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연애할 때 - 칼럼니스트 임경선의 엄마-딸-나의 이야기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이건 내 이야기잖아?
시중에 참 많은 육아 에세이가 있다.
내 애 키우기도 바쁘고 또 다른 아이 키우는 것 궁금하면 주위 아이 친구 엄마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것도 부족하면 육아 카페와 블로그를 이용하면 쉽게 볼 수 있다.
임신했을 때만 해도 ‘아빠 어디 가‘란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아이를 키우고 내 힘든 일에 갇히다 보니 ‘슈퍼맨이 돌아왔다.‘나 ‘오마이 베이비‘같은 프로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순전히 ‘임경선‘이라는 작가에 대한 궁금함 때문이다. 쉼 없이 책을 내고 잡지에 칼럼을 쓰면서 트위터에 아이 키우는 일을 쓰는 사람. 누가 봐도 ‘슈퍼 우먼‘. 안 그래도 상담 코너에서 ‘캣우먼‘을 담당했다고 한다. 물론 ‘어떻게 살아라.‘류의 문제점 때문에 좋은 평가만 있을 수 없다. 그만큼 ‘글‘로 인정받는다는 방증이다.
이 작가를 예전에 열심히 듣던 팟캐스트
서천석의 ‘아이와 나‘를 통해서였다. 자신이 지은 책 중 가장 마음에 든 책으로 이 에세이를 꼽았다.
궁금한 마음에 책을 폈다. 이 안에는 쉽지 않게 얻은 딸과 그리고 엄마로서 힘들게 버티며 아이에게 힘을 얻는 한 여자이자 엄마인 작가가 있었다.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엄마이자 여자이고 그 이전에 참으로 어설픈 사람.
정말이지. 어른이 되어갈수록, 학교에서 벗어날수록 나아지는 일 중 하나를 꼽자면, 원한다면 친구를 굳이 안 사귀어도 된다는 것이다.(153)
어렵다. 인생.
남이 사는 건 다 쉬워 보인다. 나만 힘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저자는 세 번에 걸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그래도 서른넷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힘들게 딸을 갖는다. 딸을 갖기 전 쌍둥이를 유산한다.

갑상선암으로 투병할 때 엄마가 잠깐 방문해 서운했다. 몇 년 후 둘은 달라진다. 엄마는 대장암으로 마지막을 준비한다. 가벼운 암이기에 엄마는 언니 출산 소식에 들떠 환자인 딸에게 초밥을 권했다. 대장암에 걸린 엄마는 뒤늦게야 그 때 얼마나 딸이 서러웠을까 눈물을 흘린다. 언제나 엄마에게 부담주기 싫었던 저자지만 그 말을 듣고 뼈만 남은 엄마에게 ‘정말 화가 났었다.‘며 칭얼댄다. 이내 죄책감을 갖지만 다시 생각한다. 이제 딸인 내가 딸로서 엄마에게 의지해 원망하는 시간도 마지막이란 사실을. 이 내용을 보며 참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장 못 견디게 힘들었던 것은 더 이상 엄마와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도 못했고, 묻고 싶은 것을 다 묻지도 못 했다.
그녀가 내 나이였을 때 어떤 꿈과 희망이 있었는지, 어떤 체념과 지옥을 겪었는지 별로 아는 것도 없이 우리는 이별하고 말았다. 원체 타고나길 말수가 적으니 수다스러운 엄마가 되기는 글러먹었지만 그래도 딸과의 시간이 소중하고 유한함을 알기에 이렇게 책으로나마 내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221)
저자는 딸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 아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딸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한다. 나 같은 딸이면 얼마나 괴로운 삶을 살까 걱정한다. 딸을 낳아보니 그렇지 않다. 자신을 분명 닮았지만 멋있고 시크한 딸을 본다. 이제까지 자신이 그리 못난 사람이진 않다는 사실을 딸로 인해 깨닫는다.
아무리 봐도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은 바로 가급적 아이가 가진 운명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것인 것 같다.(184)
딸인 자신을 벗고 엄마가 되면서 저자는 한층 성숙한다. 이를 글로 승화했다.
엄마가 딸에게
저자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자신 말고 엄마는 두 명 더 자식을 키워야 했다.
게다가 엄마는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서 모르는 곳에서 억척스럽게 적응해 나가야 했다.
그렇기에 속 깊은 작가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힘듦을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엄마는 ‘잘 알아서 하는 똑똑한 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 마음은 항상 공허하고 외로웠다.
저자 혼자 날카로운 사회 안에서 바람을 혼자 맞고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작가는 딸에게 말한다.
굳이 삶 속 힘든 일에 노력하지 말라고. 자신 감정을 거부하면서 억지로 삶을 살아가지 말라고 전한다.
이 말은 저자 딸이 아니지만 나에게도 많은 울림을 주었다.
나는 억지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가르치진 못 했다. 시도도 안 해보고 거부하는 것은 구슬릴 필요가 있지만 익히 경험하고 나서 안 맞는다 싶은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어른이 되면 어차피 싫어도 잘 맞는 척해야 될 때가 허다한데 미리부터 위선을 연습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인간관계에선 애써 노력하지 않는 게 늘 최선이라 생각해왔다. 억지로 노력하는 순간 무리하게 되고 스트레스가 생기고, 그렇게 되면 타인과의 인간관계 이전에 나 자신과의 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하니까. 그런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그 무엇도 줄 수 없다.

다만 ‘싫은 건 싫다‘할 때의 기본 원칙은 있다고 알려주었다.
첫째, 싫다고 해서 상대를 물리적으로 못살게 굴어서는 안 된다.
둘째, 상대도 나를 싫어할 수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셋째, 어느 우연한 기회에 사이가 좋아질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은 늘 열어놔야 한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내가 먼저 웃으며 손을 뻗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면서 애써 미소 지으며 ‘우리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야지‘라고 말을 타이르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힘겨운 인간관계나 무리한 우정을 수년간 억지로 유지하다, 상처 어린 분노만 남아 나중에 터져버리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일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려고 무리해서 힘든 관계를 유지하려는 습성은 조화로움에 대한 강박에서 비롯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234-235)
가끔 힘들 때 꺼내보고 싶은 책.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참 차가워 보였다.
그럼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마니아라니- 이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 글을 읽고 낸 책 중 내가 아는 책만 세 권이다. 아무래도 그래서일까?
나는 왜 무라카미 하루키가 싫은지에 대해 생각하다 ‘유레카‘를 외쳤다.
무라카미 하루키 글을 읽고 불편한 이유는 내 속에 잠재되어 있는 ‘자기 혐오‘다.
‘무라카미 하루키‘랑 나는 똑같은 성격 옷을 입고 살아왔다.
그래서 ‘글이 쿨하다 못해 매정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 작가에게 영향을 받은 임경선 작가 글을 읽으며 깨달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 분신. 내 안에서 새로운 탄생을 책임지는 일은 다르다.
차가움 속에서도 ‘모성‘ 이란 따뜻한 마성을 선물한다.
그래서 작가는 자기 책 한 권만 무인도에 들고 갈 수 있으면 이 책을 들고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세상이 두려워 속으로 숨고 싶을 때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낼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엄마는 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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