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프로는 <혼자 산다>와 <고독한 미식가>다. 반면 제일 싫어하는 프로는 <슈퍼맨이 산다> 이다. 그렇다. 나는 세 아이를 키우는 전업 주부다. 지긋지긋한 육아를 굳이 티브이에서까지 보기 싫다. 혼자 사는 일 그리고 길거리를 배회하다 마음에 드는 식당에 훅 들어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고독한 일은 당분간 내게 없을 일이다.젖먹이 아이는 항상 나와 붙어 있는다. 두 아이는 방학. 아이고. 아기 이유식은 고사하고 두 아이 세끼 식사에 정신없이 어질러 놓은 걸 치우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버겁다. 슬픈 사실은 버거운 하루 중 나를 위한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나 없으면 살 수 없는 아이를 키우는 일은 거룩하다. 그 뿐이다. 내가 낳았으니 내가 책임지는 삶. 인정 욕구가 있는 사람으로서 천사나 성인이 아닌 보통 인간으로서 삶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그럴 때 집어 든 책이 바로 <길 위에서 읽는 시> 였다.이 책을 쓴 계기는 그렇다. 저자는 사랑하고 있었다. 여행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항상 같이 할 수 없었기에 시와 함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마음을 나누려 했다. 그 사랑은 어느새 신기루처럼 없어져 버리고 결국 남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읽으려 남겨 놓았던 시와 자신이 쓴 글 뿐. 그 글은 없어지지 않고 나처럼 글을 마음대로 오독할 독자에게 전해졌다.저자는 길 위에서 혼자다. 고독을 씹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썼을 그 시가 내게 묘한 위로를 주었다. 나는 외로움이 필요했다. 공허가 필요했다.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내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가 있음에도 그랬다. 저자 외로움은 내게 숨 쉴 구멍 같았다. 그 어떤 것도 너무 많으면 넘친다. 저자가 길 위에 있는 공허를 책과 시로 채우고 글로 뱉어내는 모습이 내겐 호흡과 같았다. 사람은 항상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가정을 택했다. 덕분에 나는 믿음직한 남편을 얻었고 나와 남편을 반반씩 닮은 아이들을 얻었다. 저자 선택은 자유에 가 있었다. 덕분에 작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곳을 다녔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 삶은 책이 되어 많은 사람이 읽고 공감하며 작가로 인정받았다. 우리 둘은 닮았다. 결정을 했고 포기를 했고 그리고 책을 읽는다. 나는 책을 통해 경험을 대신한다. 아이를 안고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그녀가 길에서 읽은 시를 같이 읊는다. 비록 우린 반대 편에 있지만 같은 시를 읽고 같이 느낀다. 저자가 생각한 그 슬픔과 서글픔에 공감하고 그녀가 얻은 환희에 함께 기뻐한다.“이번 생을 뜨겁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사랑을 하는 한 인생의 봄날을 살고 있는 거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