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악인, 유다 - 누가 그를 배신자로 만들었는가
피터 스탠퍼드 지음, 차백만 옮김 / 미래의창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금기에 손을 대다.


예전에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그 책은 충격 그 차체였다. 내가 생각했던 '신'존재를 비틀어 버린 이야기. 조르바가 가진 원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에 대해 읽었다. 내가 생각하는 윤리적 틀, 그 이상에 신이 존재하는 걸까? 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을 생각해야겠다는 나름 집요한 호기심이 꿈틀거렸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을 때 만난 책이 바로 이 "예정된 악인, 유다"라는 책이다.

 나는 천주교 모태신앙을 가졌다. 남편을 만난 후 장로교로 옮겼지만 하나님을 믿고 예수 부활을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주장하는 바와 반하는 이런 변호하는 글을 읽는 게 과연 옳은가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그런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어왔을 때, 영화로 만든 성경 365를 만났다.

극 안에 있는 유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제자였다. 전지전능한 예수를 믿고 그가 하는 일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로마군이 예수를 잡아가더라도 기적을 행한 예수가 많은 이 앞에서 하나님 아들임을 증명하리라 확신한다. 힘없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본 후, 죄책감과 좌절에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곳에서 생각하다.


저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희생당하기 전 숨어있었던 곳에 가서 그 당시를 추억한다. 이곳에서 둘은 어떤 일이 있었을까? 저자는 바로 그 지역에 가서 둘이 어떤 생각을 하며 일을 행했을까에 대해 추론한다. 이후 유다에 대한 그 당시 문헌을 모두 갈무리하여 이들 사이에 있는 모순과 공통점에 대해 분석한다. 결국 그는 이런 결론을 낸다.

문맥상 유다의 배신은 예수가 세속적인 것과 천상의 것 간에 존재하는 장벽을 허무는 과정을 돕는 행위로 봐야 한다.(149)
악마, 유다

유다는 이제껏 악인이었다. 남한 적국은 북한이다. 냉전시대 미국 적국은 소련이었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군 적군은 독일과 일본이었다. 이렇듯 선에 반하는 인물은 유다라는 정의를 그렇게 세워왔다. 유다와 관련된 모든 행동, 직업, 성향 등은 악하다는 의미가 가득했다. 당시 유대인은 외부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고리대금 밖에 없었다. 유다가 돈을 다뤘다는 이유로 고리대금과 돈에 관련된 모든 직업이 죄악시된다. 이는 유대인이 직업에 대해 자유를 갖게 된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런 생각은 로마 가톨릭 재단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유다는 코가 큰 우스꽝스러운 외모에 괴팍한 성격을 갖고 큰 성기를 가진 변태 성욕자같이 묘사됐다.


희생자, 유다

'유다'라는 이름은 '유대인'을 뜻한다. 그렇기에 유다가 범한 죄악에 대한 화살은 모두 유대인에게 향한다. 정작 희생당한 예수 또한 유대인이었음에도 그랬다는 건 아이러니다. 이제껏 성격이 원하는 대로 악에 대한 대척점에 서 있던 '유다'를 통해 유태인을 혐오하는 공공연한 문화가 정당화된다. 종교가 하라는 말은 실로 무서운 말이었다. 그 말이 결국 인종 차별까지 몰고 온다. 

 오히려 종교에 대한 의문을 통해 계몽주의가 도래한다. 이 시대에 과학이 발전한다.
중세 후기의 억압적 사상에서 벗어나면서 과거에는 상상만 하던 것이 현실이 되었고, 막연히 두려워하던 것들은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291)

유다는 결국 가톨릭에서도 점차 의미 있는 인물로 변화된다. 그가 행했던 일은 절대악이 아니다. 예수를 위한 일이었지만 너무 섣부르게 생각하고 결단을 내린 무지가 비극을 불렀다.


위험하지만 해야만 하는 생각

우리나라 국민은 배신당했다. (나는 뽑지 않았지만) 다수결로 뽑힌 대통령이 어이없는 와 책을 쉼 없이 저질러 탄핵에 이르렀다. 예수를 팔아버린 유다와 힘들 때 믿었던 사람(최순실)에게 나라(국고)를 팔아버린 대통령. 이는 실로 비슷한 점이 많다. 

 옛날 프랑스 혁명 때는 단두대가 있었다. 시민 뜻을 거스른 많은 귀족을 비롯한 왕실 사람이 단두대 이슬이 됐다. 그 시대 때 행한 결론을 과연 지금 이 시대에 행하는 게 옳을까? 피는 피를 부르고 분노는 분노를 부른다. 

 이 책은 시종일관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유다로 인해 왜곡된 유태인들. 그로 인해 자행된 끔찍한 사람들 정당화. 무고한 유태인 드레퓌스를 구하고자 글을 쓴 에밀 졸라는 결국 이유 모를 죽음을 맞는다. 과연 우리는 결코 유다 입장이 되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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