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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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이, 97세

 

 시할머니 연세가 올해 97세이시다. 몇 년 전만 해도 많이 정정하셨다. 요즘 하루하루 다른 모습을 보이신다. 식사를 하셨지만 뜬금없이 당신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않았다고 혼내신다거나 무얼 하면 살면서 처음 했다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신다. 처음 했고 처음 봤다는 것들이 불과 30분 전에 보고 먹었던 건데 말이다. 글씨는커녕 말씀도 제대로 못 하신다. 

  백 년을 살면서 글을 쓰는 것을 떠나 제대로 말하고 생각할 수만 있다고 해도 대단한 일이다. 물론 그전에 백 년 가까이 산 사람조차 흔치 않다. 이 정도 살아냈다면
걸어 다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맑은 정신으로 자신 나이에 대해 듣는 일은 쉽지 않다. 내게 이 책은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었다. 이 분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하지만 백 년을 지성인으로 살아온 이야기는 정말 매력적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의심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정정하신 시할머니조차 그 연세에 정신이 흐려지셨다. 그 연세에 글을 쓰는 게 가능할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글을 읽으면서 확신했다. 아, 저자가 진짜 그 연세 분이시다. 확신한 이유 또한 할머니 때문이다. 같이 대화하면서 뜬금없이 나오는 젊은 날 추억과 자랑스러운 일에 대한 무용담. 시할머니 대화방식이 이 책에 그대로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듯 끊임없이 사유했던
저자의 시대에 대한 세련된 해석도 매력 있다.

행복은 무엇일까?

 이 책은 연세대 교수로 평생을 스승으로 지낸 저자가 제자에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썼다. 백 년이란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한 삶이 되는가에 대해 알려준다. 돈과 성공이 행복을 만드는 데 전부가 아니고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를 평생을 살면서 만났던 지인이나 삶 속에 만난 책을 통해 저자 생각을 뒷받침한다.

 

 

요즘 모교 사태를 보면서 관심 있는 주제가 이 책 안에 나와 반가웠다. 한 꼭지를 할당하며 저자는 감투와 자신은 인연이 없음을 이야기했다. 너무 장황하고 길어 '정말 아쉬움이 없던 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진정한 스승으로서 제자를 생각하고 자신 위치에 대해 만족한다. 감투에 집착하며 야망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대학 총장이 되었는데 그분이 진실한 이야기를 하며 총장은 그저 수단일 뿐, 이 경력을 이용해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물론 그 꿈은 좌절됐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며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한 사람의 일생은 대나무가 자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아 좋을지 모른다. 대나무는 마디마디가 단단히 자라야 한다. 어떤 한 마디가 약해지면 이다음에 그 마디가 병들어 부러지게 된다. 또 그렇게 자기 목적을 위해 현재를 소홀히 한다면 그 책임자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또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산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184)

비단 이런 내용뿐 아니라 저자가 백 년 가까이 살면서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도산 안창호 강연을 들었던 이야기, 슈바이처가 친 피아노 연주를 들은 경험, 일제 시대와 625로 인해 분단된 상태에서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저 역사 안에 아마득하게 있었던 일이 저자에게는 직접 피부로 겪은 일이었단 사실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북한 쪽에 살았던 저자가 겪은 일은 인상 깊었다.단짝 친구와 옳다고 생각하는 이념이 달라지고 결국 남과 북이란 선택을 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친구를 생각하는 저자 마음이 글 안에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뿐만 아니라 철학이라는 학문을 하며 만난 철학 교수와 우정도 아름다웠다. 같은 학문을 하며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몇십 년을 함께 한 그 이야기가 한없이 부러웠다. 결국 철학 삼총사 중 저자 혼자만 남았다. 80대에 두 친구가 죽었다. 결코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아꼈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작가 눈물이 어떤 건지 충분히 공감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고 이별이란 건 항상 슬픈 일이다.

백세 인생

 '꼰대'나 '개저씨'라는 말이 유행이다. 그만큼 나이가 들수록 성격이 왜곡된다. 그 점을 저자는 정확히 알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았던 사람인데 나이가 들면서 자랑이 늘어나고 자기 할 말이 늘어난다. 남이 한 의견은 모두 고깝게 듣고 내가 성공했던 경험이 바로 법이다. 나이 들어 아픈 것은 가족에게도 고통이다. 이렇게 나이 든다는 건 많은 사람에게 민폐를 주는 것일까?

 저자는 그 의견에 반대한다. 인생을 크게 봤을 때 오십 세가 될 때까지 쉽게 인생을 어떻게 살았다 평가할 수 없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는 환갑부터 75세라고 이야기한다.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란다. 사람은 계속 발전한다. 늙은 것은
끝나가는 게 아니고 익어가는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배나 제자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대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나이 들었다는 것은 손 아랫사람들을 위해주라는 뜻이다. 사랑하고 위해주는 마음이 있으면 실수와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존경과 감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274)

 지은이는 말한다. 장수하는 방법은 계속 일을 하고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항상 목표를 갖고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항상 배우고 생각한다면 늙는다는 건 더 이상 끔찍한 일이 아니다.

책을 읽고

 이 책을 통해 김형석 교수님을 처음으로 만났다. 정말 멋진 분이다. 옛날 자신이 겪은 일과 현재 시류에 대해 항상 생각하신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내는 청년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자신이 어느 위치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자각한다. 이에 대해 학문으로 견고하게 이론화한다. 이 일은 아흔일곱인 지금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계간지에 후학을 위해 논문을 게재하신다.
 
  갑자기 이 분 부고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연세다. 그럼에도 항상 현역으로 삶을 놓지 않고 사랑하는 그 모습을 보았다. 나도 커서 그렇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습니다. '오래 사시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준다면 받아도 되겠다고 마음의 위로를 받습니다.(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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