리가 상상하는 최악보다 한 걸을 더 나아가는 느낌이랄까.(중략)
쾌속 독서를 막는다는 점에서는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게다가 독자에 대한 친절에는 별 관심이 없는 번역자와 만났으니!), 그런 불편을 책 읽는 재미의 하나로 여기는 사람들은 오랜만에 보물을 얻은 듯한 기쁨을 느낄 것 같다. 좋은 작품이 다 그렇듯이 이런 점들이 모두 해석의 계기들을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326-327)

참 서론 길다.
이제 책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이 책은 ˝길˝이라는 제목답게 그냥 계속 글이 이어져 있다.
그 흔한 챕터도 없고 가끔 나누는 ‘1부, 2부‘ 이런 나눔도 없다.
따라서 목차도 없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이 글 내내 장면이 상상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매캐한 회색의 흙먼지 나는 느낌.
남편은 영화 나오기 전에 이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도대체 이 책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다니 이것도 놀랍다.
그 정도로 대단한 내용이 없다.

세상이 끝났다.
죽는 것 밖에 답이 없다.
그러나 살아남았다.
나에게는 아들이 있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남자의 아내는 죽음을 선택한다.
우리 가족 모두 죽자고 한다.
최소한 내가 아이와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당신은 버티자고 하지만 버틸게 없어. 쟤가 태어나던 날 밤에 내 심장은 뜯겨나갔으니까 나한테 지금 슬픔을 요구하지 마. 없어. 어쩌면 당신은 잘할지도 몰라. 내가 보기엔 미덥지 못하지만 그래도 누가 알겠어.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당신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거야.(68)

난 아내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아마도 여자의 본능은 그렇지 않을까 한다.
토끼만 봐도 그렇다.
토끼는 자신의 새끼에게 충분한 보호를 못 줄 것으로 판단되면 자기 손으로 새끼를 죽여버린다.
여자에게 아이는 그런 존재이다.
내 뱃속에서 나왔으니 나와 어느 정도 공동체로 묶여있는 존재.
이런 전제를 내리니 전에 법륜스님이 말씀하셨던
˝아이의 첫 3년은 무조건적으로 엄마의 몫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기간에는 온전히 아이는 엄마 손에 있어야 한다.˝는 그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고 본다. (물론 다는 세 돌 되기 전에 애 둘 다 기관에 맡긴 무능맘.)


살아있는 사람들은 식인종이 된다.
동물도 같은 종은 안 잡아먹는다.
정말 동물만도 못한 인간들이 됐다.
이런 세상에서 아빠는 모든 살아있는 것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려고 한다.
그런 아빠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아들은 세상의 따뜻함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던
오히려 같이 있으면서 마음의 안식을 주었던 노인.
우연히 들린 방공호에서 얻은 많은 음식을 가지고 다니게 된 두 부자.
노인을 보며 아들이 먹을 것을 나눠주자고 하면서 이렇게 같이 식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때 노인은 아버지에게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당신을 믿고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 그걸 가지고 어떻게 할까봐. 누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싫소. 내가 어디 있었다거나 내가 어디 있을 때 뭐라고 말했다거나. 그러니까 당신이 내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거요. 하지만 아무도 그게 나였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나는 누구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때에는 말을 적게 할수록 더 좋은 거요. 무슨 일이 일어났지만 우리가 살아남아 길에서 만난 거라면 우리는 할 말이 있을 거요. 하지만 우린 살아남은 게 아니오. 그러니까 우린 할 말이 없소.(195)
저 아이가 신이라고 하면 어쩔 겁니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난 이제 그런 건 다 넘어섰어. 오래 있었거든.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신도 살 수가 없소. 당신도 알게 될 거요. 혼자인 게 낫소. 그래서 당신이 한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오. 마지막 신과 함께 길을 떠돈다는 건 끔찍한 일일 테니까. 그래서 그게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거요. 모두가 사라지면 좀 나아지겠지.(196)

절망적인 시기에 아마도 이 종말 안에서 가장 오래 산 노인은 절망에 대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 해 주고 간다.
마지막 아들이 노인에게 먹을 것 한가득 주며 보낼 때조차 그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노인은 기성세대들의 어두운 측면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인이 이제껏 무얼 먹고 살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을 먹잇감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
아버지와 노인 둘 다 사람을 도대체 믿질 못한다.
사람을 믿지 않고 홀로 삶을 살아낸 것이 아버지와 노인 둘이 살아나갈 수 있었던 방식이다.
아버지는 계속 아들에게 ‘총을 손에서 놓지 말라.‘라고 주의를 준다.
세상은 너의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좀먹는 나쁜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부분은 비단 상황이 종말이 아니더라도 현대 사회에서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약하게 굴지 마. 남들이 너 우습게 본다. 너는 공부로 누구보다 우위에 서야 한다.

곧 아이는 좋은 사람을 만난다.
아들과 딸 게다가 강아지까지 있는 한 가정.
이 어두운 세상에서 가족들이 한마음이 되어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이들 부자보다 더 강한 희망을 가진 공동체를 만나 같은 길을 가게 된다.

정말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종말을 그렸단 생각이 든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매드맥스조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거기는 그래도 잘 먹고 잘 사는 지배계층도 있고 암모탈 밑에 있는 여자들은 화려하게 예쁘지 않나.
이런 상상하기 싫은 상황에 독자를 몰고 갔지만 그 안에서도 아주 약하고 약할지 모르지만 희망이 들어올 여지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정말 인간적이고 인간적인 이름도 없는 남자와 소년을 통해
무심한 언어로 얘기해주고 있다.
정말 불친절하고 무례한 작품이다.
칠흑같이 깜깜한 세상을 만든 다음 아주 가느다란 불씨를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전에 내가 읽고 불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는 ‘호밀밭 파수꾼‘과 이 책을 비교했을 때
먼저 이 책을 읽었다면 ‘호밀밭 파수꾼‘같은 소설은 정말 친절하고 귀엽기까지 한 소설 같단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ㅅㅎ언니의 말로 마무리를 해 볼까 한다.

‘우린 정말 퓰리처랑 안 맞나 봐.‘

다음 내가 발제한 소설이 ‘앵무새 죽이기‘다.
학창시절에 읽고 뭔 뜻인지 몰랐던 것 같은데..
(분명 너덜너덜한 내 독서 노트에 있을 거다.)
다시 읽으면 과연 좀 나아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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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 논어 1 - 옛글을 읽으며 새로이 태어난다 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1
심경호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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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읽는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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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13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논어 한 권 제대로 독파하면 한자능력검정대회 급수를 딸 수 있는 수준에 오를 겁니다. ^^

책한엄마 2017-07-13 21:07   좋아요 0 | URL
오!!@0@그런가요?
더욱 열심을 내야겠어요.
 
영상번역가로 먹고살기 - 미드, 영화를 번역하는 먹고살기 시리즈
최시영 지음 / 바른번역(왓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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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정보를 착착착 알려주는 유용한 책입니다.점수는 그냥 지극히 제 기준.영상번역가가 어떤일을 하는지 그냥 알고 싶어서 본 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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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마리몬드 우산 때문에 또 이렇게 적립금을 받기 위해 글을 쓰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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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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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읽히는 책이다.
아이들 영어 수업 보내놓고 40분 만에 읽었다.
편의점 인간을 읽게 된 계기는 임경선 작가님 트위터에서 읽는 책 목록으로 본 이후다.
일본 여행에서 이틀에 한 번꼴로 이 편의점식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이 일본 소설이 남 이야기가 아닌듯싶었다.


이 책 주인공 후루쿠라는 소시오패스다.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감정이 없는 여자다.
여동생 도움으로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에 대해 하나하나 코치 받는다.
그녀는 자신 정체가 밝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 자신만이 가진 노하우로 18년을 견딘다.
18살,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을 18년을 한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사회 안에 압력들.
그 사회에 안에 소속되기 위해 후루쿠라만이 가진 방식으로 노력한다.

여타 일본 소설처럼 깔끔하고 간결하면서 밍밍하다.
마치 미소 장국처럼.
약간 얼큰한 소시오 패스 사회 적응기를 찾는다면 좀 더 강한 스릴러를 가미한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추천한다.


후루쿠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잘 적응한다.
아르바이트는 계속할 수 있는 직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18년을 한자리, 그곳에서 자리를 지킨다.
잘 적응한다.
주위 사람 말투와 생활을 관찰하며 그들을 따라 하고 그들 방식대로 생각하며 
나름 소시오패스인 자신이 가진 부족한 공감능력을 채운다.
오히려 감정이 없는 그녀였기에 찰리 채플린이 만든 '모던 타임스' 안에 있는 기계같이 더욱 적응을 잘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로 사회 모든 면을 채울 수 없다.
소시오패스임을 감춘 후루쿠라에게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
이들 대화를 통해 주위 생각 없이 던지는 말을 통해 주인공 자신이 주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일본 드라마 '방랑의 미식가'는 38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후, 정년퇴직한 장년이 가진 '자유 적응기'에 대한 이야기다.
이에 반해 일반 사람과 다른 '성격 결함자'가 가진 '사회 적응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주인공은 사랑을 모른다.
그렇기에 억지로 사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유는 단 하나,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서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편의점에서 일한다.
꽤 오랜 기간 일을 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기초가 되어 이 책이 나왔다.
그렇기에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일하는 방식과 동료 직원을 보는 시선이 매우 사실적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보는 편의점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스트레스받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이 책 안에 있는 소시오패스가 어쩌면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주인공은 원래 감정이 없었다.
우린 감정이 없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주류를 강요하는 사회가 우리 감정을 앗아가는 게 아닐까?

책 안에 나오는 '혼활'(결혼하기 위한 활동)이란 언어가 야만적이면서도 구슬프게 들린다.
우린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게 아니라
결혼해야 평범해 보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뭔가 선후가 바뀐 잘못된 사회 안에 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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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07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취준생, 고시생들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항상 불안해합니다. 학원과 고시텔에서 시간을 보내야하는 삶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혼자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타인과 쉽게 어울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시오패스’라는 말이 나왔어요.

책한엄마 2017-07-07 15:48   좋아요 0 | URL
네-맞아요.서글퍼지네요.
이 사회가 사람을 각박하게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ㅠㅠ
비단 저 주인공 정서가 비정상이라서있는 일이 아닙니다.사회가 그렇게 비정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경각심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