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정상입니다
하지현 지음 / 푸른숲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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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원 ‘생활기스 상담소‘ 강의록
<도시 심리학>이란 책으로 알게 된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님. 이 분이 굉장히 진보적인 곳, ‘벙커원’에서 강의를 하신다고 했다. ‘생활기스 상담소’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 강의가 모아져서 책으로 나왔다. 강의 들면서 ‘내 이야긴가?’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문자화되어 다시 한 번 보게 되니 더 좋다. 말로 들을 때와 또 다른 깨달음이 온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점은 내가 생활에서 느꼈던 버거움 들이 나만의 문제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가끔 내 삶이 버거워 힘들어 하는 것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 심리적으로 ‘조금’ 힘들 때 이런 저런 사례들을 보면서 교수님이 ‘괜찮아, 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심각한 일 아니야.’라고 토닥여주는 느낌이다.
내가 왜 무리 안에서 피곤한지에 대한 내용.
동양인들이 흔히 갖는 거리감, 어딘가 소속돼야 할 것 같긴 한데 소속되어 있으면 또 힘들고 기 빨리는 것 같고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아. 왜냐하면 내가 약하거든. 그래서 강한 집단에 들어가면 그 집단에 휩쓸려가지고 내가 아닌 것 같고 뭔가 내가 막 소모 당한다는 느낌을 경험하게 돼요.(99)
뭔가 내가 우울할 때 ‘병인가?’라고 생각하며 함부로 상담을 하지 말라는 경고도 들어있다.
제가 그래서 섣부른 상담 같은 거 함부로 받지 말라 그러거든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어요. 이게 세무조사 같은 거예요.
상담하는 분은 ‘봐, 네가 이래서 그런 거야.’ 이렇게 얘기해요. ‘너의 트라우마는 이런 거야. 너의 문제는 이래서 이런 거야.’ 그럼 내일도 똑같은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저 오늘 하루 기분이 나쁜 것일 뿐이지도 모르는데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걸 증명하게 돼요. 본의 아니게.(112)
‘나는 왜 자꾸 투덜대지? 이 심리의 근원은 뭘까?’라고 항상 궁금해 했던 부분도 명쾌하게 설명해 주신다.
짜증이란 저강도 분노예요. 누가 톡 하고 건드리면 바로 팍 발산해버리고...누가 건드리기만 해봐! 하는 상태죠. 이렇게 자꾸 짜증이 나는 자신이 미우니까 화내고, 돌아서면 바로 후회하고 자책하고, 그러니 물이 확 끓어오르는 순간이 반복되는 거죠.(155)
내 식탐에 대한 부분
이게 우리가 갖는 중독의 기본 메커니즘입니다. 이분은 여기에서 먹는 것으로도 갔어요. 먹는 게 묘한 만족감을 주거든요. 일단 당 수치를 올라가니까 뇌가 화학적 만족을 얻어요. 그래서 새로운 악순환이 만들어집니다.(162)
강의를 들으면서도 많은 공감이 갔던 부분은 바로 여기다. 이 부분이 교수님과 내가 참 많이 닮아서 내가 오히려 교수님을 좀 불편하게 바라보는 구나..라고 느꼈던 부분이었다.

사람에 따라 최적의 거리라는 게 있어요. 사람마다 자기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거리가 좀 먼 게 좋고, 어떤 사람은 가급적 가까운 게 편안해요.
흔한 예가 말을 놓는 거예요. 성인이 된 다음에 사회에서 누굴 만나면 말 놓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두 번 보면 바로 나이 물어본 다음에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하고 소주병 따르면서 한 손으로 받으래요. 반대로 1-2년을 만나도 서로 존대하는 게 편한 사람도 있어요. 그렇다고 거리를 두겠다는 게 아니라 그게 예의이고 편안한 거죠. 지킬 건 지키면서 지내는 게.
열심히 이 강의를 들으며 느껴지는 교수님에 대한 뭔가 모르는 불편함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한 후 난 알았다. 하지현 박사님과 내가 좀 심리적 거리감 같은 게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과 말 잘 못 놓고(남편은 거의 컬쳐 쇼크. 남편 이후로 말 놓으면 더 친해지는 줄 오해하고 내 리듬 깨고 말 짧게 했다가 끊어진 인연도 꽤 됨. 그냥 나답게 살자는 교훈을 남긴 에피소드.) 무리 안에 완전히 끼지 못하고 좀 아웃사이더처럼 있는 게 편한 그런 사람. 아마도 나에게 있는 그런 면이 하지현 교수님에게 보일 때, 거울로 내 얼굴에 난 뾰루지를 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 기가 빨린다는 분.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어쩌면 엄마랑 내가 자주 싸우는 이유도 이거다. 내가 무슨 얘기만하면 체력 안 되는 엄마는 신경질만 낸다. 하지현 교수님의 말을 통해 내 입장을 밝힌다.
이런 분들에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상대방이 당신에게 해줬으면 하는 방식대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지나치게 친절한 금자씨 같은 분들이 있어요. 남이 너한테 해주길 바라는 만큼 너도 남한테 해주면 돼. 이런 말 많이 하죠? 그걸 공감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이 나한테 해주길 바라는 건 내 입장이고 상대방은 전혀 다른 거 원할 수도 있거든요. 그건 착각이에요.
강의를 들으며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은 위안을 얻었다. 현대 사회를 살면서 이 세상에 부딪히면서 나만 상처 받는 게 아니구나.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상처를 받으며 ‘생활 기스‘를 얻고, 혹시 이 흠이 병원에 가서 약을 발라야 낳는 것인지 나처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세상에서 살아내느라 지치고 힘들어서 무기력해지거나 혹은 질리거나 혹은 짜증이 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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