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 기억은 언덕 밑에 보이는 시위 모습이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왜 부모님은 이런 곳에 살까? 항상 나는 궁금했다.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이상한 힘에 이끌려 언덕 밑에 보이는 그 학교에 들어갔다. 대학 정문에 나갈 때면 내가 내려 보고 있었던 그 곳이 보인다. 이제 더 이상 주택은 없고 아파트로 변했다. 그곳을 가끔 바라보며 옛날 기억에 잠긴다. 다시 안 오겠다고 다짐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가고 난 다시 이곳에 돌아왔을까? 내가 내린 결정임에도 알 수 없는 힘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그런 내 마음을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는 책 속 주인공 강노인에게 봤다. 강노인은 어쩌면 나다. 왜 돌아왔는지 알지 못한 채 예전에 살던 그 곳으로 돌아온다. 죽음을 감수하고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강노인은 죽음을 앞두고 몸을 쉴 공간으로 예전에 머슴으로 살던 주인집을 선택한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는다. 강노인 빼고 다 아는 사실이다. 누구나 강노인이 금지한 뒤뜰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 강노인은 마을 사람을 싫어한다. 직원만이 강노인 곁에 있을 뿐이다. 뒤뜰에 마을 사람이 들락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분노한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을 사람 출입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강노인은 복수를 하고 싶었다. 나도 그렇다. 나를 우습게 여기거나 업신여겼던 사람을 생각하면서 성공을 꿈꾼 적이 있었다. 그 사람 앞에서 성공한 나와 어려움에 허덕이는 상대가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우쭐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분노는 신기한 힘을 내게 했다. 공부 못한다고 놀리는 친구 모습이 감기는 눈을 뜨게 했다. 눈이 나빴을 뿐인데 글자를 못 읽는다며 학생 앞에 혼냈던 선생님을 생각하며 밤새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얻었다.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물론 공부를 잘하고 우수한 학생이 됐다는 건 내 자신에게 좋은 일이다. 그 이후에는 오히려 허무함이 몰려왔다.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날 놀리고 우습게 여기던 아이들이 괴로워하지 않았다. 선생님도 눈이 나쁜 것을 오해했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그 뿐이었다. 내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는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강노인이 성공해서 돌아왔음에도 왜 주위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여기까지 읽고 의아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을 배척하고 혼자만 갇혀 지낼 것이라면 왜 굳이 돌아왔을까? 아마도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나처럼.강노인은 아버지를 사고로 잃는다. 주인집 딸이 그네를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에 아버지가 나무에 그네를 달았다. 나무에 떨어진 아버지는 숨을 거둔다. 그 후 강노인은 아버지 죽음을 주인집 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노를 마음에 안고 돌아와 복수를 하리라 생각하며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살아간다. 그래서 강노인은 큰 성공을 했다. 돈을 벌었지만 병을 얻었다. 이후 번듯한 부자가 되어 주인집을 자신이 차지한다. 그렇지만 나와 같았다.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허무했다.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었다.주위 따뜻한 마을 사람 관심을 귀찮아한다. 그저 자신을 가만히 놔두길 바란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자신이 죽기 전 원하는 일을 다 하기 위해서는 주위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강노인이 마음을 열어야 하는 일은 필연이었다. 강노인은 어릴 때 자신과 똑같은 성향을 가진 ‘성훈’이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상처를 치료한다. 마지막으로 주인 딸과 원망도 직접 만나 오해를 푼다. 책 속에서 치매로 마음만은 어린 아이가 된 주인집 딸 송이와 강노인이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으로 끝낸다. 책은 끝났지만 한동안 책을 덮지 못했다. 이 책 뿐 아니라 내 삶에도 겪는 그 아련함 때문이었다.우린 보통 자신 입장에서 오해를 쌓고 살아간다. 강노인이 평생 안고 살던 분노는 오해였다. 그는 사람 마음을 잘못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내 입장에서 모든 사람을 부정적으로 본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내 감정이 우선이 되어 오해한다. 생각보다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어렸을 때 본 대학, 그리고 다녔던 대학, 이제는 내 어렸을 때 나이인 내 딸을 데리고 그곳에 갔다. 신나게 뛰어노는 딸을 보면서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매캐한 연기가 싫어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그곳을 다시 찾아오는 나를 보며 신기했다. 좋은 추억이 매캐한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았나 보다. 강노인처럼 말이다. 강노인 또한 주인 딸, 송이와 행복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 지병을 가진 아버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만 없더라도 강노인이 가진 어린 시절을 그토록 슬프진 않았을 텐데. 그래도 다시 돌아와 즐거운 추억을 찾은 강노인을 보며 나 또한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렸을 때 뛰어놀던,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거닐던 캠퍼스를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딸을 보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