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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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을 읽다.


한 달 정도 책을 못 읽었다.
사실 읽긴 읽었지만 이렇게 감상문을 남길 정도로 깊게 읽질 못했다.
잡지 읽듯 머릿속에 들어가는지 생각도 안 하고 그저 쑤셔 넣었다는 말이 맞겠다.
글도 써지지 않고 쓸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한동안 친교 모임이었던 ˝개나리 문학당˝이 다시 시작됐다.
선정된 책은 바로 이 책,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는 책이다.
오랫동안 책을 안 읽어왔거나 머릿속이 어지러운 사람이라면 짧고 강렬하면서도 쉬운 소설 모음집인 이 책을 읽길 추천한다.
사실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다. 어쩌면 작가는 그걸 의도한지도 모르겠다.
몇몇 이야기는 문학당 식구들과 의견을 나누며 나름 여운을 즐겼다.
머릿속에서 신나게 허구 세상에서 놀았다고 해도 조금만 지나면 허공에 다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이 공간에 내가 생각했고 이해했던 이 이야기 조각들을 정리해 놓을까 한다.


아주 짧은 40개 이야기

어느 신문에서 이기호 작가에게 칼럼을 제안한다.
소설가인 이기호 작가는 가르치는 말투를 내재한 칼럼을 거절하고 짧은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
그렇게 2년 정도 쓴 ˝아주˝ 짧은 소설이 모여 한 권으로 만들어졌다.
제목 덕분인지, 표지 때문인지, 가독성 있는 이야기가 대중 입맛과 맞아서인지 모르겠지만, 4만 부 이상 팔리는 나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내가 즐겨 보는 북플 식구들 중 나름 좋게 읽은 사람도, 너무 짧은 글이라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비평도 있다. 나는 둘 다 맞는다고 본다. 숨을 덜 쉰 느낌이라고 할까. 그럼에도 이야기꾼인 작가가 40가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겹치지 않고 찰지게 표현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표현은 맞지 않고 단지, ‘짧아 아쉽다‘ 정도다.
안에 든 이야기들
아마도 편집자가 이야기를 이렇게 나누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에게는 사소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생활 속에서 스며나오는 그런 상황을 그린 ˝우리에겐 일 년, 누군가에겐 칠 년˝
-태연 때문에 고소한 마음만은 순수한 악플 지킴이 중년 이야기(벚꽃 흩날리는 이유)
-밥 얻어먹으려 친구 고향집에 따라갔다가 사업 자금 얻으려는 들러리가 된 이야기(낮은 곳으로 임하라)
-모태솔로인 노총각이 8살 연하 경리 사원과 연애하지만 동물원에서 서로 견해 차이만 깨닫게 된 씁쓸한 이야기(동물원의 연인)
-메르스 바이러스와 관련된 웃지 못할 비행기 해프닝(타인 바이러스)
-베란다에서 없어진 엄마(아내의 방)
-사회와 단절된 사람이 우연히 보험 영업 FC 전화를 받고 만나려는 (그녀와 마주한 어느 오후)
-바캉스철에 바다에서 놀 겸 용돈도 벌 겸 주차 아르바이트를 했다가 상처뿐인 경험을 갖게 된(비치보이스)
-아파트 문제에 앞장서다 결국 서울시 의원 선거에 나간 친구. 결국 아파트도 잃고 선거도 낙선된.. 그렇지만 포기 못하는 권력욕(출마하는 친구에게)
-자살 시도를 하려는 중 마주한 어느 고등어 장사 아저씨(미드나이트 하이웨이)
-혼자 사는 어머니와 죽은 애견 봉순이 이야기(우리에겐 일 년, 누군가에겐 칠 년)
-사회 운동을 포기한 건 사타구니 습진 때문이라는 어이없는 변명 (제발 연애 좀 해)
-제사 한 번을 위해 남편 제삿날 죽기 원하는 할머니 (제사 전야)

반대로 사소한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아아˝
-교통사고로 죽은 후 304 호 엄마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된 주인공(불 켜지는 순간들)
-아들이 축구에 소질이 있는 줄 알았던 아버지(달려라 아들)
-대리기사와 대곡역에 관련된 이야기(그러게나 말입니다.)
-1302호 층간 소음 때문에 생긴 오해 (한밤의 뜀박질)
-어느 노숙자 이야기(도망자)
-어느 지하철 변태 이야기 (너는 카프카 나는 야노호)
-치킨 배달원은 엘리베이터 금지인 이상한 아파트 (아파트먼트 셰르파)
-처음 아버지는 유기농, 무농약 농사를 지으려 했지만.. (두고 봐라)
-축구를 하고 이벤트를 했지만 결국.. (말처럼 쉽지 않네)
-하루 아버지가 세 아이를 양육하며 생긴 일(개굴개굴)
-왜 그녀는 웃었을까?(웃는 신부)
-산모보다 더 큰 소리로 고함지르는 아빠(아아아아)
고통 다음에야 비로소 가족의 이름을 부여받는 거야.
-어버이날 생일인 비극을 맞은 형 이야기.(5월 8일생)

팍팍한 사회를 반영한 이야기를 모은 부분 ˝좀 쉬면 안 될까요?˝
-티브이에서는 분명 쉽다고 했는데.. (초 간단 또띠아 토스트 레시피)
-친구가 한 행동을 눈빛으로만 알아채야 하는 어려운 미션(눈으로 말해요.)
-우산으로 아버지가 회사에서 맞고 있는 모습을 가려준 엄마에 대한 추억(봄비)
-학생 상담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어떤 상담)
-자신 소설책이 팔리는지 보러 간 소설가. 누군가 자신이 쓴 책을 훔친다면?(마주 잡은 두 손)
-고집스러운 예술가 길을 택한 사촌. 죽음 후 알게 된 진실.(이젠 애쓰지 않아도 돼요.)
-고시원에서 제정신이 아닌 듯한 신입 입주자에 대한 이야기(사로잡힌 남자)
-응급실 초보가 얻은 고수의 지혜. 그 뒤에 있는 슬픈 이면(소용없다는 말)
-참으로 슬픈 아들을 위한 투자(최후의 흡연자)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될까?(이게 누구야)
-외국인 눈으로 본 우리나라 모습.(데이비드 로지의 연말 일기)
-허세가 인생인 아버지 이야기 (입동 전후)


가짜가 진짜보다 나을 때가 있다.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진짜는 아닌 이야기가 사십 개 들어있다.
작가 전생에 혹시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왕의 아내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아마도 이 분은 매일 밤에 이야기 열 개도 뚝딱 지어낼 수 있을 능력을 갖고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모든 이야기가 모두 각자 개성을 갖고 태어났을까?
그렇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허무맹랑하지 않다.
어딘가 수다 떨면서 들었을 에피소드다. 그렇기에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다.
그렇다고 무시할 만큼 가볍지도 않다.
제목은 신의 한 수다.
웬만한 일에 신경도 안 쓸 현대인이 잠깐 눈 흘기며 관심 가질 만한 이야기.
그 절묘한 지점을 찾아낸 작가 안목이 대단하다.
현실이 설명 못 할 정도로 피곤할 때 이 책을 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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