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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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스크루지 영감이 아닌,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날에는 스크루지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봤다.
너무 인색해서 이웃에게 미움을 받는 할아버지.
결국 크리스마스에 스크루지 영감은 꿈을 꾼 후 마음을 바꾼다.

이번에는 고리오 영감이다.
고리오 영감 또한 인색함으로는 스크루지 못지 않다.

북클럽에서 읽지 않았다면 평생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 꽤 책을 읽는 내가 올해 가장 읽기 힘들었던 책이다.
속이 답답하고 힘들었다.
100년 전에 만들어진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가
한국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
           

주인공 으젠 라냐스티냐크는 파리 대학 법대생이다.
아직 학생이라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촌 누나가 사교계에서 유명한 덕분에 같이 사교계에 들어가 프랑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층 모임(살롱)에 드나든다.
파리에서 권력과 부를 가진 계층은 부부간에 애인을 갖는 게 공공연하게 당연하다 여긴다.
이 사교계에서는 한마디로 상대 집 안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서로를 너무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리해서 겉을 치장하고 화려하게 꾸민다.
타인이 돈이 없음을 뻔히 다 알고 있음에도 나는 괜찮다는 정당화를 온몸으로 대신한다.

고리오 영감은 시대적 행운으로 밀가루로 엄청난 수익을 얻은 사업가다.
그는 한때 많은 돈을 벌었다.
예쁜 딸 둘을 부와 권력(백작)이 있는 집에 시집을 보내며 많은 지참금을 보낸다.
딸이 사교계에서 화려한 치장이 가능하도록 돈을 아낌없이 준다.
정작 고리오 영감은 한없이 가난해진다.
요즘으로 치면 '고시원'과 마찬가지인 보케르 부인 하숙집에 머문다.
그곳에서 으젠과 고리오 영감이 만난다.

처음 으젠은 가난한 고리오 영감 겉모습을 보며 비웃는다.
사정을 알고 고리오 영감 둘째 딸과 사랑에 빠지며 곧 동정 어린 마음을 갖는다.
유명한 사기꾼 보트랭이 하숙집 다른 이웃에 의해 경찰에 잡힌다.
고리오 영감은 끝까지 딸에게 남은 재산까지 다 뺏긴 후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장례식까지도 두 딸은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장례를 치른 으젠은 분노한다.
예전 느낀 사랑과는 다른 감정으로 고리오의 둘째 딸을 만나러 간다.

으젠, 둘째 딸, 고리오 영감.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고리오 영감이 가진 사치와 으스대는 마음.
그 마음은 온전히 딸 둘에게 향했다.
고리오 영감에게 딸은 소유물이었다.
자신이 조종하고 딸이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니었다.
그는 딸들에게 열린 통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것은 희생적인 사랑이 아니다.
딸과 아버지는 똑같았다.
오로지 자신과 관련된 부분에서만 돈을 쓴다.
고리오 영감이 딸에게 아낌없이 돈을 퍼부은 이유는 딸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잘 아는 딸들은 아버지에게 눈부시게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남편과 애인에게 온 재산을 빼앗긴다.
결국 하녀에게 돈을 빌릴 정도로 자신 씀씀이를 줄이지 못하는 '애'수준에서 멈춘다.
왜 딸은 몸만 클 수밖에 없었을까?
고리오 영감이 그렇게 키웠다.
그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건 자업자득이다.

내 인생은 내 두 딸에게 있다 이 말이오.
           

어제까지만 해도 딸은 우리 것이었고, 우리는 딸에게 전부였지요.매일처럼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지 않아요?

사기꾼 보트랭.
그는 미꾸라지처럼 범죄를 저질러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닌다.
보트랭은 으젠과 친해지며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나눈다.
이 책 안에서 미쳐가는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범죄자가 제일 지혜롭다니, 아이러니다.

세상은 늘 이런 모양이었네. 도덕군자들도 이 세상을 결코 고치지 못할 걸세. 인간은 불완전하지. 그래서 가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선자이기도 하다네. 그런 경우에 바보들은 품행이 단정하다느니 안한다느니 하고 떠들어대는 법이야.

이 책은 으젠이라는 앞날이 촉망한 법대생 성장기(?)다.
보트랭이 프랑스 사회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보트랭이 추천하는 방법으로 부자가 된 여자와 결혼을 시도한다.


마음이 동하지 않아 으젠은 이내 포기한다.
나름 진실한 사랑이라 느낀 고리오 영감 둘째 딸 정부가 된다.
둘째 딸과 관계를 갖고 난 후 그는 이내 깨닫는다.
자신은 돈보다 둘째 딸이 갖고 있는 '미적 아름다움'을 탐했고 둘째 딸은 남편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자존감 치유'를 위해 자신을 사용한다는 사실 말이다.
결국 보트랭이 말한 시니컬한 충고가 옳았음을 깨닫는다.

아, 머리 아파.


이 책을 읽고 우울했다.
왜 우리나라 상황과 이 책 속 상황과 어쩜 이리 똑같을까?
으젠 라스티냐크를 요즘 핫한 인물인 '우병우'.
그가 서울대 재학 시절 신림동 하숙집에서 겪은 이야기라고 각색해서 영화나 드라마 한 편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우습다.
나도 인간이니까 우습다.
그런데 참 웃긴 게 굳이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속물근성을 꺼내어 느끼기는 싫다.
내가 화장실에서 내놓은 내 분비물.
분명 5초 전까지 내 몸속에 있었지만 굳이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것과 같은 원리 아닐까?

그래도 필요한 일이다.
응가가 빨간색인지, 녹색인지, 검은색인지, 황금색인지 알아야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내 응가를 보는 느낌이다.
나는 도대체 어떤 응가를 갖고 있는가?
굳이 보기 싫지만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내 건강 상태.

어떻게 이 리뷰를 끝내야 할지 난감하다.
이 책 결말도 참 난감하다.
으젠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다시 되뇌어 본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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